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고 팩토리’ / 허윤정씨
전문연주가 독주집·연주단 활동 대중화 시도
악기개량 나서고 명상음악으로 특화 노력
악기개량 나서고 명상음악으로 특화 노력
우리 악기라고 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이름이 거문고다. 사심없는 깨끗한 마음으로 연주해야 그윽한 소리를 낸다는 악기, 그래서 선비들의 악기이자 우리 국악기를 대표하는 악기다. 줄풍류의 중심이 되어 ‘음악을 통솔하는’ 것도 거문고다. 그러나 거문고는 지금까지 사실상 ‘잊혀진 악기’다. 연주하는 이들도 많지 않다. 밝고 화려한 음악에 익숙해진 대중들도 웅장한 저음을 듣고는 ‘무겁고 지루하다’고 외면한다. 제대로 그 맛을 즐길 기회조차 드물다.
한동안 대중들과 멀어졌던 우리 국악기들은 대중화와 현대화의 바람을 타고 재발견되며 부활해왔다. 현대화 시도가 가장 활발한 가야금은 대중들에게 가장 친숙한 국악기가 됐다. 그 다음에는 해금이 정수년, 강은일 같은 연주자들과 함께 새롭게 주목받았다. 최근 들어 ‘거문고 팩토리’ 같은 거문고 전문연주단들이 생겨나고 있고, 실력파 차세대 거문고 연주자 허윤정(39)씨가 첫 독주곡집 <일곱개의 시선>을 내는 등 대중들과 거문고를 이으려는 새로운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과연 거문고가 가야금, 해금에 이어 대중성을 얻어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허윤정·거문고팩토리 허윤정씨는 서울대 국악과 출신으로 서울시국악관현악단에서 활약하다가 “거문고 전문 연주자가 되기 위해서” 그만둔 뒤 98년부터 10년째 거문고를 알려왔다. 개인 독주와 함께 슬기둥 등 국악실내악단에서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 음반은 모처럼 나온 거문고 독집이란 점에서 음악팬들에겐 반가운 소식이 될 듯하다.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아 판매는 두드러지지 않지만 순수 창작곡을 담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난해 한예종 출신 4명과 한양대 대학원생 1명 등 젊은 거문고 연주자 5명이 결성한 ‘거문고팩토리’도 16~17일 첫 연주회를 열며 본격 활동에 들어갔다. 거문고팩토리는 연주는 물론 음악도 직접 작곡한다. 단원 지서해씨는 “거문고를 대중화시키자는 취지로 결성했다”며 “거문고도 신나고 역동적인 음악을 소화할 수 있고, 딱딱하고 무겁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음악 방향을 설명했다.
새로운 거문고 개량시도 이어져 80년대부터 거문고 개량작업에 매달려온 이재화 추계예대 교수는 2002년 거문고의 줄을 10줄까지 늘린 개량 거문고를 선보인 뒤 꾸준히 보완하며 개량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거문고팩토리도 거문고의 길이를 줄이고 어깨끈을 달아 메고 움직이며 연주할 수 있는 변형 거문고 ‘담현금’을 만들어 연주에 쓰고 있다.
거문고 개량 시도는 아직까지는 지켜봐야 하는 단계다. 4줄과 28줄까지 개량이 된 해금과 가야금은 줄이 늘어날수록 표현할 수 있는 음역이 넓어진다. 반면 거문고는 줄을 늘리는 것이 오히려 거문고의 독특한 연주기법과 음색을 해칠 수도 있다. 이재화 교수는 “개량을 했지만, 그것이 ‘개량‘인지, ‘개악’인지는 역사가 평가해 줄 것이어서 조심스럽다”고 말한다.
‘퓨전’보다는 ‘명상·치유’ 음악으로! 거문고란 악기의 속성상 거문고의 대중화가 서양음악을 연주하는 식의 ‘퓨전’으로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국악 현대화가 서양화는 아니므로 과거 선비들이 수양을 위해 거문고를 연주했듯 오락성보다는 정신성을 살리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허윤정씨는 “거문고라면 무겁고 남성적이라는 선입견이 많은데, 그걸 깨자고 거문고로 비발디의 <사계> 같은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새로운 창작음악으로 대중화를 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이 좋을까. 이재화 교수는 “명상이나 태교 등 사람의 내면을 파고드는 음악, 즉 가장 거문고적인 것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했다. 허윤정씨는 “거문고는 당장의 재미보다는 정신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악기”라며 “요가나 치료·명상을 위한 슬로우 뮤직으로 특화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실력있는 젊은 연주자들과 거문고에 적합한 곡을 쓸 수 있는 작곡가가 많이 배출되는 것이 우선이라고 국악계는 입을 모으고 있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사진 거문고팩토리 제공.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사진 거문고팩토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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