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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재난 뒤 지구, 인간 허락할까

등록 2023-06-24 10:00수정 2023-06-24 11:20

[한겨레S] 주일우의 뒹굴뒹굴 만화 _ 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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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다른 사람과 사귀면 내 손아귀에 그 사람의 운명을 한 줌 정도 쥐게 된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 지금은 딴판이다.” 정성껏 만들어 지난주 세상에 내보낸 책의 한 구절을 곱씹어 보고 있다. 뭐가 다르다는 걸까? 나 하나, 혹은 내 곁의 안전만 걱정하면 되는 시대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나와 타인이, 그리고 우리 모두가 과도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에 내 몸 하나 움직이면서도 모두의 생존을, 종말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 나 때문에 세상이 끝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세상은 어떻게 끝날까?

세상의 끝에 대한 오래된 이야기들이 있다. 하늘과 땅이 맞닿아 짓이겨지고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다. 천지개벽. 신들의 싸움 때문에 모든 영혼이 불로 정화되고 새로운 세계가 온다는 사람들도 있다. 괴질이 돌아 세상 사람 다 죽고 착한 사람만 살아남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메시아의 심판을 받는 종말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는데, 대부분 나쁜 사람들만 죽는다. 부끄러운 일만 하지 않았다면, 살아남기는 거뜬할 것 같기도 하다. 물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종말은 선악을 고를 것 같지 않지만 너무 먼 이야기. 빅뱅으로 시작한 우주가 모두 식어버리는 결말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물론, 그 끝은 셀 수 없는 영겁 이후. 이 정도 시간을 상상 속에서 끄집어내서 지금 걱정하기는 쉽지 않다.

오늘의 걱정을 불러일으키는 종말론은 매일같이 쏟아지는 날씨 기사와 관련이 깊다. 이번주 기사들만 읽어도 우리가 곧 불구덩이에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된다. “카리브해의 푸에르토리코는 6월 체감 온도가 섭씨 50도를 웃돌았다.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살인 더위다”, “동남아시아의 6월 한낮 기온이 40도를 훌쩍 웃돌아 200년 만의 폭염이 덮쳤다”, “혹한의 상징 시베리아의 6월 초 지역별 기온이 37~40도를 찍어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캐나다의 초대형 산불은 30도를 오가는 때 이른 고온과 건조한 날씨 때문에 피해를 키웠다”.

이렇게 더우니, 해수면 온도도 사상 최고다. 바다가 따듯하니 빙하도 빠른 속도로 녹아 없어지고 있다. 남극의 얼음은 1979년 위성관측 이래 가장 좁은 면적으로 졸아들었다. 힌두쿠시·히말라야 빙하가 녹아서 인근에서 사용 가능한 물이 사라지고 있다. 홍수·산사태 등 자연재해가 이어진다.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한곳에 모아보니, 가히 노아가 겪었던 홍수를 방불케 한다. 대런 애러노프스키의 <노아>를 펼치면 우리가 겪는 재난들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진다.

욕망을 따라 무참히 다른 생명을 짓밟고 도시를 짓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파괴하는 사람들 속에서, 동물을 구하고 다친 동물을 은신처에서 돌보는 노아. 그는 신의 징벌을 알리려고 노력하지만 아무도 그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을 버린 신을 원망하면서 더욱더 흉포한 살상을 일삼는다.

아뿔싸, 우리가 끊임없이 꺼내 썼더니 지구가 비명을 지르고 재난이 우리를 덮치고 있는 상황과 똑같다. 심판을 하지만 자애로운 신은 노아와 모든 생명을 쌍으로 남겨 인간의 세상을 다시 시작하게 허락한다. 하지만, 병든 지구는 재난 이후에 인간을 허락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공룡의 후손이 새로 남았다지만 우리는 공룡은 멸종했다고 기록한다.

주일우 만화 애호가

종이나 디지털로 출판되어 지금도 볼 수 있는 국내외 만화를 소개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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