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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한국현대무용 육완순-김매자, 큰 나무 짙은 그늘 ‘영욕 30년’

등록 2006-02-08 18:25수정 2006-02-09 17:42

매 맞으며…가출하며…무용은 달려왔죠

육완순(73)과 김매자(63). 한국 현대무용의 영욕은 이 두 대가들의 이름으로부터 비롯한다. 한때 스승과 제자 사이였지만, 뜻을 펼칠 무용단을 만든 것은 얼추 비슷했다. 1975년 육완순이 한국컨템포러리무용단을 만들자, 이에 자극받은 김매자가 1976년 창무회를 만들었다고 평자들은 전한다.

둘은 이화여대 체육학과(무용전공) 출신으로 이화여대 무용학과 교수를 지냈고, 입시부정으로 동시에 학교를 그만 뒀으며, 여전히 현장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억척스런’ 현재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인생 행로를 걷고 있다. 그리고 예의 가공할 카리스마로 현대무용계를 양분하며 30년을 풍미하고 있다.(창무회의 한국 창작춤은 전통을 단순히 보존하는 춤이 아니라는 점에서 현대무용으로 분류해야 마땅하다.)

춤=기생이라는 통념과의 싸움

“그때만 해도 춤 추면 다들 기생되는 줄 알았어요. 나도 오빠한테 많이 맞았어요. 동생이 기생 될 것 같으니까 부아도 났겠지.”(김매자)

육완순은 아예 가출을 감행했다. 이대 심리학과에 재학 중이던 선배에게 우편으로 원서를 보내달라고 한 뒤, “전주 역 플랫폼으로 밀고 들어오는 증기기관차에 무조건 몸을 실었다.”

안무가로서 두 사람의 성공은 춤이 순수예술로 받아들여지는 계기가 됐다. 춤은 기생들이나 추는 저급한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깨지기 시작한 것이다.

창무회 공연 모습
창무회 공연 모습



미국식 현대무용:한국식 현대무용

육완순은 미국 일리노이대학원과 마사 그레이엄 무용학교에서 배운 뒤, 1963년 귀국해 당시 신설된 이대 무용학과 교수가 됐다. 이후 수많은 제자를 교수로 배출해 주요 대학의 무용과에 이른바 ‘육완순 인맥’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이는 들숨과 날숨에 바탕한 ‘수축과 이완’을 강조하는 마사 그레이엄류의 무용이 우리나라 무용계에 뿌리내리는 계기가 된다.

김매자는 뉴욕대 무용과 박사과정에 입학했지만, 이내 돌아와 한국적인 것에 천착했다. 인왕산 국사당에서 무당들의 굿을 구경했고, 채희완(무용평론가·부산대 무용학과 교수) 등과 함께 탈춤을 배우러 다녔으며, 송암 스님의 범패에 맞춰 춤을 췄다. 전통 춤을 섭렵해, 이 시대의 한국 춤을 만들겠다는 큰 뜻을 세운 것. 70년대 후반에는 맨발로 춤을 춰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한국 춤을 추려면 꼭 ‘버선’을 신어야 한다고 믿던 당시 사람들은 “지가 무슨 이사도라 던컨인 줄 아나”하고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곧 너도나도 ‘맨발 춤’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대학으로-무용의 자살

이들이 대학에 안착한 것은 개인 연구소 중심이었던 우리나라 무용이 대학 위주로 재편되는 결과를 낳았다. 대규모 무용수와 심지어 ‘관객’까지 동원가능한 대학이라는 공간은 역으로 무용의 대중화를 가로막는 주범이 됐다. 44개 대학에 무용학과가 생기고 한해 2000명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할 만큼 무용계가 성장했지만, 현대무용을 자기 돈 내고 보는 사람은 얼마 안된다. 품앗이하듯 서로 공연을 봐주고, 제자를 ‘동원’하는 ‘집안 잔치’ 관행은 여전히 뿌리깊다.

“대학 무용이 어떻게 ‘퍼블릭’을 형성합니까? 이제 대학 무용의 시대를 끝내고 직업무용단으로 가야합니다.”(무용평론가 박용구)

두 단체의 나이테가 늘어갈수록 창작정신은 도리어 말라가고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선생님들의 ‘원본’만을 열심히 익히고 닦다 보니까, 자기만의 춤을 만들려는 의지를 잃었다는 것이다. “무의미한 팔 다리 운동”은 그만해야 한다는 자조마저 들린다.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안무가들(안성수, 홍승엽, 정영두)이 학부에서 무용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이고, 모두 남자라는 점은 눈여겨 봐야할 사실이다.

한국컨템포러리무용단 공연 모습
한국컨템포러리무용단 공연 모습


현대무용 재발견을

육완순의 한국컨템포러리무용단과 김매자의 창무회는 지난 1월 20일, 같은 날에 30주년 기념 공연을 했다. 컨템포러리 쪽의 내부사정으로 공교롭게 겹친 것이라지만, 무용계 관련 인사들은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 잠시 어리둥절해 했다.

두 단체는 이달에도 같은 날 공연을 한다. 육완순은 오는 17일 서울열린극장 창동에서 자신의 대표작 <수퍼스타 예수그리스도 2006>을 무대에 올린다. 34년동안 260여차례를 공연하며 우리나라 무용 공연의 새로운 역사를 쓰는 중이다. 사위인 가수 이문세씨가 음악감독을 맡았다.

김매자의 창무회는 17~18일 <창무 한국창작춤 메소드공연II>를 서울 홍대 앞 창무예술원 포스트극장에서 한다. 오는 12월까지 달마다 30주년 기념 공연을 이어갈 계획이다.

“30년 전의 암울한 시기가 무용에 있어서는 중흥의 시대였나, 하는 생각을, 군사독재를 빈정거리는 마음으로 하게 돼요. 육완순과 김매자 두 분이 하신 일이 크지만, 무슨 인간문화재한테서 기량을 이어받는 식으로 가면 곤란하죠. 선배들을 딛고 미래로 나가야 하는, 그런 재도약의 시기가 된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무용평론가 이상일)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옛 것 그만 울궈먹고 자신만의 예술 하길”

김매자 창무예술원이사장

“김매자 선생은 거의 동물적인 촉수를 가졌어요. (예술이) 되는 것을 골라내는 힘이 대단하죠. 그게 30년을 버티게 한 힘입니다.”(윤정섭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대미술)

김매자의 ‘동물적 촉수’가 최고의 스태프들이 최상의 실력을 발휘하게 하는 ‘운동장’이었다면, “욕망의 매자”(채희완 부산대 교수·무용학과)라고 불릴 정도로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은 창작의 ‘기관차’ 구실을 했다.

그의 대표작 <심청>은 그런 동물적 촉수와 열정이 행복하게 조우한 경우다. 2시간에 걸친 판소리 라이브와 객석을 가로지르는 장쾌한 무대, 현대적으로 재무장한 한국의 춤 사위는 외국인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지난해 일본 순회공연을 한 그의 <심청>은 올해, 무용인들이 ‘꿈의 무대’라 일컫는 프랑스 리옹의 ‘메종 드 라 당스’에 초청됐다. 오는 11월에는 ‘프랑스 현대무용의 대모’ 카롤린 칼송과 함께 공동공연을 할 예정이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80년대부터 그의 공연이 외국에 ‘잘 팔렸던’ 까닭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한국적 현대무용’이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볼쇼이발레단의 ‘살아있는 전설’ 유리 그리고로비치를 비롯한 세계적 안무가들과 막역할 정도로 친해질 수 있었던 것도 “남의 것이 아닌 내 예술을 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김매자 이후’다. 그의 영광이 오래 지속될 수록 그늘도 커지고 있다. “젊은이들이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모르고, 옛날 것 가지고 울궈먹으려고 한다”고 일갈해 보지만, 그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그는 잘 안다.

“요즘 젊은 무용가들의 목표는 대학에 안착하는 거에요. 나는 대학에 자리잡은 사람은 (예술적으로) 포기한 것이라고 봅니다. 나도 왜 진작 학교를 그만두지 않았나, 하는 후회를 한다니까요. 춤만 춰야겠다는 의식이 얼마나 확고하냐가 중요한 거죠.”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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