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저녁 강릉 아레나에서 진행된 세계합창대회 개막식에서 우크라이나에서 온 ‘보그닉 소녀 합창단’이 입장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강릉세계합창대회 조직위원회 제공
3일 개막한 강릉 세계합창대회에서 가장 눈길을 모은 팀은 전쟁 와중에 참석한 우크라이나 ‘보그닉 소녀 합창단’이었다. 개막식 때도 이들이 입장할 때 가장 큰 박수가 쏟아졌다. '모두를 위한 평화와 번영’이란 주제 아래 오는 13일까지 이어지는 이 대회엔 전 세계 46개국 324개 팀이 참여했다.
우크라이나 보그닉 합창단은 1970년 창단돼 전 세계에서 공연해온 유서 깊은 합창단이다. 하지만 이번 대회엔 참석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연습하는 도중에 공습경보가 발령되면 그때마다 단원들 지하 대피소로 옮겨야 했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3시간 이상 기다리기도 했다. 한국으로 오는 길도 쉽지 않았다. 합창단원 38명은 하늘길이 막혀 16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폴란드로 이동한 뒤에야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어렵게 내한한 이들은 개막식에 앞서 4월 강릉 산불로 피해를 본 이들을 위로하는 공연도 선보였다. 합창단원들은 흰 티셔츠에 불을 상징하는 문양이 새겨진 옷을 입고 탬버린과 전통타악기 ‘고로보츠카’에 맞춰 자신들의 대표곡인 ‘봄'을 선사했다. ‘보그닉’이 불을 의미하는 단어다.
지휘자 올레나 솔로비는 “전쟁으로 우리 역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기에 산불 이재민들이 얼마나 어려움을 겪고 있을지 어렴풋이 짐작한다”며 “하지만 삶은 지속하고 있고, 좋은 건 악을 이긴다”고 말했다. 이어 “강릉 산불로 피해를 본 이재민에게 정신적인 지원이 되고 싶다”며 “언제나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들은 5일 강릉아트센터 축하 공연에 이어 6일엔 경포해변 야외공연장에서 ‘우정의 콘서트’를 연다. 13일 폐막식(강릉아레나) 무대에도 오른다.
강릉세계합창대회 개막식에서 대회를 주관하는 독일 인터쿨투라 재단 귄터 티치(77) 총재가 환영사를 하고 있다. 강릉세계합창대회 조직위원회 제공
세계합창대회를 주관하는 독일 인터쿨투라 재단 귄터 티치(77) 총재도 우크라이나 합창단 참석에 의미를 부여했다. 4일 강릉 아레나에서 만난 귄터 총재는 “함께 노래를 불러본 사람들끼리는 절대 총을 겨누지 않는다고 한다”며 “합창엔 사람들을 연결해주고 하나가 되게 하는 힘이 있다”고 했다. 원래 계획은 러시아 합창단도 초대해 우크라이나 합창단과 함께 노래 부르는 무대를 마련할 계획이었지만 불발됐다. 귄터 총재는 “러시아는 앞선 합창대회에 20~30개 합창단이 참석할 정도로 합창에 열성적인 나라인데 이번에 참석하지 못해 매우 아쉽다”고 했다.
북한 합창단도 초청하려 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독일에 있는 북한 대사관에 북한 합창단 참석을 타진했지만 얘기를 꺼내자마자 내쫓다시피 하며 들으려 하지 않았어요.” 그는 “북한은 과거 2차례 세계합창대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며 “언젠가 남북 합창단이 함께 공연하는 자리를 보고 싶다”고 했다.
임석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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