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S] 주일우의 뒹굴뒹굴 만화
양자 세계의 신비
내가 보기엔 정체가 의심스러운 신학대 학생이었던 선배와 양자역학을 함께 배웠다. 초대받아 간 집에 신학교 성적표가 붙어 있었는데 ‘경건 불량’이라는 표시와 함께 낙제를 한 과목들이 눈에 띄었다. 그저 출석이 좋지 않으면 받는 꼬리표라고 했지만, 함께 술과 노래의 밤을 여러 번 보냈던 나는 믿지 않았다. 그보다 더 의심스러운 것은 그가 신학교를 휴학하고 나와 함께 과학 수업을 같이 들었다는 것. 과학에 집착하는 신학생은 뭔가 믿음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지금은 어엿한 목사 노릇을 하고 있다고 들었지만, 나는 당신이 신학생 때 한 일을 알고 있다.
물론, 본격적인 양자역학 수업은 아니었다.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을 설명하는 것을 오랫동안 고민했던 선생님이 과학의 구조를 이해시키기 위한 수업. 수업 끄트머리에 선생님은 늘 선배를 지목해서 얼마나 이해했는지 확인하셨다. 그가 이해했다면, 다른 사람들도 어느 정도 이해를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셨다고 했다. 고등학교 이후로 과학 수업을 받은 적이 없는 신학생이 작은 깨달음이라도 내보이면 얼마나 기뻐하시던지. 어려운 수업 끝에 웃음꽃이 피었다.
오래전 이야기라서, 구석구석 낱낱이 기억나진 않지만, 그 수업의 오의(사물이나 현상이 지니고 있는 깊은 뜻)는, 양자역학이 지금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것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동양과 서양에서 생명과 질병을 이해하는 방식들은 전혀 다른 체계를 가지고 있어서, 양쪽의 설명을 억지로 일대일 대응시켜서 설명하는 것은 실패하고 만다. 마찬가지로 양자역학의 세상을 설명하는 방식은 우리의 상식에 일대일로 대응하지 않는다. 그 세계로 다가가는 열쇠는 수학일 텐데, 수학 공부가 좀 어려운가? 그 노력을 건너뛰려면 비유에 기대어 이해를 해보는 수밖에 없다.
‘양자 세계의 신비’를 읽으면서 옛날 생각이 잔뜩 떠올랐다. 원자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세계를 설명해서 만들었던 이론이 수식을 쓰지 않고도 엄밀한 비유로 우주와 같이 광대한 세상까지 설명하는 방식으로 깔끔하게 정리돼 있다. 에너지는 플랑크 상수와 진동수의 곱과 같다는 플랑크-아인슈타인 방정식의 등호 양쪽에 같은 것을 곱하고 미분하고 대체하면서 양자 세계를 설명하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얻는다. 이 과정까지 따라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들도, 아닌 사람들도 모두 양자역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따져보면서 즐길 수 있다.
양자·전자·파동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에 대한 설명이 도대체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세상에 대해 뭘 알려준다는 건가? 이런 의심이 무색하게 자연계 기능의 핵심에 양자 물리가 있다. 레이저, 마이크로프로세서, 원자시계와 지피에스(GPS), 자기공명촬영장치 등이 거기서 나왔다. 요즘 사람들을 가장 즐겁게 하는 해석은 휴 에버렛이 제창한 ‘다세계 이론’일 것이다. 그는 양자 세계가 서로 다른 확률로 진행한 사건들의 중첩인데, 서로 다른 방향으로 진행된 세계는 해당 세계와 상호 작용하는 주위 환경만 인식한다고 했다. 같은 주인공들이 지금과는 다른 세상에서 살 수도 있다는 상상이 인기가 높다.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전쟁으로 생명이 경각에 달린 사람들이 다른 세상을 상상하는 것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만화 애호가
종이나 디지털로 출판되어 지금도 볼 수 있는 국내외 만화를 소개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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