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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첼로가 아쟁 소리를…윤이상의 K오페라 ‘심청’ 22년 만에 무대로

등록 2022-11-15 07:00수정 2022-11-15 09:36

18~19일 국내무대 올라…원작대로 독일어 공연
1972년 독일 초연뒤 1999~2000년 국내 무대가 마지막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 2막에서 심 봉사가 심청과 해후하며 마침내 눈을 뜨게 되는 장면을 심 봉사 역의 바리톤 김병길(오른쪽)과 심청 역의 소프라노 윤정난이 연습하고 있다. 대구오페라하우스 제공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 2막에서 심 봉사가 심청과 해후하며 마침내 눈을 뜨게 되는 장면을 심 봉사 역의 바리톤 김병길(오른쪽)과 심청 역의 소프라노 윤정난이 연습하고 있다. 대구오페라하우스 제공

“외국 극장들과 공연 협상을 할 때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이라고 하면 곧바로 반응이 왔어요. 5분도 걸리지 않고 타결됐습니다.”(정갑균)

“서양 악기로 연주하는데 한국의 소리를 표현했어요. 한국 음악을 세계에 알리려는 강렬한 열망이 담긴 곡이죠.”(최승한)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 공연을 책임진 두 사람은 세계 무대에 선보일 이 작품의 잠재력과 가치를 강조했다. 정갑균 대구오페라하우스 예술감독이 연출을, 최승한 연세대 명예교수가 지휘를 맡았다. 오는 18~19일 대구오페라하우스 공연을 앞두고 두 사람을 지난 10일 온라인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심청>은 1972년 뮌헨올림픽 문화축전을 위해 독일이 윤이상에게 위촉한 작품. 초연은 그해 뮌헨 바이에른 국립오페라극장에서였다. 저명한 지휘자 볼프강 자발리슈(1923~2013)의 초연 당시 “동양의 신비한 정신세계를 심오한 음향과 정밀한 설계로 표현해냈다”는 독일 언론의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합창단을 포함해 200여명 가까운 인원이 필요한 방대한 작품인데다 연주가 어려운 탓인지 초연 이후 국외에서 공연된 적은 없다. 국내에선 윤이상의 정치 색깔과 이력 시비로 1999년에야 초연이 이뤄졌다. 이듬해 한 차례 더 공연한 뒤로 22년 만에 이번 무대에 올리는 것이다.

윤이상의 오페라 &lt;심청&gt; 연출을 맡은 정갑균 대구오페라하우스 예술감독이 출연자들에게 동작을 시연하고 있다. 대구오페라하우스 제공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 연출을 맡은 정갑균 대구오페라하우스 예술감독이 출연자들에게 동작을 시연하고 있다. 대구오페라하우스 제공

<심청>에 대한 정 감독의 포부는 원대하다. 외국 극장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해 ‘한국 오페라의 대표작’으로 전세계에 알리겠다는 거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오페라 브랜드로 만드는 게 목표죠.” 그는 “그럴 만한 힘이 있는 작품”이라고 했다. “외국 극장 관계자들은 대부분 윤이상과 오페라 <심청>을 잘 알고 있었어요. 난해한 작품이란 것도요. 이 작품을 하겠다고 하면 금세 교류가 성사됐어요.” 이번 대구오페라하우스 공연은 국내에선 묻혀 있던 이 작품에 다시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원작을 살려 독일어로 공연하되 한국어와 영어 자막을 다는 이번 공연은 세계 무대에 진출하는 날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4개 국가 공연이 확정됐다. 2024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와 불가리아 소피아, 2025년 이탈리아 볼로냐, 2026년 독일 만하임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다.

윤이상의 오페라 &lt;심청&gt; 지휘를 맡은 최승한 연세대 명예교수. 1999년 국내 초연도 그가 지휘했다. 대구오페라하우스 제공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 지휘를 맡은 최승한 연세대 명예교수. 1999년 국내 초연도 그가 지휘했다. 대구오페라하우스 제공

최 지휘자에게 <심청>은 이번이 두번째. 1999년 국내 초연도 그가 지휘봉을 잡았다. 그가 보기에 이 작품은 서양 악기로 연주하지만 뿌리는 한국 음악이다. 창과 시조, 농현(가야금과 거문고 등 전통 현악기 연주에서 여러 장식음을 내는 기법) 등 온갖 국악기 주법이 동원되기 때문이다. “선율과 화성에서 벗어나야 해요. 장조, 단조 등 기존 음악과 다른 관점에서 새롭게 들으면 이 작품이 가까이 다가올 겁니다.” 지휘자가 귀띔하는 감상법은 그림처럼 접근하라는 것. “피카소 작품도 처음엔 낯설었지만, 지금은 더 난해한 작품이 많이 나오잖아요. 그림도 부분만 보면 손에 잡히지 않잖아요. 이 작품도 음의 부분이 아니라 전체 음의 덩어리를 느껴보세요. 멜로디를 버리고 음색과 음향을 들어야 합니다.” 그는 “도가 사상에 심취한 윤이상이 우주적인 생각들, 우주가 품고 있는 것들을 표현하려고 했다”며 “이 작품에 무수한 소리가 들어 있다”고 했다. 성악 파트도 ‘눈물 나게’ 어렵다고 했다. 악보를 받아 든 성악가들이 처음엔 “안 할 수는 없느냐”고 말할 정도였다고. 최 지휘자는 “그래도 이제는 노래가 악보대로 나온다”며 “가수들도 처음엔 그렇게 낯설어하더니 점점 괜찮아진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윤이상의 오페라 &lt;심청&gt;에서 심 봉사 역을 맡은 바리톤 제상철이 리허설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옥진 아씨 역의 소프라노 강수연. 대구오페라하우스 제공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에서 심 봉사 역을 맡은 바리톤 제상철이 리허설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옥진 아씨 역의 소프라노 강수연. 대구오페라하우스 제공

정 감독은 <심청>이 서구 음악계에 ‘오페라의 신세계’를 보여준 작품이라고 평했다. 실험적, 전위적 기법을 대형 오페라로 만들어 접근한 첫번째 작품이라는 거다. 저명한 현대음악 작곡가 존 케이지가 이 작품을 일컬어 ‘세상에서 가장 정교하게 짜인 완벽한 소음’이라고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한국 악기는 ‘박’(拍)이란 타악기가 유일하다. 그렇지만 한국인이 들으면 ‘한국의 소리’가 들어 있다는 걸 금세 눈치챌 수 있다. 첼로는 아쟁, 하프는 가야금 소리를 표현하고, 오보에와 플루트는 피리와 대금 음향과 흡사하다. 정 감독은 “서양 악기들이 한국 악기의 변화무쌍한 특성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눈여겨보면 상당히 즐거우실 것”이라고 말했다.

윤이상의 오페라 &lt;심청&gt; 국내 초연 장면. 1999년 5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했다. &lt;한겨레&gt; 자료사진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 국내 초연 장면. 1999년 5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정 감독은 국립창극단 상임 연출을 맡아 여러차례 창극 <심청>을 무대에 올린 경험이 있다. 그는 “오페라 <심청>에도 판소리나 창극의 극적 전개요소가 그대로 들어 있다”며 “국립창극단 시절의 경험을 연출과 무대 디자인에 활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작품을 ‘한국의 사상과 유교, 불교, 도교가 녹아든 판타스틱 드라마’로 해석한다. 그 연장선에서 “상징적이고 미니멀한 무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오페라는 문학과 음악의 결합인데 쓰인 언어가 매우 중요해요. 운율이나 뉘앙스에 따라 쉼표나 음절의 길이도 달라질 수 있지요. 원래 음악을 제대로 표현해보려고 했어요.” 정 감독이 원작대로 독일어 공연을 고집한 이유다. 유럽 무대에 한국어 공연으로 진출하긴 어렵다는 판단도 작용했다고 한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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