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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아날로그 막내’가 꾸미는 ‘수상한 프로젝트’

등록 2011-02-07 11:32수정 2011-02-07 16:30

싱어 송 라이터 ‘수상한 커튼’
싱어 송 라이터 ‘수상한 커튼’
[두드림 35회] 여성 싱어송라이터 ‘수상한 커튼’
마감에 쫓기는 것은 피디의 숙명이다. 그날도 섭외를 위한 전화로 손가락이 아플 때쯤, 휴대전화 화면에 반가운 이름이 떴다. ‘수상한 커튼’. 그의 담담한 목소리 톤과 반달눈을 하며 웃는 얼굴이 이름에 겹쳐졌다. ‘수상한 커튼’은 원맨밴드다. 싱어송라이팅은 물론 앨범 프로듀싱까지 척척해내는, 수상한 그다.

‘수상한 커튼’이란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누구나 고개를 갸우뚱했을 것이다. 깊은 겨울밤처럼 캄캄한 방에 창문을 가린 커튼 사이로 희미한 빛이 들어오지만 어둠을 이겨내지 못한다. 그 빛은 조용히 ‘수상한 커튼’이라는 글씨를 새길 것만 같다.

# 잠 못 드는 밤, 어깨 토닥여준 음악

“드디어 낳았어요. 출산!”

그는 첫 앨범을 출산에 빗대며 호들갑을 떨었다. ‘언젠가 두드림에 그를 부르겠노라’ 주목하고 있던 터라 그 길로 홍대 인근의 레코드점을 찾아갔다. 앨범 자켓은 에메랄드빛 커튼을 친 얼굴을 보여줬고, 수상한 향기는 푸르게 흩날리고 있었다. 이 커튼을 빨리 제치고 앨범에 들어있는 음악을 확인하고 싶어 손가락이 간질간질해졌다.


늦은 밤, 커다란 헤드폰을 쓰고 앉았다. 그의 목소리는 귀엽고 달콤하게 속삭이지 않고 말랑말랑한 감성에 젖지도 않았다. 잔잔한 어쿠스틱 기타나 피아노 연주로 노래한 것이 대부분인 9곡의 무채색 안에 여러 모습의 그가 겹쳤다. 편안한 목소리와 잔잔한 호흡에 귀를 기울인다. 어깨를 토닥이며 “오늘 하루도 수고 많았어요”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그 뒤로 가끔 찾아오는 잠 못 드는 밤, 다시 ‘수상한 커튼’의 앨범을 찾아 플레이를 누른다.

 

# ‘수상한 커튼’ 이름부터 좀 수상해 

2011년 1월 21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카페 ‘코’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긴 머리를 싹둑 자르고 나타났다. 걸치고 나온 주황색 코트는 하얀 피부와 잘 어울렸다. 그의 본명은 ‘김은희’다. 흔한 이름이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겨질 수 있는 이름을 짓고 싶을 법하다.

그의 방에는 그가 좋아하는 사진과 이미지가 질서 있게 걸려있다. 그것을 보고 연상되는 단어를 써내려갔다. 굵은 펜으로 단어를 잇다보다 ‘수상하다’ 와 ‘커튼’이 덩그러니 남았다. 그렇게 은희는 ‘수상한 커튼’이 됐다. 그는 음악에서 장르가 떠오르는 것을 경계했다.


싱어 송 라이터 ‘수상한 커튼’
싱어 송 라이터 ‘수상한 커튼’
“백지 상태에서 제 음악을 들으시는 분이 자신만의 이미지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었죠. 음악을 들려주기보다는 보여주고 싶다는 열망이 강해서 청자가 자신만의 감성을 오롯이 칠하고 그릴 수 있는, 열린 이름을 짓고 싶었어요.”

입버릇처럼 “나이 ‘서른’을 꿈꿨다”던 그였다. 주름이 늘어나는 것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20대보다 더 치열하게 살고 있다. “소녀들이여, 힘내요! 조금만 견디면 재밌는 게 많아요.” 그의 정체가 점점 더 수상해 보인다.

 

# “기타는 내 운명”

공부보단 음악 감상에 열심이던 여고생 4명이 어느 날 밴드를 결성하겠다고 전의를 불태웠다. 운명의 가위 바위 보 한 판으로 얼떨결에 기타를 맡게 된 ‘수상한 커튼’은 악기를 사러 낙원상가로 갔다. 낙원상가 안으로 들어서자 처음 보는 낯선 풍경에 넋을 잃었다. 쭈뼛거리고 서 있던 그에게 다가온 건 긴 머리의 기타 가게 아저씨였다.

“제게 안성맞춤인 기타가 있다고 구석에서 꺼내 오시더라고요. 넋을 놓고 아저씨의 기타연주를 감상했죠. 갑자기 기타 바디에 있는 스위치를 가리키면서 이게 이 기타의 하이라이트라고 스위치를 위로 젖히더라고요.”

바로 그때, ‘부왕∼’ 소리를 내며 기타 바디에 있는 조그만 스피커에서 찌그러진 기타 소리가 울려 퍼졌다. 헤드에 적혀 있는 ‘터미네이터’라는 로고가 거슬렸지만 그는 곧 ‘터미네이터 기타’의 주인이 됐다. 기타를 어깨를 메고 지하철에 오른 소녀는 세상을 다 가진 듯 부러울 것이 없었다.


싱어 송 라이터 ‘수상한 커튼’
싱어 송 라이터 ‘수상한 커튼’
“낙원상가에서 생애 처음으로 기타를 샀고, 또 두 번째 기타를 샀죠. 많은 기타 키드들이 유리벽에 진열된 기타를 보면서 세계 최고의 기타리스트를 꿈꿨을 거예요. 저도 그땐, 그랬으니까요.” (웃음)

그가 처음부터 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대학 진학을 위해 재수를 했을 당시, 기타는 일상의 유일한 돌파구가 됐다. 더욱 절실하게 그에게 다가왔다.

# ‘록스타’의 열망으로 빚은 1집 ‘아직 하지 못한 말’

잔잔한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 연주가 중심을 이루는 수상한 커튼의 첫 앨범 ‘아직 하지 못한 말’은 지난 가을 세상에 나왔다. “수상한 커튼의 음악을 듣고 자신만의 이미지를 그리며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그의 말처럼 여백이 많고, 군더더기 빠진 소박한 연주는 음악에 몰입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담백한 그의 목소리는 깊은 여운이 있다.

“사실은 제 씨디 장에는 대부분 록음악 꽂혀 있어요. 60∼70년대의 사이키델릭한 음악도 참 좋아했죠. 무대에서 기타를 치며 뛰어다니는 음악도 하고 싶었는데.” (웃음)

록스타를 꿈꾸던 그가 전형적인 여성 싱어 송 라이터처럼 기타를 메고, 두 눈을 지긋이 감고 노래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타협을 한 것 같아요. 사실, 록음악에 욕심을 내보기도 했었죠. 결론은 1집은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장 진솔하게 전달하자고 생각했어요. 많이 넣었다가도 빼고, 덜어내고 하다보니까 굉장히 어쿠스틱한 앨범이 나왔죠.”

그는 앞으로 어느 장르로 튈지 모른다. “어쿠스틱한 음악을 지향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했으니 말이다.

# ‘수상한 프로젝트’, 사라져가는 공간에 보내는 헌정곡

그는 사라질지 모르는 낙원상가의 뜰에, 책방에, 레코드점 등에 멜로디를 새긴다.

2010년 여름 시작한 이른바 ‘수상한 프로젝트’는 여전히 순항중이다. 그는 현실에 치여 잊고 지낸 것들에 대해 이야기 했다. 새로운 문화가 기존의 문화를 누르고 생겨나는 것을 찾기보다는 함께 공존할 방법을 찾아 헤맸다. 글과 사진으로 순간을 기록하고, 사라져가는 공간에게 헌정곡을 바쳤다.


싱어 송 라이터 ‘수상한 커튼’
싱어 송 라이터 ‘수상한 커튼’
“어느 날, 주위를 둘러보니 꿈을 키워왔던 좋은 공간들이 계속 사라지고 있더라고요. 공간이 사라지면 추억마저 사라질 것 같았죠. 제가 아날로그의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막내로서의 사명감이라고 해야 할까요.”

# 커튼 뒤 수상한 노래는 계속된다

그는 사라져가는 장소와 문화를 조사했다. 조사를 끝냈더니 너무나 방대해 장소는 지극히 개인적인 곳을 선택했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낙원아파트가 굽어보고 있는 공터에 앉아 기타를 퉁겼다. 대학로에 둥지를 튼 이음서적에 앉아 책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음서적엔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작가들이 저를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열심히 공연을 했던 것 같아요.” (웃음)

홍대 인근 황량한 거리에 있는 레코드점 앞에도 앉았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연주하고 있는 수상한 커튼의 수상한 프로젝트는 계속되고 있다.

“개인적이고 사사로운 투어는 당분간 계속 될 거예요. 이상한 장소에서 노래 부르고 있는 저를 발견하더라도 너무 놀라지 마세요.” (웃음)

그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미지들이 고갈될까봐 걱정한다. 곡을 쉽게 쓰고, 노래를 편하게 하는 가수가 되는 것을 경계한다. 수상한 커튼 속에 모두를 숨죽이게 하는 이미지를 노래로 만들어줄 그의 다음 앨범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영상·글 박수진 피디 jjinpd@hani.co.kr, 장소 제공 카페 코·사진 수상한 커튼, 송곳  

싱어 송 라이터 ‘수상한 커튼’
싱어 송 라이터 ‘수상한 커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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