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월식 작가(오른쪽 둘째)가 경기도 수원시 지동에서 거주하면서 이 지역 무속신앙을 조사해 동네 폐지로 만든 조형물 ‘지동신’. 김월식 작가 제공
재래시장, 달동네, 유흥가…. 짬뽕집 아저씨, 생선가게 사장님, 만두가게 형님, 고물상 할아버지, 폐지 줍는 할머니, 미용실 원장, 골목에서 뛰노는 아이들…. 그의 작품은 여기서 탄생한다. 동료 예술가들과 시장 주변에서 주워 모은 폐품으로 조형물을 만들고, 주택가 골목에 놓인 컨테이너로 매일 출근해 이웃들과 ‘도시락 심포지엄’을 열며, 농사 경험이 풍부한 동네 할머니의 지도를 받아 동네 아이들과 모내기를 하고, 전국의 폐지수집자 108명으로부터 소원이 적힌 종이상자를 받아 부처를 만들었다. 이웃 사람들과 어울리며 15년 넘게 ‘커뮤니티 아티스트’로 살아온 김월식(49) 작가 얘기다. 지난달 29일, 수원의 경기상상캠퍼스 다사리청년문화기획학교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2016년부터 경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다사리학교 교장을 맡고 있다.
미대 졸업 뒤 자연스럽게 작가의 길을 택했던 그는 방값이 싼 곳을 찾다 보니 계속 서울 외곽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이사를 자주 다니는 것은 고단한 일이었으나 오래된 낡은 동네는 그의 작업에 영감을 줬다.
회화를 전공한 그가 ‘동네 예술’로 눈을 돌린 건 2002년 인덕원에 살 때 술친구인 ‘명성갈비’ ‘자유노래방’ ‘뼈다귀천국’ 사장들의 물건을 구입하고 트로피를 시상하는 내용의 <명성자유천국>을 시작하면서다. 이후 안양에서 2005년 ‘석수시장 프로젝트’, 인덕원을 무대로 한 ‘갖고 싶은 프로젝트’(2006년), 박달동 사람들과 함께한 ‘무늬만 프로젝트’(2010년)에 참여했고, 수원 유흥가의 안마시술소를 전시·스튜디오 공간으로 탈바꿈한 ‘인계시장 프로젝트’(2011년), 장애 청소년들과 함께 연극 작품을 만든 ‘총체적 난-극’(2013년), 이웃들의 삶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지동 프로젝트’(2012~2017년) 등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이 분야에서 꾸준히 이름을 알려왔지만 그는 자신의 작업에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 많았다”고 한다. 많은 예술가처럼 그 역시 임대료 상승, 재개발, 도시정비사업 등으로 매번 작업하던 곳에서 쫓겨났고, 중앙정부·지방자치단체 등에서 받는 쥐꼬리만한 창작지원금으론 생계를 유지하기 빠듯했다. 그 과정에서 이웃, 친구들, 동료 예술가들과의 결별도 고통스러웠다. 우리 사회가 예술가로 하여금 낙후된 동네를 ‘문화적으로’ 살리라고 일방적으로 총알받이 역할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지, 왜 공무원과 예술가는 서로를 신뢰하지 않는지, 과연 나는 내 삶을 바꾸는 예술을 하고 있는 것인지 등등 답 없는 질문들이 계속됐다.
완전한 해답은 아니지만, 그가 지금까지 정리한 것은 이렇다. “화이트큐브(미술관)도 길거리도 모두 예술의 현장이 될 수 있다. 21세기 예술가에겐 고정된 역할이 아니라 훨씬 더 넓은 지평이 있다.” “전업 작가만이 예술가인 건 아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작품 활동을 하기 위해선 재능을 이용해 생활 소품·공예품을 만들어 파는 등의 방법으로 생계를 꾸려나가야 한다.” “예술가들이 프로젝트 지원·공모사업 등에 너무 익숙해지면 예술가의 야생성이 사라진다.”
그는 예술가들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예술가들의 진정성에 대해서 신뢰가 있어야 한다. 예술가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내면에 잠재된 창의성을 발굴하고 사회적 다양성에 기여하는 사람 아닌가. 예술가들이 없는 세상이 어떠할지 한번 상상해봐라.”
수원/이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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