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선문. 2017.9. 펜, 마카. 15×21㎝
13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는 일은 많이 괴로웠다. 자리가 좁아서 깊이 잠을 자기도 힘들고, 온몸이 뻐근하고 갑갑해 나중에는 화장실 근처에서 서성이며 스트레칭을 하기도 했다. 42일 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화장실 쪽에 나와 같이 서성거리던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 여행 이야기들을 나누니 갑갑함이 줄어들고 시간도 잘 흘러갔다. 첫 유럽 여행자에게 장시간 비행은 참으로 힘든 경험이었다.
프랑스 파리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린 ‘멘붕’에 빠져버렸다. 빌린 자동차를 찾으러 가야 하는데 렌터카 업체의 한국 홈페이지에 적힌 대로 공항 내 공중전화를 찾았지만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홈페이지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공항 직원에게 물어보았지만 우리의 어려운 상황을 도와주려 하기보단 귀찮은 듯 그냥 묻는 질문에만 답을 하고는 그만이었다. 혹시 유심을 바꿔 낀 우리 휴대폰의 문제일까 터미널 내 부스 안에 있는 사람에게 휴대폰을 잠깐 쓸 수 있겠냐 했더니, 5유로를 달라고 하기도 했다. 간신히 업체 직원과 통화를 했는데 휴대폰 주인은 우리가 있는 건물 위치를 엉뚱하게 가르쳐줘 큰 가방들을 끌고 공항철도를 오르내리며 몇번이나 오락가락해야 했다. 영어를 하는 짝지도 엄청 당황했고 렌터카 업체 사무실 직원들의 퇴근 시간마저 점점 다가와서 이러다가 자동차를 빌리지 못하는 게 아닐까 전전긍긍하며 이리저리 뛰었다. 마음이 급해지니 모든 게 말썽이라고, 메고 있던 배낭의 줄까지 끊어지는 바람에 진땀을 흘려야 했다. 나는 영어를 할 줄 모르니 눈만 껌뻑이면서 눈치를 보며 짝지만 따라 뛰었다. 우리를 찾아다니던 업체 차량과 만난 것도 정말 행운이었다. 유럽에선 충분히 영어로 의사소통이 될 줄 알았는데 영어를 전혀 못 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영어를 하더라도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인 특유의 친절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겨우겨우 픽업 차량에 오르니 짝지나 나나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여행이란 걸 알았지만, 여행 첫날은 우리에겐 너무 혹독했다.
룩셈부르크 숙소. 2017.9. 펜, 색연필. 23×15㎝
여행을 떠나기 전에 자동차 유럽여행 책을 정독하고 왔는데, 활자 속 상황과 실제는 꽤나 달랐다. 처음 주유를 할 때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을 잡지 못했다. 다른 사람이 주유하는 걸 곁눈질하고 영어로 물어보고 해서 어렵게 주유를 했다. 길거리에 처음 주차할 때도 차번호를 입력해야 하는데, 그걸 몰라서 당황하다가 외국인 할아버지가 간단하다면서 가르쳐주시기도 했다.
유럽에서는 추월 차선과 일반 차선 구분을 철저히 지키는 편이라 기본적인 운전은 한국보다 훨씬 수월했다. 도심에서는 그래도 운전이 좀 복잡한 편이었다. 늦은 오후에 파리 센강의 바토무슈 유람선을 타러 가다가, 예상치 못하게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개선문을 보고 신기해서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나는 개선문이 그렇게 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개선문을 보고 신이 난 것도 잠시, 내비게이션은 우리에게 개선문을 돌아 나가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그런데 개선문 주위의 교차로는 10개의 도로가 가로지르는 엄청 거대한 교차로였다. 차선도 없었고 신호도 없었다. 개선문을 돌아 꽉 채워진 수십 대(그 순간은 분명 수백 대로 보였다)의 차량 물결에 당황해, 결국 우린 엉뚱한 도로로 빠져 몇 바퀴나 그곳을 맴돌기도 했다. 벨기에에서는 이틀을 묵었는데, 다들 운전을 험하게 해서 욕이 절로 나왔다. 1차선에서 갑자기 3차선으로 파고들지를 않나, 내 옆에 있다가 갑자기 깜빡이를 켜고 끼어들지 않나, 한시도 방심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벨기에에 대한 기억은 참 좋지 않다.
랭스 대성당 조각상. 2017.9. 펜. 15×28㎝
체코에서는 프라하 시내로 차를 몰고 들어갔다가 경찰한테 잡혀 벌금까지 물었다. 프라하에서는 주차할 곳이 별로 없어서 몇번이나 도심을 돌았는데, 왠지 곳곳에 선 군인들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어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다른 차 꼬리를 따라 들어갔는데, 앞차는 그냥 보내더니 우리 차는 서라고 신호를 했다. 이곳은 차가 들어오지 못하는 곳이라며, 제일 싼 벌금이니 200코로나를 현금으로 달라고 했다. 아직 코로나로 환전을 하지도 못했다고 하니, 근처의 현금 인출기를 알려주며 뽑아오라는 친절함(?)까지. 인출기에서 돈을 뽑아 나오는데, 갑자기 내 뒤에서 한 사람이 불쑥 나타나 자기 지폐랑 바꾸자고 나에게 외국어로 말을 걸어왔다. 뭔가 수상쩍어서 그냥 무시하고 차로 돌아왔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돈 개념이 없는 외국인을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이던 사람들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체코에서의 첫날, 첫인상이 너무 안 좋아 여행을 할 맛이 나지 않아 오래 돌아다니지 않고 일찍 숙소로 돌아와버렸다. 군인과 경찰들은 관광객들이 뭔가 실수를 하는 걸 잡아내려 혈안이 된 것 같았고, 관광객은 너무나 많았고 특히 무리지어 다니는 아시아인 단체 관광객들은 굉장히 시끄러웠다. 관광도시이다 보니 호객행위 하는 현지인도 너무 많아서, 왜 그렇게 다들 프라하를 아름답다고 하는지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여행을 하는 도중 겪었을 때는 당황하고 정신없고 긴장하고 힘들었던 상황들이었으나, 귀국하기 전날 공항 근처 숙소에서 하나씩 떠올려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전혀 예상치 못한 채 마주한 일들, 적극적으로 내가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어떤 도움도 기대할 수 없던 막막함들. 버려진 것 같은 느낌들 속에서, 무엇이든 해야 하고 어디로든 움직여야 하는 일은 선택이 아닌 의무였다. 그 안에서 힘겨워하는 서로를 끌어안으며 어떻게든 상황을 해결해 보려 끙끙거리던 우리의 모습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마트 직원. 2017.10. 펜, 색연필. 15×21㎝.
여행은 그렇게 낯선 장소에서, 낯선 모습의 우리를 발견하게 한다. 내가 모르던 세계와 마주하고, 내가 모르던 ‘너’를 만나게 하고, 미처 내가 알지 못했던 ‘나’를 발견하게 한다. 그런 너에게 실망하고, 그런 내가 형편없어 보이고, 어서 빨리 거기서 도망치고 싶어지기도 한다. 성장했는지 말았는지 그건 확실치 않은데, 어쨌든 우린 42일의 시간만큼 생존했고 나이를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