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공영방송 <RTBF>의 공연·연주실황 녹화·중계 담당 책임자이자 음악 다큐멘터리 감독인 티에리 로로. 한국 클래식 음악을 다룬 자신의 두번째 다큐멘터리 영화 <케이(K)클래식 제너레이션> 개봉을 앞두고 17번째 방한했다. 엣나인필름 제공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이 자유로워졌다. 이전엔 기술적인 테크닉에 집중했었는데, 이제는 내면의 이야기를 꺼내 각자의 방식대로 표현한다.”
벨기에 공영방송(RTBF) 음악감독인 티에리 로로(64)가 주요하게 꼽은 ‘케이(K)클래식 돌풍’의 비결이다. 그는 한국의 클래식 음악을 다룬 2편의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두번째 작품 <케이클래식 제너레이션> 개봉(31일)을 앞두고 한국을 찾은 그를 지난 26일 서울 동작구의 영화관 아트나인에서 만났다. 2010년 첫 방한 이후 이번이 17번째 한국 방문이다.
그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권위의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를 26년째 현장에서 중계해오고 있다. 그의 눈에 한국 연주자들은 특별해 보였다. “2009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1라운드의 40%, 결선에 진출한 12명 가운데 5명이 한국 연주자였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정말 궁금했다.” 그가 2012년 만든 다큐 <한국 클래식의 수수께끼>는 ‘국제 콩쿠르에 왜 이렇게 한국인 연주자들이 많지?’란 질문에서 출발했다. 지난해 디엠제트(DMZ) 다큐멘터리 영화제에 출품한 두번째 다큐 <케이클래식 제너레이션>은 ‘한국 연주자들이 콩쿠르에서 연달아 우승하는 비결은 뭐지?’란 궁금증이 계기였다. “2014년부터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 수상자들이 쏟아졌다. 한국 클래식 음악에 이전과 또 다른 변화가 있다는 걸 느꼈고,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케이클래식 제너레이션>은 ‘지난 20년간 (한국인) 700명이 국제 콩쿠르 결선에 올라, 110명이 우승했다’는 설명으로 시작한다. 2014년과 2015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소프라노 황수미,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 외에 2015년 부소니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문지영, 2018년 영국 위그모어홀 국제 현악사중주 콩쿠르에서 우승한 에스메콰르텟과 가족, 스승 등을 인터뷰했다.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윤현주 서울대 교수, 피아니스트 조성진을 지도한 파리 국립고등음악원 미셸 베로프 교수 등의 의견도 담았다.
한국 젊은 클래식 연주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케이클래식 제너레이션>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이 2015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연주하는 장면. 엣나인필름 제공
그는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 연주자들이 연거푸 우승을 차지하는 이유를 ‘자유’ ‘롤모델’ ‘영재교육’이란 3가지로 열쇳말로 설명했다. “음악이란 결국 자신을 표현하는 거다. 한국 학생들이 자신을 좀 더 자유롭게 표현하는 흐름이 활발해진 것 같다.” 그는 “한국의 음악교육이 학생들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쪽으로 변화한 것 같다”며 “학생들도 음악에서 그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된 것 같다”고 짚었다. 이전엔 테크닉에 집중했는데, 이제는 거기에 표현의 깊이가 더해지면서 국제 콩쿠르에서도 먹히고 있다는 분석이다. 로로 감독은 콩쿠르에서 우승한 연주자들이 젊은 음악가들의 롤모델이 되면서 ‘클래식을 열심히 하면 유명해지고 스타가 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점도 ‘케이클래식 상승세’의 요인으로 꼽았다. 그는 “클래식을 통해 최고가 되고자 야심 찬 미래를 꿈꾸는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이 보기에 좋다”며 “유럽에선 클래식이 나이 든 층의 음악인데, 한국에선 젊은이들의 음악”이라고 놀라워했다.
그는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한국의 영재교육 시스템을 부러워했다. “영재교육원이 9~10살의 재능 있는 학생들을 선발해 대학 수준의 교육을 집중적으로 제공한다”며 “최근 12개월 사이 치러진 4개의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모두 영재교육원 출신 연주자들이 우승했다”고 했다. 올해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임윤찬,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첼리스트 최하영, 지난해 몬트리올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김수연, 부소니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박재홍 등이 모두 한국예술영재교육원 출신이다. 그는 “유럽에도 영재 교육기관이 있지만 국가가 이토록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은 아니다. 대체로 개인 혼자서 이뤄내야 한다”고 했다.
영재교육의 문제점으로 흔히 지적하는 ‘과열 경쟁, 성과 지상주의’에 대한 그의 생각은 양면적이었다. “9살부터 9시간씩 연습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밖에 나가 놀면서 자신의 특성을 발견해야 할 어린이가 방에 갇히다시피 해 연습만 하는 건 유럽의 관점에서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러면서도 그는 예술교육의 특성을 강조했다. “클래식 연주는 언어를 습득하는 것처럼 어린 나이에 집중적으로 익히는 게 효율적이다. 나는 악기 연주에 관한 한 한국의 집중적인 교육 방식에 그렇게 부정적이지 않다.”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과 2015년 부소니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문지영.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 사이다. 엣나인필름 제공
물론 유럽인의 시각으로 보는 한국 클래식 음악의 실상에 한계가 없을 수 없다. 그는 젊은 관객이 많다고 한국 클래식계를 부러워하지만, 유럽·일본과 견줘 국내엔 클래식 무대 자체가 적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더라도 설 수 있는 무대는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의 경쟁력에 대한 그의 관심은 적중했다. 그가 두번째 다큐를 만든 뒤에도 박재홍, 양인모(시벨리우스 콩쿠르 우승), 임윤찬 등이 잇따라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아마 세번째 다큐를 만들 수도 있을 거다. 2편 만든 지 1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시간이 좀 지나고 새로운 음악가들이 발굴되면 다음 작품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로로 감독은 벨기에 공영방송(RTBF)의 공연·연주실황 녹화·중계 담당 책임자다. 그 자신이 브뤼셀 음악원에서 오보에와 음악학을 전공한 전문 연주자 출신이다. <하모니카의 전설, 투츠 틸레망> 등 세계적인 음악인들을 담은 다큐 40여편을 찍었다. 2009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결선에 한국인 연주자들이 유독 많이 진출하는 걸 보고 한국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브뤼셀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도 배웠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