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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핀란드 심장 관통한 ‘양인모의 시벨리우스’

등록 2022-12-14 07:00수정 2022-12-14 11:22

양인모-헬싱키필 협연 현장 리뷰
지난 8일(현지시각) 헬싱키 뮤직센터에서 연주하고 있는 양인모. 헬싱키 필하모닉 제공
지난 8일(현지시각) 헬싱키 뮤직센터에서 연주하고 있는 양인모. 헬싱키 필하모닉 제공

지난 8일(현지시각) 핀란드 헬싱키. 일찍 저문 해와 이례적인 폭설로 도시 전체가 굼떠진 와중에도 1700여석 규모의 헬싱키 뮤직센터만은 꽉 찬 청중들로 활기가 넘쳤다. 핀란드 작곡가 장 시벨리우스의 157번째 생일인 이날 저녁 뮤직센터에서 펼쳐질 ‘핀란드 음악의 날’(Finnish Music Day) 공연 티켓은 이미 석달 전에 매진됐다. 이 공연장 상주악단인 헬싱키 필하모닉의 이번 공연은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얼마 전 타계한 핀란드 작곡가 야코 쿠시스토의 교향곡의 핀란드 초연으로 프로그램이 구성됐다. 작곡가부터 지휘자까지 모두 핀란드인 일색으로, 흡사 국경일 행사를 연상케 한 이 무대에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는 유일하게 초대된 외국인 아티스트였다.

헬싱키 필하모닉은 1904년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가 본인의 지휘로 초연한 악단이다. 그 이후 200번도 넘게 이 곡을 연주한 내력이 있다. 양인모는 올해 시벨리우스 콩쿠르 우승자 자격으로 초대됐는데, 공연 프로그램 전체를 주도한 지휘자 오스모 벤스케는 특히 양인모에게 거는 기대가 남달랐다. 벤스케는 올해 콩쿠르에서 양인모의 연주를 지켜봤고, “시벨리우스 연주가 전혀 다른 수준으로 올라간 것을 보고 눈물이 터져 나왔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벤스케는 2019년 서울시향 공연에서 양인모와 함께 시벨리우스 협주곡을 연주한 적이 있다. 안타깝게도 이 공연 직전 부상을 입은 벤스케를 대신해 이날 1부 공연은 핀란드 실내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인 얀 쇠데르블롬이 지휘했다.

지난 8일(현지시각) 헬싱키 뮤직센터에서 연주하고 있는 양인모. 헬싱키 필하모닉 제공
지난 8일(현지시각) 헬싱키 뮤직센터에서 연주하고 있는 양인모. 헬싱키 필하모닉 제공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의 전통을 오랜 세월 체현한 헬싱키 필하모닉과 양인모의 연주는 작곡가가 이 곡을 통해 추구했던 실내악적 앙상블의 완벽한 구현으로 드러났다. 솔리스트가 부각되고 악단이 뒤에서 지원하던 콩쿠르 공식과는 전혀 다르게 시작된 이날 연주는 양인모의 바이올린 연주가 악단의 일부로 스며들어 서로 유기적으로 교감했다. 악단의 목관·현악 단원과 솔리스트가 주고받는 음악적 대화는 서로를 압도하는 법이 없었고, 그 사이에 형성된 분위기는 긴장감보다 친밀감에 가까웠다.

콩쿠르 부상으로 받아 양인모가 올해 여름부터 연주하기 시작한 과다니니는 특히 2악장 도입부에서 풍부하면서도 따스한 중저음을 뿜어내며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바깥 날씨와 더없이 어울렸던 시벨리우스 협주곡의 마지막 한 음이 끝나자 객석에서는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고, 양인모는 버르토크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중 프레스토로 이에 화답했다. 공연을 지켜본 라우리 라티아 시벨리우스협회 위원장은 “기교를 넘어서 정서적으로 핀란드인의 심장을 관통하는 명연주”라고 찬사를 남겼다.

10일과 11일에도 시벨리우스협회가 주최하는 양인모의 리사이틀이 헬싱키 리타리하우스에서 열렸다. 8일과 마찬가지로 만석을 이룬 이 공연들은 에스토니아 출신의 중견 피아니스트 이리나 자하렌코바와 함께 슈베르트 소나타 D574와 시벨리우스 소품들, 비에니아프스키 곡 등으로 다채롭게 꾸며졌다. 슈베르트와 시벨리우스 작품들이 악기 사이의 이상적인 밸런스가 돋보이는 조화로운 분위기였다면, 마지막으로 연주된 비에니아프스키의 ‘파우스트’ 환상곡은 연주자의 화려한 테크닉과 열정으로 강렬한 순간을 선사했다. 격정적인 피날레가 끝나자마자 청중들은 모두 기립해 환호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지난 8일(현지시각) 헬싱키 뮤직센터에서 연주하고 있는 양인모. 헬싱키 필하모닉 제공
지난 8일(현지시각) 헬싱키 뮤직센터에서 연주하고 있는 양인모. 헬싱키 필하모닉 제공

이틀 동안의 리사이틀 공연 또한 대부분 이 지역의 시민들로 빼곡하게 들어찼다. 부모와 함께 온 어린이들부터 노령의 애호가까지 연령층이 다양했는데, 그 와중에 젊은 남성 관객층이 유달리 두터웠던 것은 서유럽 공연장과 확연히 다른 풍경이었다. 공연을 지켜본 핀란드 음악학자 티모 비르타넨은 “타인의 연주를 모방하려 들지 않고 음악 뒤에서 자신만의 고유의 아이디어를 기어코 찾아내는 것이 양인모의 음악이 지닌 미덕”이라고 평했다. 이런 유연함의 미덕은 또한 시벨리우스가 추구하던 것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음악이 한결같은 방식으로 반복되기보다는 연주자들이 저마다의 해석으로 지평을 넓혀주길 간절히 원하던 작곡가였다.

조만간 한국 청중들도 종주국에서 그토록 극찬하는 양인모의 시벨리우스를 들을 수 있다. 오는 2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양인모는 디토 오케스트라와 함께 시벨리우스 협주곡을 연주한다. “매 순간 이전과 똑같은 음악을 연주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이 젊은 연주자의 또 다른 시벨리우스를 기대해봄 직하다.

노승림/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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