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계 비틀즈’ 보드카레인
[착한 콘서트 두드림]38회 ‘인디계 비틀즈’ 보드카레인 2
기억을 노래한 3집 ‘패인트’청소년 유해 판결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이 노래는 ‘술’을 부른다고 하더라고요.” (안승준)
그래서일까? 모던록밴드 ‘보드카레인’의 3집 앨범 ‘패인트’(Faint)의 수록곡 ‘심야식당’엔 ‘19금 딱지’가 붙여졌다. 노랫말 중 “한 모금의 맥주”라는 부분이 여성가족부로부터 청소년 유해매체 판결을 받았다.
가사에 ‘술’이 포함된 가요 141곡 중 정작 5곡만이 19금 판정을 받은 가운데 보드카레인의 앨범은 ‘심야식당’을 포함한 2곡에 19금 딱지가 붙었다. 보드카레인은 “여성가족부의 판정을 이해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맥주를 마셔라, 부어라가 아니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식욕이 같이 찾아오는 외로움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예요.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감성인데, 문학적인 판단이 없는 기계적 판단이 아닌가 싶어요.” (안승준)
# 19금 선정 기념 공연 ‘무해한 심야식당’
멤버들은 청소년에게 유해한지에 대한 판단을 청소년들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래서 지난달 19일, 홍대 인근의 카페에서 청소년 유해매체 선정기념 공연 ‘무해한 심야식당’을 열었다. 순식간에 몰려든 관객 100여 명은 보드카레인의 음악이 ‘무해함’을 이렇게 증명했다. 문제의 곡 ‘심야식당’이 시작됐다. 여성가족부의 심의에 걸린 대목을 어떻게 바꿔 부를지 보컬 안승준씨의 목소리에 귀가 쏠렸다.
“지금 내게 간절한 것은 얼음보다 차가운 한 모금의… 그리고 기름진 안주들….” ‘맥주’를 불러야 할 대목에서 안씨는 마이크를 관객 쪽으로 돌렸다. 보컬이 부르지 않은 가사는 관객들이 합창했다. 노래를 따라 부르는 관객들은 목소리는 더 커졌다.
“영화에서 와인 잔을 들고 건배하는 장면이나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새참을 먹으며 막걸리 한 잔을 하는 장면이 청소년에게 유해한가요?” (안승준)
객석에서 웃음꽃이 피었다. 보드카레인은 70년대 금지곡이었던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표현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예술가들이 가사를 쓸 때나 곡을 만들 때, 충분히 판단한다는 것을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주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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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집 ‘패인트’(Faint), 기억을 노래하다
2005년, 20대 후반의 나이로 데뷔한 보드카레인은 초등학교 동창인 주윤하(베이스)와 안승준(보컬)을 주축으로 이해완(기타)과 서상준(드럼)이 합류해 만든 모던록밴드다. 멤버들이 어느새 30대 중반을 넘기면서 앨범엔 원숙미가 묻어난다. 하고 싶은 이야기도 더 많아졌다.
“1집 더 원더 이어즈(The Wonder Years)에선 20대에 느닷없이 찾아온 사춘기의 감성을 이야기했고, 2집 플레이버(Flavor)에서는 이제 막 인디계에 뛰어든 신인가수 같은 에너지를 담았죠. 그래서 그런지 2집엔 발랄한 곡이 많아요.” (서상준)
독한 술로 대변되는 ‘보드카’가 비가 되어 내린다면, 어떤 감성에 취하게 될까? 보드카레인의 팀명은 그들의 음악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지난해, 11월 2년 만에 발매한 3집 ‘패인트(Faint)’를 듣기 위한 필수품은 어쩌면 ‘술’이 아닐까? 밴드 이름에 ‘보드카’가 들어가기 때문만은 아니다.
“잊혀가는 것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담고 싶었어요. 음악으로 남겨놓지 않으면 영영 기억 속에서 사라질 것 같은 얘기들을 말이죠. 혼자 숨죽이고 들을 만한 음악을 많이 담았어요.” (안승준)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기억’이다. 1번 트랙 ‘지금 여기’에서 “나는 아직 여기에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며 이야기는 현재에서 시작된다. 2번 트랙부터는 기차를 타고 과거로 돌아간다. 타이틀 곡 ‘기억의 꽃’에서는 “소중했던 순간은 조금씩 희미해진다”고 말한다. 보드카레인이 가장 직접적으로 전한 메시지다. 마지막 트랙 ‘우리는, 거짓말처럼’에서는 “조금은 소중한 기억을 남겨 달라”는 당부로 이야기를 맺는다.
# 트워터를 통한 소통 감동의 뮤직비디오로 이어져
보드카레인의 뮤직비디오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아’와 ‘모먼트(Moment)’ 역시 화제다. 일본과 미국에 사는 팬들이 직접 제작해 보내왔다. 그야말로 ‘글로벌 프로젝트’가 됐다.
“트위터로 팬들과 이야기하다가 뮤직비디오 제작을 공모하는 형식으로 부탁을 드렸죠. 3집 앨범이 나오기 전에 원하는 분들께 데모 음원을 드리면서 느낌이 오는 것으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드렸어요. 음악을 해석하는 것은 전적으로 팬들에게 맡겼죠.” (안승준)
그렇게 만드는 과정에서 소통은 뮤직비디오에 대한 감동으로 이어졌다. 트워터에 “뮤직비디오를 보며 음악 때문에 감정이 이입됐다”거나 “영상을 보면서 가사가 잘 들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는 팬들의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 잠시만 안녕, 보드카레인
“음악 시상식에서 수상하지 못할 거라면 음반에 ‘19금 딱지’ 붙는 게 낫죠.” (주윤하)
3집 앨범의 2곡이 ‘19금 딱지’를 붙인 경사(?)에 이어 보드카레인에게 경사가 겹쳤다. 지난 2월 기타리스트 이해완씨가 새신랑이 됐다. 싱어송라이터 박진영(에이프릴블룸)씨와 3년 열애 끝에 결혼식을 올렸다. 누군가 툭 건드리면 울만큼 감수성이 풍부한 남자 넷이 모인 결혼식은 ‘눈물바다’였다는 소문을 직접 확인했다. 이해완씨가 먼저 해명에 나섰다.
“저는 안 울었는데. (웃음) 멤버들이 앞에서 우니까….” (이해완)
“너(해완) 때문에 운 게 아니야. (멤버 전체 웃음) 이런 날이 우리에게 오다니, 감동해서 눈물이 났어요. 어떻게 보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날이잖아요. 6년째 인디밴드를 해오면서 우린 결혼 못할 줄 알았거든요.” (안승준)
멤버의 눈물샘이 마르지 않을 그날이 다가온다. 보드카레인은 4월 16일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리는 ‘잠시만 안녕, 보드카레인’공연을 앞두고 있다. 보컬 안승준씨가 음악 비즈니스와 인디 레이블 경영 등을 공부하기 위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2년간은 보드카레인을 만나기가 어렵게 됐다.
“보드카레인을 시작할 때부터 3집까지 내고 떠나겠다는 계획이 있었어요. 분명한 건, 지금 떠나는 게 다시 시작하기 위한 헤어짐이죠. 공부하고 돌아와서 보드카레인을 업그레이드시켜 지속가능 하게 하고 싶어요.” (안승준)
# ‘인디계 비틀즈’ 애비로드의 꿈을 향해
보컬 안승준씨의 출국을 열흘 앞둔 날, 단독공연에 오르는 멤버들은 어떤 심경일까.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였던 주윤하씨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솔직히 겁나기도 해요. 보드카레인이란 밴드를 처음 만들고 7년 동안 티가 나지 않아서 그렇지 정말 치열하게 달려왔거든요. 대외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을지 모르겠지만. (잠시 침묵) 4월 16일 이후부터는 어떤 기분이 들지 겁나긴 해요.”
떠나는 이가 침묵을 깼다. “좋은 기분이 드는 거 아닙니까?” (안승준)
“보드카레인에게 약이 되는 시기는 확실한 것 같아요. 제가 리더인데, 멤버들의 눈빛을 보니 보드카레인을 그만두고 싶어 하는 멤버들은 없는 것 같아요. 개인 활동도 게을리하지 않고, 4집 준비도 하면서 공백 2년 동안 열심히 지내다가 돌아오겠습니다.” (주윤하)
인디계의 ‘비틀즈’ 보드카레인. 그들은 비틀즈의 본 고장인 영국의 애비로드(Abbey Road)에서 새 앨범을 녹음할 새로운 꿈에 젖어 있다.
박수진 피디 jjinpd@hani.co.kr, 사진 ‘뮤직커밸’ 제공
보드카레인 ‘페인트’
‘인디계 비틀즈’ 보드카레인
‘인디계 비틀즈’ 보드카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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