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은 따분한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다르다. 어떤 예술 장르보다도 역동적이고 아이디어가 넘치는 것이 무용, 특히 현대무용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당대성’과 ‘진보성’이다. 예술이 처한 현실에 철저히 뿌리박되, 끊임없이 새로운 화두를 제시하는 것이다. 연극이냐 무용이냐 하는 근대적 장르 개념은 이미 해체된 지 오래다. 그냥 ‘공연예술’이면 족한 것이다.
반면 우리는 연극과 무용 등 장르 사이의 장벽은 물론이고, 무용 안에서도 발레·한국·현대무용 등으로 전공을 나눠 편가르기에 열중하고 있다. 이런 폐쇄적 구조로는 21세기의 예술을 이끌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원로 예술인 박용구(92) 선생은 대중문화에 갇혀 있는 ‘한류’를 공연예술로 확장해 한류 르네상스를 꽃피우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유럽의 공연예술을 잘 살펴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성 싶다. 지금 유럽 무용이 전성기를 구가하는 이유를 짚는 글 두 편을 싣는다.
최근 세계적 현대무용가 혹은 단체를 꼽으면 재미있게도 대부분이 유럽에 근거를 두고 있는 사람이거나 단체다. 작년에 방한한 빔 반데키부스(벨기에),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모나코), 피나 바우쉬(독일), 제롬 벨(프랑스) 등도 모두 유럽인들이다.
이러한 경향은 상당히 오래된 것이어서, 유럽무용가들의 독주가 세계 무용계에서는 그다지 특별한 현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1990년대 초까지 만하더라도 현대무용, 하면 미국이 메카였으며 우리나라 사람은 물론 유럽인들조차 현대무용을 공부하거나 활동하려면 미국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어느새 초라한 변방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미국의 현대무용은 언제부터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을까? 1995년 <뉴욕타임스>는 이러한 조짐을 간파하고 그 심각성을 경고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의 미국 현대무용은 개선되기는커녕 더욱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다.
원인은 복합적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원인은 정부의 재정지원 축소로 대표 되는 정치적 신보수주의(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다. 실험성이 강하고 기존 예술의 형식과 전통을 거부하는 성향이 강한 현대무용은 진보적 지식인과 예술가들, 그리고 그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환호하는 대표적 장르다.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인 사회 분위기는 현대무용이 꽃필 수 있는 훌륭한 토양이 된다. 이는 미국 현대무용의 중흥기였던 1960~70년대가 반전운동, 히피문화와 같이 젊고 저항정신이 강한 문화와 정서로 대변 되는 시대였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나날이 보수화하고 있는 미국 사회에서 오늘날 왜 현대무용이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재정지원 삭감은 현대무용가들에게 이중의 고통을 안겨 준다.
최근 급격한 우경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일본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신사참배, 자위군 증강 등 날로 거세어 지고 있는 우경화의 일본은 현대무용가들에게는 답답한 공간일 뿐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현대무용가들 대부분이 일본을 떠나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유럽에서 현대무용이 단연 강세인 것은 상대적으로 좌파의 영향력이 강한 탓이다. 현대무용가들의 실험을 독려하고 그들의 전위적인 작품을 적극 옹호하는 유럽의 문화적 풍토가 민족과 국적을 초월하여 수많은 예술가들을 끌어 모으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작품을 감상하고 화두를 생산하며 논쟁의 한복판으로 현대무용을 끌어들이는 사람들 역시 좌파적 성향이 강한 지식인들이다.
그들은 다양성을 인정하고 열린 시각으로 관용과 포용의 자세로 창작 작품을 바라본다. 기존의 예술적 형식을 끊임없이 전복하며 나아가야 한다는 살아있는 사고가 오늘날 유럽 현대무용 발전의 모태가 되었다.
다양하고 혁신적인 현대무용이 그립다면, 그리고 우리는 왜 ‘얀 파브르’ 같은 작품을 만들 수 없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면, 우리나라의 정치·사회적 환경을 돌아보아야 한다. 물론 사람 농사도 중요하지만.
박성혜/무용평론가
gissell@freechal.com
공연예술 메카 벨기에 이유 있었네
외국문화 수용·전폭적 지원…
바야흐로 유럽 무용에서는 벨기에가 화두다. ‘벨기에 춤의 물결’은 불과 10년 사이에 유럽 공연예술계에 새로운 담론으로 급부상했다. 이제 우리에게도 벨기에 춤의 충격은 거의 실시간으로 다가온다. 10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오르는 <눈물의 역사>의 얀 파브르도 벨기에 사람이다. 이로써 우리는 벨기에 춤의 위상을 반석 위에 올린 빔 반데키부스,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 등 소위 ‘벨기에 빅3’를 모두 섭렵하게 되는 셈이다.
잇달아 큰 파장을 낳고 있는 이들 공연들은 많은 궁금증을 낳는다. 문화의 변경에 불과하던 나라가 어떻게 ‘몸’의 논리와 ‘비주얼’로 무장한 세계적 안무가들을 한꺼번에 쏟아낼 수 있었을까?
한국에 왔던 벨기에 춤 작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잘라 말한다. 바로 ‘전통의 부재’ 때문이라고. 유구한 예술적 전통을 자랑하는 나라들로 둘러싸인 벨기에는 외국의 전통을 수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당대의 흐름을 넘나드는 ‘젊은’ 예술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1970년대부터 재현과 서사를 벗어 던진 몸 연극의 경향을 비롯한 각종 아방가르드 실험들이 두터운 층을 형성할 수 있었고, 최근 들어 그 찬란한 결실을 보고 있다. 결국 어떤 예술에 국가적, 사회적 재원을 집중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로 1970~80년대에 걸쳐 벨기에에 상주했던 현대발레의 거장 모리스 베자르의 독주를 꼽는다. 여기서 베자르의 역할은 대단히 역설적이었다. 일단 사람들이 발레에 질리도록, 그래서 결국 ‘발레 이외의 모든 것’을 갈망하도록 만든 것. 무드라 학교를 세워 안무가들을 키웠지만, 재정지원을 독식하는 베자르 자신으로 인해 활로를 못 찾은 그들을 사정이 나은 다른 장르에 기웃거리게 한 것이다. 벨기에 춤에서 복합 장르적 성격이 자연스러워진 이유이기도 하다. 1987년 베자르가 떠난 후 젊은 춤꾼들의 빅뱅은 예견된 것이었다.
‘페스티벌’의 존재 역시 결정적이었다. 오로지 컨템포러리, 아방가르드를 ‘편애하는’ 각종 페스티벌들은 얀 파브르 같은 ‘젊은 악동’들에게 훌륭한 놀이터가 되어주었고, 장르를 넘나드는 파격적인 실험을 가능하게 했다. 더구나 외국과 공동제작이라는 적극적 전략으로 벨기에 안무가들에 대한 국제적 인지도를 높이면서, 외부로부터 내부의 지원을 북돋우는 전략을 사용했다.
결국 1990년대에 와서 판세는 완전히 뒤집혔다. 벨기에 현대춤의 르네상스가 보여준 당대를 수용하는 과감성, 전략의 구체성과 적극성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허명진/무용평론가
chorei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