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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삶이 ‘슈퍼맨’ 이름처럼만 흘러간다면

등록 2023-07-08 10:00수정 2023-07-08 16:24

[한겨레S] 주일우의 뒹굴뒹굴 만화 _ 슈퍼맨: 시크릿 아이덴티티

이름은 대개 부모가 정해서 관청에 등록한다. 집에서 부르던 이름이 있었는데, 학교 가서 선생님이 출생신고 된 이름으로 불러서 당황했다는 친구들도 여럿 있었다. 아이 때만 부르는 이름인 아명은 개똥이처럼 천하게 짓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했다. 전염병이 돌거나 사고가 자주 일어나서 영유아 사망률이 높던 시대의 유물이다. 이름이 험하면 나쁜 귀신이 피해 갈 거라 생각했다고 한다. 이름까지 아름다우면 ‘미인박명’이라 요절할지도 모른다 해서 피했다.

조선시대에는 성인이 되는 관례를 올리면 정식으로 이름을 받았고 그 전엔 ‘자’를 지어 이름을 대신했다. 자는 돌림자를 따르거나 형식에 얽매이는 본명보다 그 나이가 될 때까지 보인 성품이나 행동을 보고 부모나 어른이 지어준다. 새로운 이름이 아이의 운명을 바꿀까? 비하리에 청주공항이 들어서고 수평동엔 문경댐이 생긴 것은 우연이 만든 착시일 테지만 이름 때문이라 믿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다. 어린 시절 나를 ‘도야지’라고 부른 아버지가 내 뚱뚱함의 원인일 것이라 믿는 것과 비슷한 만큼만 타당한 이야기이겠으나.

더 나이가 들면, 스스로 짓거나 스승이 지어준 ‘호’를 많이 썼다. 호는 다양한 정체성이나 추구하는 이상을 표현했다. 청백리로 유명했던 황희의 호는 방촌인데, 그 뜻이 삽살개 짖는 마을이다. 공덕동에 살았던 적이 있는 김씨는 김공덕, 사랑을 ‘세상 제일 가치’로 추구하는 박씨는 박사랑이라고 쓰는 식이다. 유학자 이황의 자는 경호이고 호는 퇴계. 김정희의 자는 원춘, 호는 추사, 완당, 예당, 시암, 과노, 농장인, 천축고선생 등 수백개였다고 한다. 호를 사용하면 본명을 부르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 까닭으로 조선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이름보다 호가 더 친숙하다.

<슈퍼맨: 시크릿 아이덴티티>의 주인공은 클라크 켄트. 만화책 <슈퍼맨>에 나오는 주인공과 이름이 같다. 주인공은 자기 이름이 재미없다. 아빠는 유명인의 이름을 따라 하는 게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친척들은 늘 생일 선물로 슈퍼맨 액션 피겨를 준다. 주인공과 이름이 같은, 슈퍼맨을 소재로 한 장난감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러나 모두 받는 대로 창고행이다. 이름이 같은 슈퍼맨처럼 날아보라는 개구쟁이 친구 녀석들도 귀찮고 밉다. 그런데 나는 진짜 슈퍼맨이다. 갑자기 알게 됐는데, 누구에게 이야기를 해야 하지? 모두에게 비밀로 해야 하나? 나는 이름만 슈퍼맨이 아니었다. 원래 슈퍼맨 만화와 다르게 이 작품에는 엄청난 악당도 나오지 않고 갈등도 심각하지 않다. 하지만 보통 소년이 초능력을 깨닫고 청소년기를 지나 어른이 되는 과정이 섬세하게 그려진다.

클라크 켄트는 어떻게 클라크 켄트가 되었나? 클라크 켄트여서 슈퍼맨이 된 것일까? 그의 이름이 클라크 켄트가 아니었어도 슈퍼맨이었을까? 포털 사이트의 내 아이디는 ‘바람’이다. 보이지 않지만 있고, 자유롭게 떠나고 싶어 지은 아이디다. 십수년을 고수하고 있는데 별로 효과가 없다. 역사 공부하는 친구가 호를 지어주겠다고 해서 옳거니 박수를 쳤다. 그 이름은 내게 어떤 변화를 줄까? 진짜 나를 찾고 싶다면 소망을 담은 이름을 새롭게 지어보는 건 어떨까.

주일우 만화 애호가

종이나 디지털로 출판되어 지금도 볼 수 있는 국내외 만화를 소개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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