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 들른 양희은씨 지난달 24일 ‘매그넘 코리아’전을 찾은 가수 양희은씨가 엘리엇 어윗이 찍은 자신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이길우 기자 nihao@hani.co.kr
이주헌의 ‘매그넘 읽기’
‘대가들의 필’에 꽂힌 한국사회 풍경 조망
투박한 감수성·폭력적 환경 ‘성찰적 반추’
‘대가들의 필’에 꽂힌 한국사회 풍경 조망
투박한 감수성·폭력적 환경 ‘성찰적 반추’
나에 대해서는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남이 나를 더 잘 알 때가 있지요. “문제가 어려워서 나는 풀 수 없어” 하고 생각할 때 “아냐, 너도 충분히 풀 수 있어” 하는 엄마나 친구의 말이 더 옳을 때가 있습니다. ‘매그넘 코리아’전에 내걸린 대한민국의 모습은 외국 사람의 카메라에 잡힌 것이지만, 우리의 우리다운 모습을 우리가 알고 있던 것보다 더 생생하게 전해줍니다. 이처럼 때로는 남의 눈을 통해 나를 보는 게 나를 더 정확히 아는 길이 됩니다.
물론 다른 이의 눈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누가 나를 보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안목이 날카롭고 사물의 핵심을 잘 집어내는 사람이 나를 본다면 분명 참고할 만하겠지요. 매그넘의 시선이 그렇습니다. 매그넘은 특정 언론 매체에 속하지 않고 자유롭게 다큐멘터리 사진을 촬영해 공급하는 세계적인 사진작가들의 모임입니다.
자, 그럼 이번 전시를 어떻게 보는 게 좋을까요? 일단 다큐멘터리 사진은 한순간의 인상을 포착한 것임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림도 우리에게 정지된 상을 보여주지만, 그림은 그리는 사람이 소재와 구성, 내용에 변화를 주어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주제를 드러내기가 한결 쉽지요. 하지만 사진, 특히 다큐멘터리 사진은 주어진 장면을 순간적으로 포착하는 예술입니다. 사진작가가 소재나 구성, 내용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습니다. 오로지 그 인상을 어떻게 포착하느냐에 따라 주제가 잘 나타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진작가가 도대체 무엇에 ‘꽂혀’ 이 장면을 찍었을까 생각하며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시 작품들은 무엇보다 수많은 선택 끝에 얻어진 최선의 결과물들이니까요.
일례로 브뤼노 바르베가 찍은 <서울 대형 교회>를 보면 통성기도 하는 사람들의 우렁찬 기도 소리가 귀청을 때릴 것 같습니다. 사진작가가 단순히 기도 장면이 아니라, 성과 속을 아우르는 한국 개신교의 독특한 에너지를 표현하려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장면을 아바스의 <경상북도 청도 운문사>와 비교해서 보면 아주 재미있습니다. 아바스의 사진에서는 가지런히 앉아 깊은 침묵 속에서 구도 정진하는 스님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어떻게 이처럼 극단적으로 달라 보이는 두 종교가 한 시대, 한 나라를 함께 이끌어가고 있는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잘 낚아챈 순간의 인상은 이처럼 대상의 본질을 생생히 드러내줍니다.
두 번째로 기억해둘 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 매그넘 사진작가들에게는 낯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외국에 가면 그 나라 사람에게는 익숙하나 우리에겐 낯선 것이 눈에 잘 띕니다. 매그넘 작가들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이런 게 뭐가 재미있다고 찍었을까 싶은 사진들이 적지 않습니다. 소비문화를 꾸준히 천착해 온 마틴 파가 촘촘히 쌓여 있는 컵라면을 찍은 <서울>이나 튀는 간판을 배경으로 소녀를 찍은 리즈 사르파티의 <서울 신촌> 같은 사진이 그렇지요. 그런데 보고 나면 이런 사진들이 오히려 우리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습니다. 너무 익숙해져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을 날카롭게 낚아챘기 때문이지요.
두 작가의 사진은 우리의 투박한 감수성과 강한 자기주장, 더불어 웬만한 ‘시각적 소음’에는 끄떡하지 않는 내성과 들뜬 마음씨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사실 우리의 거리나 간판, 상품 디자인은 지나치게 강렬하거나 조화롭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매우 스트레스를 주는 환경이지만 우리는 익숙해져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 ‘부조화의 조화’가 매그넘 작가들에게 우리의 본질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해준 것 같습니다.
세 번째는 매그넘 작가들이 제각각 독자적인 미학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다큐멘터리 사진이라 하여 중성적으로, 무개성하게 촬영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피사체보다 빛과 대기의 표현을 중시한 아리 그뤼에르, 빛과 그림자의 강렬한 대비로 현대인의 내적 긴장을 부각시키는 알렉스 마욜리 등 작가마다 자기만의 독특한 ‘렌즈’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 개성이 이들의 사진을 기계가 아니라 영혼으로 찍어낸 것으로 만들어줍니다. 우리가 좀 더 찬찬히 들여다본다면 매그넘의 사진들로부터 세상을 바라보는 진솔하고 아름다운 여러 방법에 대해 깊고 넓게 배울 수 있을 겁니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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