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 젖은 땅: 스탈린과 히틀러 사이의 유럽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함규진 옮김/글항아리·4만4000원
1944년 8월1일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는 독일군에 대항하는 봉기가 일어났다. 글항아리 제공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인 1933년. 소련의 자치공화국 우크라이나에서는 수백만 명이 굶어 죽었다. 식량 배급소 앞에는 하루 평균 4만명이 매일 빵 한 덩어리를 얻으려고 줄을 섰다. 배고픔을 참지 못한 이들은 심지어 사람을 먹었다. 인육을 사고파는 ‘블랙마켓’까지 열렸다. 소련 합동국가정치보안부(OGPU·비밀경찰) 기록에 따르면, 당시 우크라이나에서는 “가족이 가장 약한 식구를 잡아먹었다. 보통 애들이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대기근은 자연재해가 아닌 철저한 계획에 의한 것이었다. 당시 스탈린 정권은 막대한 혁명 자금을 대기 위해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에서 생산된 곡식을 수탈해 수출했다. 이 기간에 스탈린은 공산당을 장악하고 산업화와 집단화 정책을 강행했다. 20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집단학살의 서막이었다.
<피에 젖은 땅>은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과 아돌프 히틀러가 집권한 1933년부터 1945년까지 12년간 유럽에서 일어난 집단학살을 기록한 역사서다. 동유럽사와 홀로코스트 연구의 권위자인 티머시 스나이더 미국 예일대 역사학과 교수가 썼다. 2010년 미국에서 첫 출간 당시 언론과 학계에서 “제2차 세계대전사 연구에 한 획을 그은 저서”로 평가 받았다.
그가 책에서 다루는 ‘피에 젖은 땅’(블러드랜드)은 폴란드 중부에서 러시아 서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발트연안국들이다. “유럽의 가장 살인적인 체제들이 가장 막대한 살육을 저지른 곳”이다. 그는 “희생자들의 고향 땅은 베를린과 모스크바 사이에 있었고, 그 땅은 히틀러와 스탈린이 집권한 다음 온통 피로 얼룩지고 말았다”고 말한다. 이 땅에서 스탈린과 히틀러는 누가 더 잔혹하냐를 겨루는 경쟁자였다. 서로가 서로의 잔혹함을 부추기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그들의 관심사는 “둘 사이에 놓인 모든 땅” 블러드랜드에 걸쳐 있었다. 그중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에 눈독을 들였다. 그들에게 이곳의 “농토와 농민은 현대 산업국가를 만들기 위해 최대한 쥐어짜야 할 대상”이었다. 스탈린과 히틀러가 비옥한 이 땅을 지배하려고 벌인 쟁탈전과 학살의 결과, 1400만명이 죽었다. 희생자들은 주로 유대인, 벨라루스인, 우크라이나인, 폴란드인, 러시아인, 발트연안국인들로, 그 땅에 살고 있던 주민들이었다. 스나이더는 각국 기록보관소 16곳에 있는 체코어, 폴란드어, 벨라루스어, 우크라이나어 등 10개 언어로 쓰인 자료를 찾아 이 책의 뼈대를 세웠다.
스탈린과 히틀러는 우크라이나를 차례로 차지하며 수탈과 학살을 벌인다. 1941년 히틀러는 스탈린의 손에서 우크라이나를 빼앗는다. 우크라이나를 지배하던 당시 스탈린의 농업 집단화 정책과 인위적 기근 계획은 그에게 득이 되었다. 그는 스탈린이 만든 집단 농장을 이용한다. 이곳은 “수백만의 사람을 굶겨 죽이는 곳이었고 따라서 다시 써먹어야 할 방식”이었다. 1941년 5월23일 나치 정권이 우크라이나 지역 지도부에 내린 지침에서 ‘잔혹한 계획’을 엿볼 수 있다. “이 지역에 살던 수백만 명은 불필요한 존재가 될 것이다. 그들은 죽어 없어지거나 아니면 시베리아로 떠나야 한다. 흑토대의 농산물 획득으로 인한 현지인들의 아사를 막을 유일한 방안은 유럽으로의 식량 공급 중단뿐이다.”
나치 정권은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프랑스, 네덜란드, 그리스, 벨기에, 유고슬라비아 등에서 유대인들을 끌고 와서 블러드랜드에서 죽였다. 독일의 유대인 역시 이곳에서 죽음을 맞았다. 독일 본토에서는 유대인 대량 학살이 진행되지 않았다. 히틀러가 수상으로 집권한 1933년 당시 독일의 유대인 인구는 1%도 되지 않았으며,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시점에도 4분의 1 이하였다.
지리학적 관점, 정치체제 등에 관한 거시적 서술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는 숫자로만 남은 블러드랜드에서 희생된 수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우리는 죽은 이의 숫자를 셀 뿐 아니라 죽은 이 한 명 한 명을 개인으로 취급해야 한다. (…)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은 하나하나 기억될 가치가 있다는 의미다.” 희생자가 쓴 일기와 편지, 생존자들의 증언, 당시의 신문 기사 등에서 새롭게 발굴한 목소리다. 1933년 스탈린의 기근 정책으로 배고픔에 시달리던 우크라이나의 한 아이는 이렇게 말한다. “엄마가 그랬어. 돌아가시면 엄마를 먹어야만 한다고.” 벨라루스에 있었던 12살 유대인 소녀는 멀리 떨어져 있는 아빠에게 마지막 편지를 썼다. “죽기 전에 인사해. 나 무서워. 그들이 아이들을 구덩이에 산 채로 집어 던지고 있어.” 1940년대 레닌그라드의 11살 소녀 타냐 사비체바의 일기장에도 죽음의 공포가 담겨 있다. “1941년 12월28일 새벽 12시30분, 제냐가 죽었다. (…) 1942년 5월13일 아침 7시30분, 엄마가 죽었다. 사비체프 집안사람들이 죽었다. 모두 다 죽었다. 타냐 혼자만 남았다.”
그는 책 마지막 장에서 ‘인간성에 대한 질문’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특히 블러드랜드의 역사 속 가해자를 인간 이하의 존재로 보는 시선조차 경계한다. “다른 사람을 인간이 아니라고 규정하는 일은 나치의 입장으로 한 발짝 다가가는 것”이며 “다른 사람을 이해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은 이해를 포기하는 일, 다시 말해 역사를 버리는 일”이라고 그는 말한다. 각 개인을 환원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해야 역사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는 블러드랜드의 역사에 얽힌 모든 사람의 삶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다음에 ‘어떻게 그토록 많은 사람이 폭력적인 최후를 맞게 할 수 있는가(있었는가)?’라는 물음의 답을 찾도록 안내한다. 832쪽에 이르는 두꺼운 책이 던지는 마지막 질문이 꽤 묵직하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