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프라하에 사는 친구가 사진을 보내왔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에서 열린 도서전에 다녀왔다고 한다. 분홍빛 조명이 은은한 예쁜 건물에 책이 가득하고, 책 앞엔 독자들이 빽빽하다. 북토크를 찾은 많은 독자들이 작가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는 모습이 전쟁 중이라는 현실을 잊게 한다. 물론, 사진에 목소리가 묻어 있지 않으니 전쟁과 평화에 대한 어떤 절박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는지는 모른다. 사진 속의 평화가 더 애달프다.
이젠 우리나라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쟁을 책과 영화만으로 만났을 가능성이 크다. 아버지가 사춘기 때 어린 동생 데리고 피난 갔던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미 70년도 더 지난 이야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도 이제 18개월이 지났다. 서로 주장하는 바가 다르고 국경을 맞대고 있으니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다. 우리에게 전쟁이 계속된다는 건 유럽에 갈 때 비행기가 돌아가야 해서 시간과 연료를 더 써야 한다든지, 아니면 곡물·에너지 가격이 올라가 경제적 불안정성이 커졌다는 정도가 될 것이다. 물론, 그곳에 사는 친구들의 안위도 늘 걱정이 되겠지만.
그런데 우크라이나에, 그리고 러시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쟁이 계속되는 건 어떤 의미일까? 우크라이나 도시들이 폭격을 맞고 있고 전선에서 멀리 있는 러시아의 도시들도 드론 공격으로 안전하지 않다. 불안과 공포 속에서도 피난을 떠나지 못하거나 떠나지 않은 사람들은 그곳에서 살아가야 하고 책도 읽고 작가도 만난다. 아직 전쟁이 마무리되지 않은 곳이 또 있다. 1950년에 시작한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남북한이 휴전 중인 한반도는 언제 또 열전으로 돌입할지? 그런 두려움을 늘 배경 삼아 사는 우리의 삶도 고단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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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시트 운즈’는 폭탄 테러와 보복이 반복되는, 전쟁이 끝나지 않은 도시,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만화다. 주변 사람들이 폭탄 테러에 갑자기 사라진다면 어떤 느낌일까? 테러 현장에서 신원 미상의 주검이 발견되고 갑자기 애인은 연락이 끊긴다. 거기서 발견된 목도리는 자신이 애인에게 떠 준 것. 실제로는, 애인은 줄행랑을 쳤고, 목도리는 다른 여인에게 애인이 직접 걸어주었다.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막장 드라마. 현실에선 적의 공격만 두려워하면서 살 수 없기 때문에 그 두려움은 애써 뒤로 숨기고 살 수밖에 없다. 힘든 현실을 무시하면서 자신을 겨우 지키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희로애락의 관계망은 여전한데 긴장을 피하려다 보니 반응이 무디다. 내면의 상처가 두꺼워져서 무감각한 사람들.
내가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은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다른 나라 친구들이 내 처지를 가끔 걱정해줄 때도 나만 걱정이 없었다. 그런데 세계는 더 날 선 대립과 세찬 분쟁의 소용돌이로 말려들고 있다. 그 소용돌이와 가장 가까운 곳에 서 있는 우리나라의 처지. 수레바퀴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그 밑에 깔린 개인들은 바큇살에 낀 채로 함께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 관성 위에서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도 없다. 전쟁은 잘 끝나지도 않는다. 이기든 지든, 전쟁에 연루된 모든 나라의 국민들은 전쟁의 비참함을 피할 수 없다. 전쟁이 끝났으면 좋겠다.
만화 애호가
종이나 디지털로 출판되어 지금도 볼 수 있는 국내외 만화를 소개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