제주시 애월읍 납읍리에서 만난 이겸씨가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서울은 소비하지 않으면, 소비에서 밀려나면 살 수 없는 곳이죠. 그런 점이 저랑 맞지 않는다고 느꼈어요. 내적으로도 더는 성장하지 못할 것 같았고요.”
11월26일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의 한 농가주택에서 만난 이겸(50)씨는 낮은 목소리로 덤덤하게 말했다. 사진작가이자 심리상담가인 이씨에게 이 공간은 작업실이며 상담실이고, 놀이터이기도 한 것처럼 보였다. 작은 마당을 가로지르면 아담한 암실도 갖추고 있다. 아날로그 사진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개방하는 곳이라고 했다.
서울에서는 잡지사 사진기자로도 일했고, 사진작가로서 명성도 쌓았다. 아내는 월간지 편집장을 지냈다. 하지만 그는 7년 전인 2011년 ‘무작정’ 제주로 내려왔다. “40대 초반이면 한 번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잖아요? 서울서는 돈을 벌기 위한 생활과 나의 삶이 서로 밀착되지 않더라고요. 그게 탐탁지 않았어요.”
물론 제주에서의 삶이 다를 것이라는 확신은 그에게도 없었다고 했다. 갑작스러운 ‘인생의 방향 전환’에 대한 우려를 떨치지 못하는 아내를 설득한 이씨의 논리는 이랬다.
“제주도는 어떨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서울에서의 삶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히 알겠다. 그렇다면 제주로 떠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느냐.”
다행히 그는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의 한 사찰에 머무를 수 있게 됐다. “주지 스님 덕분에 7개월 정도 절에서 지내면서 살 곳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조건이 몇 가지 있었죠. 우선 딸을 위한 학교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습도가 높고 날씨의 변화가 심한 바닷가는 피한다는 거였어요.” 그렇게 ‘초등학교가 있는 중산간 마을’을 찾던 이씨는 애월읍 납읍리를 ‘발견’했다.
“살 곳을 찾기보다는 좋은 학교를 찾는다는 게 더 중요했어요. 납읍 초등학교는 차가 다니는 길가에 있는 게 아니라 마을 제일 안쪽에 있어요. 그리고 자연이 살아 있는 난대림 숲이 학교와 붙어 있죠. 바로 여기다, 싶었어요.”
이겸씨는 최근 사진 치유를 주제로 서울의 한 갤러리에서 '거울의 파편'이란 전시회를 열었다. 이겸 사진작가 제공
가족들과 함께 납읍리에 정착한 그는 여전히 ‘사진하는 사람’이지만, 그 외에도 다른 직업이 많아졌다. 제주에 와서 한국사진치료학회와 한국피해상담학회 등에서 상담사 자격을 취득했다. 현상을 통해 그 현상의 이면을 드러내는 사진 작업과,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심리치료 행위는 일맥상통했던 것일까. 그리고 ‘여행과 치유’라는 회사를 차렸다. 회사를 통해 개인이나 기관을 대상으로 한 심리치료 상담, 그리고 사진과 글쓰기 강좌 등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그의 심리 상담은 ‘사진’을 매개로 한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대상자가 직접 찍은 사진도, 대상자를 찍은 사진도 이야깃거리가 된다. “미술치료는 그림을 그리면서 작성자의 방어기제가 강하게 작동을 하는 편이에요. 반면 사진을 찍는 행위는 그 방어기제가 잘 작동하지 않지요. 결국 그 사람의 내면이 더 많이 투영된다고 볼 수 있어요.”
상담사로 사는 삶 외에도 작품 활동은 계속하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의 한 갤러리에서 사진 치유를 주제로 한 사진전도 열었다. 꾸준히 사진 강좌를 이어간다. <듣기, 이야기 듣기>, <사진으로 마음 여행>이라는 제목의 잡지들을 창간했다. 글을 쓰고, 귤 농사도 짓는다. 서울에서는 한 가지 직업으로 돈을 벌었다면, 제주에서는 그보다 적은 돈을 버는 직업을 여러 개 갖게 됐다. “어쨌든 가장으로서 경제활동은 해야 하니까요. 서울에서보다 일의 범위가 넓어졌다고 할까요.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지만, 모두 제가 좋아하는 일들이에요.”
제주에 와서, 그는 온전히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된 것 같다고 했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타인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니라, ‘삶과 생활이 하나가 되는 일체감’을 느끼게 됐다. “행복하냐는 질문에 단답형으로 대답해야 한다면, 저는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온화해 보이는 이씨의 미소가 낮은 천장에 잠시 머물다 흩어졌다.
글·사진 송호균/제주도민이 된 육아 아빠·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