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영화·애니

너만 없다면 그는 내거야

등록 2007-06-28 18:10수정 2007-06-28 19:34

미필적 고의에 의한 여름휴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여름휴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여름휴가
내가 찜한 그 남자, 그는 나 아닌 내 친구에게 흑심을 품고 있다. 이럴 때 누구나 한번쯤 “친구가 나와 그 주변에서 사라진다면, 나와 그 사이의 사랑이 이뤄질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무시무시한(?) 상상을 한번쯤 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현실이 되든, 가정으로 끝나든 사랑이 ‘해피엔딩’이길 바라는 인간의 감정은 똑같다. 사랑과 욕망 앞에서 이기적인 게 인간이란 족속 아닌가. 그런데, 정말 그럴까?

<미필적 고의에 의한 여름휴가>는 이런 해묵은 명제에 대한 해답 같은 영화다. 자기 행위가 미칠 파장을 알면서도 묵인하는 심리상태. 즉, ‘미필적 고의’라는 단어를 제목에 붙인 것에서 보듯 이 영화는 사랑을 위해 경쟁자의 불행을 ‘미필적 고의’라는 명목으로 무시하는 여자의 이야기가 뼈대다.

교양을 겸비한 미모의 중년여성 미리암(마티나 게덱). 15살 아들 닐스의 엄마로 정치학 연구파트너인 앙드레(피터 다보아)와 동거하는 미리암은 차분하고, 이성적이며,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다. (아니, 누구에게나 그렇게 보인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그의 가정 역시 평범하고 무난하다.

2004년 여름, 미리암 가족은 아들 닐스의 12살짜리 여자친구 리비아(스베아 로드)와 함께 슐라이강에서 달콤한 휴가를 즐기게 되는데, 미리암은 휴가지에서 뜻하지 않게 사랑의 감정에 휩싸인다. 그가 사랑에 빠진 상대는 나이에 비해 조숙한 리비아가 데려온 별장 이웃집 매력남 빌(로버트 젤리거).

지성·미모·성품 두루 갖춘 중년여성
애인과 연적 둘러싸고 숨막히는 심리전
멜로·스릴러 오가며 ‘인간 이중성’ 그려

그런데 리비아와 빌 사이가 심상치 않다. 미리암은 리비아와 빌 사이를 질투하고, 경계하기 시작한다. 미리암은 어느날 빌에게 간 리비아가 밤 늦도록 돌아오지 않자, 무작정 차를 몰고 빌의 집으로 향한다. 빌에게 “리비아의 보호자로 왔다”고 한 다음 하필 불쑥 튀어 나온 말이 “리비아와 함께 잤냐?”다. 미리암이 빌에게 갖는 감정은 그만큼 감출 수 없는 본능에 가깝다. 미리암은 결국 빌을 유혹하고, 둘은 비밀스런 사이가 된다. 하지만 빌이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역시 리비아. 이쯤되면, 미리암이 ‘리비아가 없다면?’이라는 발칙한 가정을 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사랑에 눈먼 미리암에게 가정의 파괴, 주변의 시선, 닐스와 리비아의 불행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아니, 리비아가 사라져도 상관 없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여름휴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여름휴가
<미필적 고의…>는 처음에 평범한 가족드라마로 시작한다. 하지만 중반 이후 미리암, 빌, 리비아의 감정선을 따라가면서 드라마와 멜로, 스릴러를 교묘하게 오가며, 재미와 긴장감을 더한다. 한 여자의 일탈이라는 뻔한 영화를 뻔하지 않게 하는 건 미리암 속에서 끄집어낸 인간의 이중성이라는 보편적 소재이자 진리다. 여기에 발트해 인근의 휴양지와 일체의 배경음악 없이 담은 사실적인 소리들도 이 영화가 지닌 또다른 힘이다.


독일의 차세대 감독으로 주목받는 슈테판 크로머는 숨막히는 심리게임과 반전으로 적은 등장인물과 한정된 공간 속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연출력을 보여준다. 국내에서 개봉한 <타인의 삶> <굿 셰퍼드> 등에서 놀라운 변신과 연기력을 보여준 마티나 게덱이 여기에 힘을 보탰다. 덕분에 이 영화는 지난해 칸영화제에 ‘15인의 감독주간’ 초청작으로 뽑히며 주목받았다.

독일 영화이지만 붉은 태양과 푸른 바다, 요트를 배경으로 인간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프랑스 영화 <태양은 가득히>(1960)와 일맥상통하는 영화다. 변하지 않는 건 인간의 본질이다. 18살 관람가. 7월5일 광화문 시네큐브 개봉.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사진 세종커뮤니케이션스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