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코미디 영화의 최전선 ‘윤제균’ 감독
“어떤 영화 재밌게 보셨어요?” 우아한 척 해야 한다면 아무리 배꼽 빠지게 웃었더라도 윤제균(38) 감독의 영화를 말하긴 어렵다. “<색즉시공>과 <두사부일체>에 감동 받았어요.” 뭔가 고상하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윤 감독의 코미디는 대부분 사회적 체면 따위는 팝콘과 바꿔먹고 취향의 맨얼굴을 드러내게 하는 영화들이었다. “쓰레기 영화”라고 욕하더라도 보는 동안 침흘리며 웃었던 순간을 부정하진 못할 듯하다.
그의 코미디는 욕설과 폭력이 흥건했지만 항상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2002년 420만명을 끌어모은 <색즉시공>은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섹스코미디다. <두사부일체>는 조폭 코미디의 원조격에 들어간다. <낭만자객>에서는 무협과 코미디를 합쳤다.
매번 한국 코미디 영화의 최전선에 섰던 그가 <색즉시공 시즌2>를 기획하고 각본을 써 내놓았다. <색즉시공>의 조감독이었던 윤태윤 감독이 연출을 맡았지만 <시즌 2>는 1편을 빼닮았다. 너무 안전한 선택 아닌가? “상처받은 여자와 가진 것 없는 남자의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제가 멜로 감성이 부족하니까 <색즉시공> 2편으로 풀기로 한 거죠. 2편이니까 절반의 익숙함과 절반의 새로움을 넣으려 했어요. 그 익숙함 때문에 게으르게 전편에 기대 간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도 전략이에요.”
<색즉시공 시즌2>에도 엽기적인 화장실 유머가 가득한데 더 지저분해졌다. 항문에 장난 삼아 사탕까지 집어넣는다. “실제 있었던 일이에요. 제 주변에는 하자있는 애들이 많거든요. 1편에 나왔던 쥐약 든 햄버거 이야기도 자취집에서 벌어진 사건이에요. 상상만으로는 웃길 수가 없어요. 살아있는 에피소드가 와닿죠.” 그는 듣거나 본 웃기는 이야기를 핸드폰 메모장에 저장한다. 10만원권 수표 신권으로 바꿔오라 했더니 식권으로 바꿔오는 식의 실제 사건들로 저장 공간이 꽉찼다.
그에겐 나름의 ‘코미디 공학’이 있다. ‘상’은 상황코미디, ‘중’은 대사로 웃기는 것. ‘하’는 몸 개그인데 이를 삼색 무지개떡 쌓듯이 섞어 올린다. “지적 수준이 높건 낮건 모두 재미있게 볼 수 있어야죠.” 그의 영화들은 평론가들한테 외로운 별점 하나도 받기 힘들었다. 올해 <1번가의 기적>은 그에게 “네티즌 평점 8점 이상 받는 감격을 준 최초의 영화”라고 한다. “별점을 작품성하고 흥행성하고 두 개로 나눠주면 안되나요?”
그는 코미디가 특기이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수단일 뿐”이라고 말한다. <두사부일체>에서는 사학비리에 대한 분노, <색즉시공>에는 사랑은 장난이 아니라는 메시지, <낭만자객>에서는 효순이·미선이의 억울한 죽음을 향한 울분, <1번가의 기적>에서는 절망 속에서 피는 희망을 담았다.
그의 영화는 변두리 정서와 짠한 구석이 있다. <색즉시공>에서 시골에서 올라온 주인공 은식(임창정)이 식판에 밥을 고봉으로 쌓아놓고 허겁지겁 먹는 모습은 웃기고 서글프다. “원래 창정이가 밥을 정말 많이 먹어요. 제 주인공들은 멋지지 않고 빈틈이 있죠. <두사부일체> 때만 해도 웃긴 뒤 울리는 이야기를 하겠다니까 투자자들이 그런 게 어디 있냐고 반대했어요. 그런데 이후엔 그게 한국 코미디 영화의 공식처럼 굳어졌죠.”
대중적 눈높이와 질박한 정서는 그의 삶에 닿아있다. 중·고교 때는 모범생이었고 대학생 때는 남들처럼 놀았다. <영웅본색>을 보며 이쑤시개 씹고, 로버트 저메키스의 <백 투 더 퓨처>에 빠지며, 장 뤽 고다르 영화를 보고 잠드는 그는 ‘평균 수준’의 관객이었다. 공인회계사가 돼 돈 많이 버는 게 꿈이었다. 그가 영화판에 들어오게 된 것은 가난 때문이었다. 대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숨진 뒤 삶의 짐은 그의 어깨 위로 수직낙하했다. 그는 반지하 생활의 달인이다. 1998년 외환위기 때 다니던 광고회사에서 한달간 무급휴직을 당했다. “만원이 없어서 집 밖에 나갈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평생 써본적 없는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나온 코믹스릴러 <신혼여행>이 한 극본공모에서 대상을 탔다. “저는 바닥까지 가봐서 별로 두려운 게 없어요.”
그는 “해 본 것에는 투지가 안 생긴다”고 한다. 내년엔 제작비 100억원 규모의 재난 영화를 찍을 예정이다. 100만명 인파가 모여든 해운대에 해일이 밀려오는 이야기다. “나중에 스필버그의 <이티> 같은 에스에프를 만들고 싶어요.”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그는 “해 본 것에는 투지가 안 생긴다”고 한다. 내년엔 제작비 100억원 규모의 재난 영화를 찍을 예정이다. 100만명 인파가 모여든 해운대에 해일이 밀려오는 이야기다. “나중에 스필버그의 <이티> 같은 에스에프를 만들고 싶어요.”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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