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준석이들’
[착한콘서트 두드림 34회] ‘일단은 준석이들’
익숙한 노래와 유머로 관객 이끄는 최강 길거리 밴드
익숙한 노래와 유머로 관객 이끄는 최강 길거리 밴드
‘그녀는 너무 예뻤어♪’
첫 인상이 박진영의 노래 가사처럼 예뻤다. 허리까지 내려온 굵직한 웨이브 머리카락 사이로 그가 얼굴을 내밀며 웃었다. 뽀얀 송곳니에 시선을 빼앗긴 순간, “에에햄!” 기침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목소리를 듣고서야 그가 남성임을 확신한 관객들도 피식피식 안도(?)의 웃음을 지었다.
이제 홍대를 걷다가 버스킹 밴드(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관객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열리는 공연) ‘일단은, 준석이들’을 만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2010년에는 월요일과 화요일을 뺀 모든 요일에 거리공연을 했다. 멤버는 목청 큰 이준석(보컬·기타)씨와 ‘북 치는 소년’ 장도혁(코러스·퍼커션)씨다.
첫인상부터 사람을 속인 보복으로 장씨에게 머리를 기르는 이유에 대해 “그게 관객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냐”고 따졌다.
“학생 때, 운동(탁구)을 해서 항상 ‘빡빡이’였어요. 머리를 길러보고 싶었는데, 기르다 보니까 이렇게 됐죠. (웃음) 다들 부부로 봐서 큰 일이에요. 근데, 저 남자 맞다니까요. 글쎄.” (장도혁)
“사실은 제가 도혁이 머리를 못 자르게 해요. 도혁이 어머님! 제가 참 죄송한 말씀인데요. 도혁이 머리 못 잘라요. 저희가 먹고 살려면 어쩔 수가 없답니다.” (이준석)
# “버스킹은 밥벌이, 그래도 정직한 시장” 거리를 지나다 우연히 관객이 된 사람들은 두 사람 곁에 둘러앉아 음악의 온기를 나눈다. 거리 공연이 ‘밥벌이’가 된 이들에게 한 겨울의 추위는 핑계가 될 수 없다. “버스킹은 정직한 거예요. 사람들이 노래를 듣고 그만큼 가치를 느끼면 그만한 돈을 주죠. 정말 정직한 시장이에요. 저희가 일한 만큼 받는 거니까.” (장도혁) “보통 동전 아니면 천원을 많이 넣어주시죠. 물론, 만원이나 오천원짜리 지폐가 있으면 좋지만, 천원짜리가 많은 건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보고, 우리 음악을 많이 들었다는 얘기라서 기분이 더 좋아요.” (이준석) 이 날엔 6만8천원이 두 사람의 손에 쥐어졌다. 이 돈은 새 앨범 작업을 위해 아껴두기로 했다.
# ‘좋아서 하는 밴드’ 바람잡이로 시작한 거리 인생
2009년 봄, 대기업 건설회사에서 인턴사원으로 일하던 이준석씨는 우연히 홍대 주변을 지나게 됐다. 취업 고민에 허우적거리던 때, 우연히 ‘좋아서 하는 밴드’의 공연을 보게 됐다. 먹고 사는 게 투쟁이었던 나날,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뛰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죠. 거리 공연에서는 사람들이 서있는 곳도 무대고, 내가 서있는 곳도 무대고 평등한 것 같아요. 매일매일 새로운 관객이지만, 모두 동네 아는 사람들 같고, 사람 냄새가 좋았어요. 딱 제 일이다 싶었죠. 한 동안은 ‘좋아서 하는 밴드’를 따라다니면서 바람잡이를 했어요.” (이준석)
그라운드에 나갈 준비는 됐는데, 막상 함께 나설 동료가 없었다. 절실했다. 이씨의 바람은 알아차린 ‘좋아서 하는 밴드’의 조준호(보컬·퍼커션)씨는 자신에게 퍼커션을 배우고 있던 장도혁씨를 소개했다. 그때만 해도 장씨는 ‘차가운 도시의 남자’였다.
“한 마디로 도도한 녀석이었죠. 어째 말을 시켜도 대답을 안 하고, 무서워서 같이 밥 먹자는 얘기도 못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공연만 시작하면 다른 사람이 되는 거에요.”
“준석형이 저를 사람 만들어 놨죠. 뭐. 거리 공연하면서 제 성격도 바뀌더라고요.”
# 밀려드는 섭외에 “일단은, 준석이들”
서로는 첫 눈에 반하지 않았지만, 공연 횟수가 거듭될수록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이”가 됐다. 목이 쉬는 일은 예사였다. 한 때는 “목소리 돌아왔어요? 돌아왔어요?”라고 묻는 게 서로의 안부 인사였을 정도다.
“하루에 많게는 거리공연을 3번까지 했어요. 아시잖아요. 제가 노래를 빛깔나게 잘해서 감동을 주는 보컬은 아니라는 거. 그나마, 성량이 커서 마이크 없이도 공연할 수 있는게 장점이죠.” (이준석)
밴드 이름도 없던 두 사람의 거리공연을 본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돌았다. 그 힘은 무서웠다. 어느 날부터 행사 섭외가 밀려들었다. 즐거운 비명을 지르던 어느 날, 섭외 관계자로부터 다급하게 전화가 걸려왔다.
“다음 날이 공연인데, 밴드 이름이 필요하다는 거에요. 고민하다가 일단은, 준석이들이라고 했죠. 도혁이가 서운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에요. 아마도. 하하하.” (이준석)
‘일단은 준석이들’의 탄생비화는 그러했지만, “거리에서 만나는 모든 관객들이 일단 ‘준석이들’이 되어서 함께 즐겨보자”고 두 사람은 입을 모았다.
# “올해는 무대에서도 ‘준석이들’ 만나고 싶어요”
2010년 봄, 드디어 첫 미니앨범 ‘일단은 준석이들’을 발표했다. 거리에서 만난 인연들은 사진, 앨범 자켓 디자인 등 다양한 재능을 기부했다. 첫 앨범은 ‘준석이들’의 정성이 모여 이뤄낸 결과물이다.
그 해 여름, 꿈에 그리던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거리의 악사 페스티벌 본선 무대까지 올랐다. 이준석씨는 “이문세옹(?)의 공연과 같은 시간에 공연을 했다”는 것에 감격했다. 실은 2009년 무작정 ‘좋아서 하는 밴드’를 따라가 구경만 하던 무대였다. 공연을 지켜보던 두 멤버는 “내년에 꼭 무대에 서자”고 다짐했었다.
“모든 일이 영화처럼 흘러가지는 않더라고요. 공연 때,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상 욕심을 좀 냈죠. (웃음) 도혁이는 수상소감도 적어놓고, 기다렸어요.”
지난 가을에는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에서 마련한 ‘버스킹 스테이지’에도 올랐다. 메인무대와 비교되지 않을 만큼 작은 무대였다. 같은 시간 때, 메인 무대에는 ‘언니네 이발관’의 공연이 있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300명쯤 되던 관객들이 와주셨어요. 언니네 이발관 무대를 보지 않고, 저희 무대 봐주셔서 정말 감격했죠. (웃음) 너무 신나서 무대 위를 날아다녔어요. 떼창도 해주시더라고요.” (장도혁)
“올해는 ‘준석이들(관객)’에게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물가 무대에서 좋은 사운드로 음악을 들려드리고 싶죠. 지난해 오신 관객들에게 약속했으니까 꼭 지키고 싶어요. 그리고, 열심히 일하다 지치면 홍대로 오세요.” (이준석)
‘일단은 준석이들’은 오늘도 홍대 어느 거리에서 처음 만나는 준석이들에게 추억을 팔고 있다.
영상·글 박수진 피디 jjinpd@hani.co.kr
# “버스킹은 밥벌이, 그래도 정직한 시장” 거리를 지나다 우연히 관객이 된 사람들은 두 사람 곁에 둘러앉아 음악의 온기를 나눈다. 거리 공연이 ‘밥벌이’가 된 이들에게 한 겨울의 추위는 핑계가 될 수 없다. “버스킹은 정직한 거예요. 사람들이 노래를 듣고 그만큼 가치를 느끼면 그만한 돈을 주죠. 정말 정직한 시장이에요. 저희가 일한 만큼 받는 거니까.” (장도혁) “보통 동전 아니면 천원을 많이 넣어주시죠. 물론, 만원이나 오천원짜리 지폐가 있으면 좋지만, 천원짜리가 많은 건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보고, 우리 음악을 많이 들었다는 얘기라서 기분이 더 좋아요.” (이준석) 이 날엔 6만8천원이 두 사람의 손에 쥐어졌다. 이 돈은 새 앨범 작업을 위해 아껴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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