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조력사망’ 단체에 등록한 한국인의 수가 200명이 넘는다. 숫자를 밝히지 않는 단체까지 추산해보면 300명은 넘을 것이다. 분명한 건 지금까지 이 단체들의 조력을 받아서 세상을 떠난 한국인의 수가 10명이라는 사실. 고통을 못 이겨 죽음을 선택할 때 의사의 도움을 받아 의사가 처방한 약을 환자 스스로 주입하는 경우(조력사망)도 있고, 의사가 약물을 주입하는 경우(안락사)도 있다. 허용 범위에서 차이가 있지만 스위스, 우루과이,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스페인, 포르투갈과 미국의 일부 주에서 이런 형태의 ‘선택된 죽음’을 용인하고 있다.
2016년에 조력사망이 허용된 캐나다에서 한해 이 길을 선택하는 사람의 수가 1만명을 넘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스위스를 찾는 이유는 이 나라가 외국인에게도 조력사망을 허용하는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조력사망이 허용된다면 이 방법을 선택할 사람은 훨씬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열번째 한국인 조력사망자의 인터뷰를 읽었다. 전직 공무원으로 연금을 받으면서 마지막 10년은 필리핀에서 여유로운 생활을 보낸 그의 나이 여든넷. 부인이 세상을 떠나고 고통스러운 신장투석을 받으면서 스위스행을 결심했다. 비슷한 어려움에 처했어도 모두 같은 선택을 하진 않는다. 비용도 2천만원 정도 들고, 영어로 지원서도 써야 한다. 남은 가족들이 느낄 아픔과 부담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도, 세상을 스스로 등지는 결정이 쉽지 않을 거다. 하지만 이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마음도, 슬프지만 이해가 된다. 스스로 돌볼 길이 없고 뼈를 깎는 고통이 줄어들 가망이 없을 때 조력사망의 방법을 찾는 사람들을 어떻게 붙잡을 것인가?
<주름: 지워진 기억>을 읽는 내내, 조력사망과 관련된 인터뷰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치매 초기 단계에 접어든 에밀리오는 아들의 손을 잡고 요양원에 입소했다. 아직도 은행원으로 일했던 현역의 기억이 생생한데 여긴 어디인가? 끊임없이 오지 않는 아이들을 기다리는 솔 할머니, 창가에 앉아 이스탄불로 가는 기차에 탄 상상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로사리오 여사, 치매에 걸린 남편 모데스토와 그를 따라 들어온 돌로레스, 요령을 부려 돈을 모아 탈출을 꿈꾸는 미구엘까지 요양원 1층엔 몸과 마음이 완전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2층은 먹고 자는 것도 수월치 않은 사람들의 공간. 기억을 잃어가면서 에밀리오는 그리로 가게 될까 두렵다. 그런데 기억은 점점 희미해지고 한방을 쓰는 미구엘의 얼굴마저 기억나지 않는다.
요양원 1층에서 벌어지는 소란은 늙어가는 것에 대한 저항의 표시다. 속절없이 종점을 향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이지만, 살아 있는 동안 숨을 붙잡고 애를 쓸 수밖에 없는 것 또한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이다. 그 싸움을 더 할 수 없을 때, 요양원의 2층으로 올라가서도 우리는 생을 이어가야만 하는가? 모든 것을 잊어버린 이후의 싸움은 누구와 하는 것일까? 지금의 나는, 기억이 지워진 나를 허용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 중에 하나가 조력사망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마지막 한줌의 힘까지 모아 늙어가는 것에 대해 최선을 다해 저항하는 이들을 응원한다. 무기도 없이 죽음에 맞서는 우리를,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응원할 수 있는 것도 우리밖에 없다.
만화 애호가
종이나 디지털로 출판되어 지금도 볼 수 있는 국내외 만화를 소개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