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S] 주일우의 뒹굴뒹굴 만화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장안의 베스트셀러였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2014)이 처음 나왔을 때, 책 제목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얕은 지식으로 허영기 풍기는 술자리 대화를 마다하지 않지만 대놓고 그런 비밀을 까발리다니. 넓고 얕게 아는 지식으로도 지적인 대화가 가능하다는 고백을 해버리면 잘난 척하던 아저씨들의 체면이 엄청 구겨지겠는데. 그리고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줄 몰랐다. 잘난 척 좀 해보려는 사람들이 내놓고 이런 책을 볼까 싶었다.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사실, 이 책이 나오기 전에 이미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2008)이라는 책이 번역됐다. 제목만 보면 읽지 않은 책을 읽은 척하는 법 같지만, 실제 주장은 더 급진적이다. 교양인이 알아야 하는 것은 책과 책 사이, 책과 사람 사이에 있는 소통과 연결선들이지 특정의 어떤 책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프랑스의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인 폴 발레리는 실제로 책을 많이 읽지 않았다. 자신의 분신인 작품의 주인공을 통해서 “독서를 혐오했고…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그렇다고 그가 다른 작가나 작품에 대해서 할 말이 없다는 건 아니다. 그는 마르셀 프루스트를 기리는 글을 기고했는데 그의 책을 읽지 않았으니 하나 마나 한 칭찬에 앙드레 지드나 레옹 도데의 우호적인 견해를 곁들이는 식으로 자신의 평가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 학술원에서 아나톨 프랑스의 자리를 물려받아야 했지만 가뜩이나 좋아하지도 않았던 그의 작품을 읽었을 리가 없다. 자리를 수락하는 연설에서 아나톨 프랑스 이름만 언급할 수밖에 없었다.
‘수상록’으로 유명한 미셸 몽테뉴는 책을 읽기는 했지만 내용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읽었다는 사실도 잊는 경우가 잦았다. 메모를 한 것을 찾아, 겨우 기억을 되살리는 정도. 아하,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도 읽은 책을 머리에 넣어두고 척척 꺼내 쓰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전체 속에서 길을 잃지 않았다. 책들이 어떻게 모이면 앙상블을 이루고 있는지를 알고, 각각의 요소를 다른 요소들과의 관계 속에 놓을 수 있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교양의 지도 위에 놓아 전체를 파악할 ‘넓고 얕은 지식’이 필요하다. 그 많은 독자들은 견고한 교양의 지도를 구축했을까?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책을 읽거나 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절대다수가 책을 읽지 않는”데 굳이 독서모임을 만들어 함께 책을 읽는다. 폭력조직 속에 언더커버 중인 경찰, 디저트만으로 장사가 안돼 아귀탕도 함께 파는 요리사, 주부로 가장한 첩보원, 정신병원을 탈출한 환자에 히말라야에 산다는 예티까지 한자리에 모여 책을 읽는다. 첫 모임에 나와서 자기계발서에 빠져 산다고 이야기한 친구는 쫓겨났다. 그가 모임에 돌아오기 위해서 꺼낸 카드는 통렬한 반성. “거룩한 독자들의 대열 속으로 들어가는 입문의 통곡”을 하고 나서 역사책을 읽기로 했다. 하지만 ‘역사란 무엇인가’를 밑도 끝도 없이 인용하다가 다시 쫓겨난다. 널리 퍼진 오류를 맥락에 맞지 않게 인용한 것은, 아뿔싸, 그가 입문의 통곡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개성 있는 인물들이 서로 치부를 가리기 위해서 책으로 ‘초식을 겨루는’ 이 만화책을 읽으면서 낄낄댈 수 있다면 이미 지식의 재료를 가지고 제법 지도를 그려둔 사람이라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마주 보고 웃으면서 껄렁하게 으스대고 있는 거지.
만화 애호가
종이나 디지털로 출판되어 지금도 볼 수 있는 국내외 만화를 소개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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