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걸스
[토요판] 리뷰&프리뷰 친절한 기자들
“음악 기자 오래 하더니 이젠 밴드라도 하는겨?” 얼마 전 새롭게 바뀐 제 머리 모양을 보고 다들 한마디씩 합니다. “그게 아니라, 잘 아는 인디음악 제작자가 소개한 홍대 앞 미용실에 갔더니 이렇게….” 사진에서처럼 장난감 기타로나 폼을 잡는 얼치기 로커이지만 마음만은 록스타인 문화부 대중음악 담당 서정민 기자입니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 열풍이 놀랍습니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음, 괜찮게 만들었네’ 하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처럼 전세계를 사로잡을 줄은 몰랐거든요. 끝내 9월 마지막주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핫 100) 11위에 오르는 사고를 쳤습니다. 2009년 걸그룹 원더걸스가 영어 버전 ‘노바디’로 세운 최고기록 76위를 65계단이나 뛰어넘어버린 거죠.
이를 두고 말들이 많습니다. 싸이와 원더걸스를 비교하고, 소속사인 와이지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 대표와 제이와이피엔터테인먼트의 박진영 프로듀서를 비교하는 인터넷 글을 자주 봅니다. “싸이를 보니 원더걸스의 미국 성공담은 거짓말이었다”거나 “박진영은 배 아프겠다”는 식의 내용이 많더군요. <한겨레> 토요판팀의 이정애 기자도 물었습니다. “선배, 박진영은 정말 실패한 건가요?” 답이 될진 모르겠습니다만, 지금부터 한번 얘기해 보겠습니다.
박진영은 오래전부터 팝 시장의 본토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의 성공을 꿈꿔왔습니다. 가수로서 못 이룬 꿈을 제작자로서 이루고 싶어했죠. 자신이 기획한 원더걸스가 국내에서 인기 최정상을 달릴 때 모든 걸 포기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바닥부터 기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버스 타고 미국 전역을 돌며 이름을 알리고, 나중엔 미국 인기 아이돌 밴드 조너스 브러더스의 오프닝 무대 출연자로 따라다녔습니다. 아동복 체인점 계산대 옆에 앨범을 진열하는 전략까지 쓰며 판매고를 높인 결과 빌보드 싱글 차트 76위라는 당시로선 최고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런 전략이 과연 효율적이었는지, 또 과대 홍보는 아니었는지는 제쳐두고라도, 열심히 노력해서 나름의 결실을 거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싸이는 미국 진출을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군 제대 후 2010년 발표한 5집의 부진을 날리고 예전 인기를 되찾는 게 목표였을 듯합니다. 기존에 해오던 음악 스타일에 요즘 트렌드인 일렉트로닉을 섞고, 뮤직비디오에서 자신의 최대 강점인 코믹함을 무기로 내세웠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뮤직비디오가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를 통해 ‘대박’이 났습니다. 미국인뿐 아니라 세계인들이 박장대소하는 화제의 영상으로 떠오른 거죠. 세계 트렌드와 궤를 같이하는 중독성 있는 음악이 뒷받침한 건 물론입니다.
‘강남 스타일’ 열풍의 원인을 짚는 분석이 많이 나왔습니다만, 중요한 건 케이팝 팬들이 와이지엔터테인먼트의 동영상을 보다가 ‘강남 스타일’을 발견했다는 점일 겁니다. 여기서 입소문이 시작된 거죠. 원더걸스,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 등이 케이팝 바람을 깔아놓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강남 스타일’ 열풍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원더걸스는 실패했고, 싸이는 성공했다는 식의 단순비교는 의미가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히트곡이 되려면 음악 자체도 중요하지만, 여러 우연과 행운도 잘 맞아떨어져야 하는 법입니다. 1963년 일본 가수 사카모토 큐의 일본어 노래 ‘스키야키’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한 적이 있습니다. 61년 일본에서 나온 이 노래를 2년 뒤 영국 재즈악단 ‘케니 볼 앤 히즈 재즈멘’이 연주곡으로 리메이크해 영미권에 알렸고, 얼마 뒤 현지 음반사가 원곡을 정식 발매하면서 이런 결과로 이어진 것입니다. 음악 저널리스트 김성환씨는 “사카모토 큐와 싸이의 사례가 말해주듯, 해외시장, 특히 미국 시장에서 아시아 음악의 히트는 아직까지 필연보다 우연의 힘이 더 많이 작용한다”며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게 기획사들의 노력이겠지만, 너무 여기에만 목매지 말고 각자 처한 환경에서 충실히 음악을 하다 보면 누구에게든 기회가 올 것”이라고 하더군요.
따지고 보면, 빌보드 차트는 현재 미국 사람들이 어떤 음악을 가장 많이 듣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일 뿐입니다. 빌보드 1위를 한다고 해서 꼭 좋은 음악이라는 근거는 없습니다. ‘강남 스타일’의 빌보드 11위는 축하할 일입니다. 한국인으로서 뿌듯한 마음도 듭니다. 하지만 그보다도 당신이 ‘강남 스타일’을 들으며 얼마나 큰 즐거움을 느끼는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음악은 사업이기 이전에 개인의 내밀한 감성에 다가가는 예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남들이 뭘 즐겨 듣는지에만 매달리지 말고 나만의 음악 차트를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서정민 문화부 대중문화팀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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