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임윤찬(18)이 미국에서 열린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결선에서 마린 알솝(66)의 지휘로 연주하고 있다. 목프로덕션 제공
10대 피아니스트 임윤찬(18)이 세계적 권위의 피아노 대회인 제16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60년 역사의 이 대회 최연소 우승자다.
18일(현지시각) 오후 발표된 대회 최종 심사 결과, 결선에 진출한 피아니스트 6명 가운데 임윤찬이 1위를 차지했다고 반 클라이번 재단이 밝혔다. 결선은 지난 14일부터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의 베이스퍼포먼스홀에서 진행됐다.
임윤찬은 두곡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해야 하는 이번 결선에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번과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압도적 기교와 풍부한 표현력으로 연주해 일제히 기립한 청중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앞선 준결선에서도 극도의 테크닉과 집중력이 요구되는 리스트의 ‘초절정기교 연습곡’ 12곡 전곡을 65분에 걸쳐 쉬지 않고 연주해 청중을 놀라게 했다. 특히, 유튜브로 중계된 그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연주를 두고선 ‘기념비적 명연’이란 전문가들의 찬사가 잇따르고 있다. 유튜브 댓글에도 임윤찬에게 우승이 돌아가야 한다는 댓글이 많이 달렸다.
임윤찬은 상금 10만달러(한화 약 1억2900만원)와 음반 녹음 및 3년간 세계 전역의 매니지먼트 관리와 월드 연주 투어의 기회를 갖게 된다. 지난 2일 시작된 이번 대회엔 51개국 388명의 피아니스트가 지원했으며, 이 가운데 예선을 통과한 30명이 경연을 펼쳤다.
1962년부터 4년마다 열리는 이 대회는 쇼팽 콩쿠르처럼 피아노 부문에 한정된다. 냉전이 한창이던 1958년 옛 소련에서 열린 제1회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해 '미국의 영웅'으로 떠오른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1934-2013)을 기리는 대회다. 재단이 입상자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세계 3대 콩쿠르로 꼽히는 쇼팽 콩쿠르, 차이콥스키 콩쿠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뒤지지 않는 명성을 얻고 있다. 지난 대회(2017년) 우승자가 선우예권이었다. 손열음은 2009년, 양희원(미국명 조이스 양)은 2005년 각각 2위에 올랐다. 최근 작고한 세계적 피아니스트 라두 루푸가 1966년 이 대회 우승자였다.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10대 피아니스트 임윤찬(18). 금호아트홀 제공
임윤찬은 2019년 15살 나이에 윤이상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괴물급 신인’으로 널리 이름을 알렸다. 14살이던 2018년엔 미국 클리블랜드 청소년 콩쿠르에서 2위에 올랐다. 시작은 평범했다. 대개 그렇듯, ‘악기 하나쯤 다루는 게 좋겠다’는 어머니의 권유로 7살 때 ‘동네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다. ‘천재 피아니스트 계보’에선 상대적으로 늦게 피아노를 시작한 셈이다. 집안에 음악을 하는 사람도 없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예술의전당 음악영재아카데미 오디션에 합격하면서 재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가수 유재하를 좋아한다는, 여전히 소년티가 감도는 천재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2017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피아니스트 손민수에게 배우고 있다. 손민수는 “음악에 몰입해 사는 모습이 마치 18~19세기에 사는 듯하다”며 제자에게 ‘시간여행자’란 별명을 붙여줬다. 임윤찬은 지난해 10월 서울과 대구, 성남에서 리스트의 ‘초절정기교 연습곡’으로 독주회를 열고, 국립심포니, 수원시향, 강남심포니 등 국내 여러 교향악단과도 협연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이번 대회 심사위원장이자 결선 무대에서 포트워스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이끈 지휘자 마린 알솝(66)은 2019년 개봉된 영화 <지휘자>(The Conductor)의 실제 주인공이다. 미국 유명 교향악단의 첫 여성 상임지휘자가 되면서 ‘유리천장’을 깬 그는 14년 동안 볼티모어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다 지난해부터 빈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