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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10월 첫째 주에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부국제)는 전세계 영화인들의 축제이며 동시에 국내 영화계의 1년을 결산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특히 부국제가 20돌 성년식을 치른 올해는 그 의미가 남다릅니다.
부국제 기간 동안 ‘영화의 전당’ 주변은 영화를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이른 아침부터 북적입니다. 하루 3~4편씩 쉬지 않고 영화를 보는 시네필도 많습니다. 하지만 부국제의 진짜 민낯이 드러나는 곳은 밤마다 이어지는 술자리. 영화인들은 저녁 7~9시 해운대 뒷골목에 하나둘 모여들어 새벽 4~5시까지 술자리를 가지는데요. ‘○○○의 밤’과 같은 투자·배급사의 공식 행사에서 시작해 개인들의 술자리로 삼삼오오 옮겨가는 것이 보통의 코스죠.
개막날 밤 만난 부산 출신 윤제균 감독과 제이케이필름 길영민 대표는 온통 연말 개봉 예정인 <히말라야> 얘기뿐이더군요. “배우·스태프가 고산병 때문에 죽을 뻔했어.” “개고생 했는데 손익분기점도 못 넘기면 어쩌지?”
<해운대>와 <국제시장>까지 두 편의 1000만 영화를 만든 윤 감독도 제작자로 나선 <히말라야> 앞에선 불안감이 앞서나 봅니다. 어쩌면 기대감을 낮추려는 고도의 전략인지도 모르죠. 아! 윤 감독은 영화 만드는 재주뿐 아니라 ‘비상한 기억력’으로 유명한데요. 이날도 7년 만에 다시 만난 한 기자의 이름을 만취 상태에서도 정확히 기억해 모두를 놀라게 했답니다.
2차로 간 술집에서는 노장 이장호 감독과 마주쳤습니다. 지난해 영화 <시선>으로 19년 만에 복귀한 이 감독은 후배인 윤제균 감독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흥행성과 작품성 사이에서 갈등을 할 수밖에 없을 거야. 나도 그랬어. 둘 다 잡으면 제일 좋지만, 어떤 선택을 하던 후회는 마.”
호텔 앞에서 만난 이준익 감독은 연신 “피곤해 죽겠어”를 외치더니 550만을 돌파한 <사도> 이야기에 “그 덕에 요즘엔 발 뻗고 편히 잔다”며 웃더군요. 명감독에게도 흥행 압박은 이기기 힘든 스트레스겠죠.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촬영 중인 강우석 감독은 아름다운 풍경을 담고자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느라 살이 7㎏이나 빠졌다더군요. “김정호 선생이 대동여지도를 만들고 홀연히 사라진 것처럼, 나도 영화를 완성하고 나면 어디론가 떠날 것”이라는 말을 7번쯤 반복했습니다. 그만큼 영화 제작이 힘겹다는 뜻일 테죠. 그 와중에도 주연 배우 차승원이 보낸 “감독님, 사랑합니다♥”라는 닭살 문자를 깨알자랑 하는 건 잊지 않더군요.
<다이빙벨> 상영으로 촉발된 부산시와 부국제의 갈등 탓에 정상적인 개최가 가능할까 하는 걱정도 나왔지만, 올해 영화제는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습니다. 지난해처럼 세월호 같은 큰 이슈도 없었고, 늘 반복되는 레드카펫 과다노출 같은 잡음도 없었습니다. “20돌인데 너무 조용한 것 아니냐”는 걱정이 나올 정도였죠.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영화제를 찾은 유료 관객수가 지난해보다 1만5000명 정도 늘 것 같다. 40~50대 이상 관객이 많아졌다”고 전했습니다. 중년 관객을 겨냥해 나스타샤 킨스키, 소피 마르소, 하비 캐이텔 같은 ‘왕년의 스타’들을 초청했는데, 젊은층 반응은 크지 않다며 아쉬워하더군요. “관객 스펙트럼이 넓어진 만큼 다양한 프로그램이 필요한데 예산이 없으니…”라는 ‘뼈 있는 푸념’도 덧붙였습니다.
부국제는 10일까지 계속됩니다. 시간이 나면 영화도 볼 겸 한번 들러보시는 건 어떨까요? 운이 좋다면 해운대 그랜드호텔 뒤편 술집에서 유명 배우·감독을 만날지도 모릅니다.
부산/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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