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콘서트 ‘두드림’] 〈15〉인디신의 여왕 오지은
홍대 인디음악계에서 오지은씨는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홍대 ‘인디신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오씨는 또 자칭타칭 연애의 고수로 통한다. 그래서 또 다른 별명은 ‘연애의 여왕’이다. 오씨를 만나던 첫날부터 다짜고짜 만인의 관심사인 연애의 노하우를 전수받기로 했다.
# ‘연애 여왕’의 사랑과 이별의 기술
“지은씨, 사랑도 이별도 잘할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노하우가 있나요?”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많이 해본 사람이 많이 안다”고 말했다. “저도 몰랐는데, 주변 사람들과 비교해보니 제가 압도적으로 연애 횟수가 많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얘길 하자면….” 말머리부터 시원시원하다.
“연애 초반에 에너지를 낭비했죠. 저는 솔직하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보고 싶을 때 보고 싶다고 얘기도 못하고, 괜히 연락을 안 한다든지 그랬죠. 저 혼자 밀고 당기면서 퉁퉁 거리는 여자 친구였어요.” 그는 연애의 중요한 키워드를 이렇게 뽑았다. “밀고 당기기를 하지 않는, 멍청해지는 즐거움을 아는 것이 아닐까요.”
“그럼, 이별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요?”
“연애는 정말 본능적인 거예요. 이별을 비관하는 순간은 짧을수록 좋아요. 빨리 세수하고, 화장도 하고, 예쁜 옷 입고, 길거리에 나가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그는 거침없었다. “그런데 그게 어디 쉬운가요?”
그의 목소리는 겨울 날의 새벽 기운처럼 알싸하고 쌉싸름했다. “이별한 다음에 궁상은 한 달만, 맥시멈(최대)은 6개월까지만, 내가 봐줄게요. (웃음) 그 다음은 자기 연민이거든요. ‘이별을 한 슬픈 나’ 이런 감정은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좋아요. 훈훈한 남자를 누가 빨리 채 갈지 모르기 때문이죠. 빨리빨리 연애 마켓(시장)에 뛰어드세요.”
#1집도 <지은> 2집도 <지은>
사실, 그의 이름 앞을 꾸미는 수식어는 ‘홍대 인디신의 여왕’이다. 오지은은 2007년 음악인으로서 첫 발을 내디뎠다. 그때 심정은 이랬다. “어디에서도 불러주지 않아서 직접 홍대 라이브클럽을 찾아가 테스트를 받았죠. 자력갱생이라는 말이 어울릴까요?” 그는 음반을 내고 싶었지만, 음반 제작에 필요한 돈이 없었다. 그래서 일을 벌였다. “인터넷을 통해 ‘선주문·선입금’을 받았어요.” 쉽게 말하면 “내 음악을 살 사람들은 손 들고, 돈을 먼저 내주세요.” 그렇게 59명에게 ‘백팔십사만이천팔백이십원’과 8달러가 모였다.
“8달러는 외국에서 보내온 건가요?”
“(8달러 받고) 음반을 보내는데 10달러가 들었죠.(웃음). 미국에 사는 어떤 여고생이 인터넷으로 음반 제작비를 모금할 때, 소중한 8달러를 보내줬어요. 돈보다 마음을 받아서 더 기뻐요. 그것에 보답하려고 첫 앨범을 미국으로 보냈던 기억이 나요. 옛날 얘기네요.”
따뜻한 밀크티 한 모금을 넘긴 그녀가 다시 말문을 연다. “그 에피소드를 당시(2007년)에 물었으면 참 재미있었을 텐데, 다들 2년 정도 묵혀서 질문하시더라. 하하하.” 재치도 만점이다. ‘홍대 인디신의 여왕’ 오지은이 “2년을 묵혀”온, ‘연애’ 이야기보다 더 달콤한 ‘음악’ 이야기를 차근차근 풀어 나갔다.
2007년 1월, “1집은 어딘가의 투자를 받아서 화려하게 찍어내고 싶다”는 마음을 살짝 고백한 ‘186일간의 앨범제작 분투기(
http://www.ji-eun.com/soundnieva/186.htm)’와 함께 1집 앨범 <지은>을 냈다. 오씨는 “과욕하지 않고, 허세를 부리지도 않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는 것이 1집 앨범의 모토였다”고 했다. ‘헤븐리’라는 듀오를 만들어 17회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에서 동상을 받았다. 2009년 4월, 2집 앨범 <지은>을 발매했다. “오지은이란 사람이 살고 있는 인생의 순간들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지은’이다.”
# 누군가 ‘제2의 오지은’이라고 불릴 수 있다면…
-요즘 어떻게 지내요?
=부끄럽게도 이 나이에 ‘기말고사’가 있어서…. ‘일본어 번역 앨범’이라는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어요. 또 뮤지션 시와의 음반 제작 작업이 막바지 단계에 있고요. 이 바쁜 날에 잠은 잘 챙겨서 자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는 대인배의 풍모를…. 말이 자꾸 길어지네요. 이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2009년은 어땠나요?
=음악에 대한 피드백을 아주 많이 받았고, 기쁜 일도 많고, 우울한 일도 많았죠. 정신없이 흘러간 한 해여서 나중에 제가 2009년을 떠올릴 때가 많을 것 같아요.
-올해가 가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을 것 같은데.
=그, 뭐시기 랜드(웃음)에 가면 관람차가 있잖아요. 관람차를 타고 조용히 서울 밤을 구경을 하고 싶어요. 예전에 우연히 친구와 관람차를 탔는데, 반짝이는 예쁜 벌레들이 제게 걸어오는 것 같았어요. 그때 그 광경을 잊지 못하겠더라고요.
-‘인디신의 여왕’, ‘홍대의 마녀’ 등 오지은을 꾸미는 수식어가 많다. 개인적으로 희망하는 수식어가 있을 것 같은데.
=모든 호칭이 다 즐거워요. 어떤 사람들 눈에는 마녀로, 감사하게도 유희열 선배님은 ‘여왕’이란 호칭을 붙여주시고. 저는 수식어가 필요 없는 사람이 되는 게 제일 좋고요. 누군가 ‘제2의 오지은’이라고 불릴 수 있는 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실수해도 괜찮으니 짜증이 날 때까지 고민을
-20대를 지나오면서 얻은 경험이나 감성들을 음악으로 표현했다고 했는데, 20대에게 인생의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의 20대를 돌이켜보면 굉장히 센 척을 했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치열하게 사는 것인데, 다른 의미에서는 무리를 했죠. 나이가 들면서 일을 할 때, 포기하는 법이나 거절하는 법, 자신을 쉬게 해주는 것을 익히는데 고생을 많이 했어요.
남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지 말고, 실수해도 괜찮으니 짜증이 날 때까지 고민을 하는 게 나이가 들수록 더 좋은 것 같아요. 이것이 같이 늙어가는 20대에게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이에요.
‘지은씨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어서 좋겠다’는 얘길 많이 듣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요. 저도 반지하에 살고, 하루하루 힘들 때가 많죠. 그런데 지금 제게 중요한 것은 돈을 모으는 게 아닌 것 같아서요. 재미있게 지내려고요. 그게 장기적으로도 좋은 것 같아요.
-30대에 꼭 하고 싶은 것도 있을 것 같은데.
=솔직한 여행기를 책으로 펴내는 것이 소박한 바람이고요. 또 밝은 음악을 할 수 있게 되는 것과 전형적인 오지은 음악을 잘하게 되는 게 30대의 목표죠. 또 엄마가 되어 보는 게 꿈 중의 하나예요. 엄마가 되면 ‘귀찮은데 내일 하자’고 하는 게 안 되잖아요. 엄청난 의무가 생기는 것이고, 그 의무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저의 성장이 자신도 기대가 돼요. 또 나의 유전자의 반을 가지고 태어난 생물이 되게 궁금하기도 하고, 참 그렇습니다. (웃음) 기대하고 있습니다. (웃음)
#표현하고 싶은 감정이 가사로 먼저 나올 때가 많아
-음악은 언제,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깔끔하게 대답을 할 수가 없네요.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항상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 자각이 있어서 오히려 내가 왜 음악을 하는 사람인가 고민하면서 오랫동안 방황했어요. 스스로에게도 엄격할 만큼 비판적이었죠. 그래서 많이 늦었죠. 앨범을 낸 것이 스물일곱 살 때니까.
-오지은의 음악은 ( )이다. 빈 칸에 담고 싶은 말이 궁금한데.
=‘못 그만 두는 것’. 가끔 농담 삼아서 살을 잘라서 음악을 한다고 하기도 하는데, 그만큼 괴로울 때가 많아요. 아무리 도망을 쳐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음악으로 표현하는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괴로운 것도 달게 받고 있습니다. 언젠가는(웃음) 아니 이른 시일 내에는 저도 즐겁고 듣는 사람도 즐거운 음악을 하고 싶어요.
-음악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뭔가요?
=표현하고 싶은 감정이 가사로 먼저 나올 때가 많아요. 그 가사가 온전한 형태로 노래가 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던 것 같아요. 가사도, 감정도, 소박하고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싶어요. 욕심을 버리니까. 어느 순간, 자연스러워졌어요.
#앗! 여기까지만요
-아끼는 곡이 있을 것 같은데.
=글쎄요. 다 내 자식들 같아서요. (웃음) 지금 생각나는 곡은 겨울에 잘 어울릴 것 같은 노래인데요. 2집에 수록된 곡 중에 ‘잊었지 뭐야’가 있어요. 만들어 놓고 좋아했어요.
-사연이 있는 곡인가요? 소개해주면 좋을 것 같은데.
=‘잊었지 뭐야’는 제목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요.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집중하다 보면 그 사람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다른 아름다움을 잊어버리게 되잖아요. 예를 들면 다른 사람의 미소라든지, 하늘, 햇빛에 반짝이는 나뭇잎이라든지….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모두 잊어버렸다는 의미예요. 앗! 여기까지만이요. 음악을 듣는 분들의 상상의 날개를 꺾다니! 죄송합니다. 꾸벅. (웃음)
- 어려운 부탁이 아니면, 한 소절만 부탁해도 괜찮을까요?
= 전 왜 이렇게 시키는 대로 잘할까요. (※이 부분은 영상을 보세요)
#3집은 들쭉날쭉하지 않은 완전판으로
-앞으로 계획이 궁금한데.
=앨범을 준비하고 있어요. 3집은 아니고요. ‘극비’라고 생각해놓고 오늘 다 얘기하고 있어요. 무대에서 신나게 부를 수 있는 음악이 여섯 곡쯤 나왔어요. 최근에는 기타를 잡으면 자연스럽게 신나는 곡을 쓰더라고요. 내년 늦봄에 발매 예정이고요. 3집은 음악이 들쭉날쭉하지 않은 완전판 같은 느낌으로 준비하고 있어요. 오지은의 음악적인 여정을 즐겁게 지켜봐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겨레’는 자주 보세요?
=한겨레는, 목요일은 저의 기쁨입니다. 고, 고, 고기자(한참을 고민하다가) 아! ‘고나무님의 맛 경찰(한겨레 매거진 ESC)’ 을 주의 깊게 읽어요. 목요일 새벽에 신문 오면 다 읽고 잡니다. 참, 예전에 만났던 안인용 기자님은 영국에 가신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얼마 전에 신문 보면서 다시 오셨구나 했죠. 한겨레의 내부 사정까지 잘 알고 있는 팬입니다. 얘기하다 보니 저 되게 골수(팬)인데요.”
-한겨레, 하니 티브이 독자와 시청자 여러분께.
=두드림에 출연하게 되어서 기쁘게 생각하고요. 한겨레와 <하니티브이>와 많은 일을 함께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재미있는 일이 여러분에게도, 제게도, 한겨레에도, <하니티브이>에도 많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영상·글 박수진 피디
jjinpd@hani.co.kr, 사진 해피로봇 레코드 제공.
[오지은의 ‘인생론’ 노래 듣기]
[오지은의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노래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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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콘서트, 두드림(do dream)은?
2009년 5월, <하니TV>개국과 함께 선보인 ‘착한 콘서트, 두드림(do dream)’은 인디 음악인들의 이야기와 음악을 소개하는 ‘음악+인터뷰’ 프로그램이다. 현재까지 캐비넷 싱얼롱즈, 아마도 이자람 밴드, 치즈스테레오, 좋아서 하는 밴드, 악퉁, 이한철과 더 박스 버스 라이더스, 국카스텐, 어쿠스트릿, 브로콜리 너마저, 뜨거운 감자, 보드카레인, 노리플라이, 오!부라더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오지은 등 실력 있는 인디 음악인들이 다녀갔다.
인디음악의 메카인 홍대 클럽을 중심으로 200여 개 팀이 활동하고, 40여 개 음악 레이블(기획사)의 모임인 ‘서교음악자치회’(회장 최원민)가 인디음악의 부흥을 위해 애쓰고 있다. 200여 개의 팀을 모두 인터뷰하는 그날까지…. ‘두드림’은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노래하는 인디음악인들의 이야기와 연주에 귀를 기울일 예정이다.
출연 요청은 jjin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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