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김민선
‘미인도’ 김민선
시나리오 맘에 들어 “캐스팅 안되면 유학간다” 엄포
“윤복처럼 도전하는 배우 될래요 느는 주름에도 초연해야겠고…” <미인도>는 전적으로 배우 김민선의 영화다. 극중 주인공은 명작 ‘미인도’를 그린 18~19세기 남성 화가 혜원 신윤복이지만, 영화 속 혜원은 허구적 여성으로만 존재한다. 김민선은 가문의 영광을 위해 남자로 신분을 숨긴 채 그려야 했던 ‘여인’ 신윤복을 연기한다. 김민선은 영화 속 신윤복으로 살아 숨쉬고, 그 신윤복은 김민선을 통해 뜨거운 정열을 폭발시킨다. 하지만 이 영화처럼 혜원의 성을 바꾼 드라마 <바람의 화원>이 고증 논란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연기는 더욱 눈길을 끌 수밖에 없다. 신윤복을 연기하기 위해 지난 10년간 쌓아올린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는 그를 지난 6일 <한겨레> 사옥에서 만났다. “시나리오를 처음 받은 건 지난 1월이었어요. 정식 제의는 아니지만, 우연히 아는 이를 통해 시나리오가 들어왔는데, 윤복 속에서 제 모습을 발견한 것 같았어요. 내 안에서 울고 있는 윤복을 만났다고 할까요. 그 모습이 너무 처연해 보여서, 이 녀석을 끄집어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어요.” 용기를 낸 김민선은 감독을 직접 찾아가 “캐스팅 안 되면 유학을 가버리겠다”고 ‘엄포’를 놨다.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된 혜원 작품들을 찾아 섭렵했다. 배역이 확정된 뒤엔 한국화가 최순녕씨한테서 일주일에 세번씩 그림 지도를 받았다. “지난 10년 동안 연기자로 배운 기교들을 다 버리고 처음부터 시작했어요. 걸음걸이, 동작 하나하나까지 윤복이고 싶어서.” 혜원의 시대는 조선후기 정조(1752~1800)의 치세와 겹친다. 정조는 문화 중흥기를 이끈 영민한 개혁 군주였지만, 세상에는 지켜야 할 옛 법도가 있다고 믿는 보수적 성향도 지닌 인물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조선을 떠받치던 ‘주자학’에 균열이 생기고, 당대 지식인들이 ‘서학’을 비롯한 새 사상에 끌리던 18세기 후반이 영화의 시대상이 된다. 스승인 단원 김홍도(김영호)와 종로 운종가를 거닐던 윤복은 시장통에서 청동 거울을 만들어 파는 장인 강무(김남길)의 목숨을 구한다. 은혜를 갚기 위해 윤복을 데리고 개울가를 찾은 강무는 우연히 윤복의 커다란 비밀을 눈치챈다. 떨리는 눈빛으로 윤복의 손에 입 맞추는 강무. 윤복은 그를 감쌌던 굴레를 벗어 던지고, 강무의 여인이 된다. 사랑에 빠진 윤복은 자연스런 희로애락의 감정을 화선지 위에 옮겨 명작들을 완성해 간다.
“5년 전 어머니의 죽음 뒤 슬럼프가 찾아왔어요. 그때 연기의 의욕과 목표를 잃었던 것 같아요. 발인한 다음날 임권택 감독님의 <하류인생> 촬영이 시작됐어요.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에서 영화를 찍고 나서, 먹지처럼 까맣게 타들어 간 저를 발견한 거죠.” 시간은 흘렀고, 상처는 아물었다. 1999년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에서 사려 깊은 여고생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소녀는 어느새 자기 나이를 책임질 시기에 접어들었다. 김민선은 “어느 날 문득 현장이 못 견디게 그리워졌다”고 했다. 몸과 마음을 추스른 그는 <가면>으로 스크린에 돌아왔다. “힘든 시간들을 견디며 자신감을 찾았어요. 배우는 한 번 자신감을 잃으면 다시 일어나기 힘들거든요. 이번 작품에도 꽤 심한 노출신이 있었는데, 어차피 할 것 자신감 있게 최고로 해내자고 마음먹었죠. 만족해요.” 모든 ‘속된’ 그림들이 왕 앞에 공개되던 날, 윤복은 형장에 끌려나와 모진 고초를 당한다. 윤복은 분노로 이글거리는 정조 앞에서 “흔들리고, 사랑하고, 유혹하는 인간의 마음이 사무치게 아름다워서 그릴 수밖에 없었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사랑에 흔들리는 인간의 모습, 윤복은 그런 자신을 받아 안아 마침내 구원에 이른다. “영화 속 윤복처럼 도전과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배우가 되어야겠죠. 이제 하나씩 늘어가는 주름살에도 초연해야겠고.”(웃음) <식객>의 전윤수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13일 개봉. 글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윤복처럼 도전하는 배우 될래요 느는 주름에도 초연해야겠고…” <미인도>는 전적으로 배우 김민선의 영화다. 극중 주인공은 명작 ‘미인도’를 그린 18~19세기 남성 화가 혜원 신윤복이지만, 영화 속 혜원은 허구적 여성으로만 존재한다. 김민선은 가문의 영광을 위해 남자로 신분을 숨긴 채 그려야 했던 ‘여인’ 신윤복을 연기한다. 김민선은 영화 속 신윤복으로 살아 숨쉬고, 그 신윤복은 김민선을 통해 뜨거운 정열을 폭발시킨다. 하지만 이 영화처럼 혜원의 성을 바꾼 드라마 <바람의 화원>이 고증 논란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연기는 더욱 눈길을 끌 수밖에 없다. 신윤복을 연기하기 위해 지난 10년간 쌓아올린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는 그를 지난 6일 <한겨레> 사옥에서 만났다. “시나리오를 처음 받은 건 지난 1월이었어요. 정식 제의는 아니지만, 우연히 아는 이를 통해 시나리오가 들어왔는데, 윤복 속에서 제 모습을 발견한 것 같았어요. 내 안에서 울고 있는 윤복을 만났다고 할까요. 그 모습이 너무 처연해 보여서, 이 녀석을 끄집어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어요.” 용기를 낸 김민선은 감독을 직접 찾아가 “캐스팅 안 되면 유학을 가버리겠다”고 ‘엄포’를 놨다.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된 혜원 작품들을 찾아 섭렵했다. 배역이 확정된 뒤엔 한국화가 최순녕씨한테서 일주일에 세번씩 그림 지도를 받았다. “지난 10년 동안 연기자로 배운 기교들을 다 버리고 처음부터 시작했어요. 걸음걸이, 동작 하나하나까지 윤복이고 싶어서.” 혜원의 시대는 조선후기 정조(1752~1800)의 치세와 겹친다. 정조는 문화 중흥기를 이끈 영민한 개혁 군주였지만, 세상에는 지켜야 할 옛 법도가 있다고 믿는 보수적 성향도 지닌 인물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조선을 떠받치던 ‘주자학’에 균열이 생기고, 당대 지식인들이 ‘서학’을 비롯한 새 사상에 끌리던 18세기 후반이 영화의 시대상이 된다. 스승인 단원 김홍도(김영호)와 종로 운종가를 거닐던 윤복은 시장통에서 청동 거울을 만들어 파는 장인 강무(김남길)의 목숨을 구한다. 은혜를 갚기 위해 윤복을 데리고 개울가를 찾은 강무는 우연히 윤복의 커다란 비밀을 눈치챈다. 떨리는 눈빛으로 윤복의 손에 입 맞추는 강무. 윤복은 그를 감쌌던 굴레를 벗어 던지고, 강무의 여인이 된다. 사랑에 빠진 윤복은 자연스런 희로애락의 감정을 화선지 위에 옮겨 명작들을 완성해 간다.
“5년 전 어머니의 죽음 뒤 슬럼프가 찾아왔어요. 그때 연기의 의욕과 목표를 잃었던 것 같아요. 발인한 다음날 임권택 감독님의 <하류인생> 촬영이 시작됐어요.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에서 영화를 찍고 나서, 먹지처럼 까맣게 타들어 간 저를 발견한 거죠.” 시간은 흘렀고, 상처는 아물었다. 1999년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에서 사려 깊은 여고생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소녀는 어느새 자기 나이를 책임질 시기에 접어들었다. 김민선은 “어느 날 문득 현장이 못 견디게 그리워졌다”고 했다. 몸과 마음을 추스른 그는 <가면>으로 스크린에 돌아왔다. “힘든 시간들을 견디며 자신감을 찾았어요. 배우는 한 번 자신감을 잃으면 다시 일어나기 힘들거든요. 이번 작품에도 꽤 심한 노출신이 있었는데, 어차피 할 것 자신감 있게 최고로 해내자고 마음먹었죠. 만족해요.” 모든 ‘속된’ 그림들이 왕 앞에 공개되던 날, 윤복은 형장에 끌려나와 모진 고초를 당한다. 윤복은 분노로 이글거리는 정조 앞에서 “흔들리고, 사랑하고, 유혹하는 인간의 마음이 사무치게 아름다워서 그릴 수밖에 없었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사랑에 흔들리는 인간의 모습, 윤복은 그런 자신을 받아 안아 마침내 구원에 이른다. “영화 속 윤복처럼 도전과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배우가 되어야겠죠. 이제 하나씩 늘어가는 주름살에도 초연해야겠고.”(웃음) <식객>의 전윤수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13일 개봉. 글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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