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지식과 정보에 장벽 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오픈액세스’(OA)를 의무화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한겨레>는 지난달 27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지식의 공공성과 오픈액세스 운동의 과제’를 논의하는 전문가 좌담을 열었다. 신기남 대통령 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장, 김명환 서울대 중앙도서관장, 차재혁 한양대 백남학술정보관장, 이범훈 서강대 교수(물리학)가 참여했다.
이범훈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김명환 서울대 중앙도서관장, 신기남 대통령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장, 차재혁 한양대 백남학술정보관장(앞줄 왼쪽부터)이 7월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린 지식의 공공성과 오픈액세스 관련 좌담회에 참석해 오픈액세스의 필요성과 활동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하고 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김명환(이하 김) 디지털 정보 혁명에 따라 모든 사람들이 지식과 정보를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커졌으나, 실제 현실은 거꾸로 가는 측면이 있다. 지식과 정보를 담은 학문적 성과, 곧 논문을 상업적으로 출판할 때 복잡한 이해관계나 제도 미비 탓에 자유롭게 유통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픈액세스’(OA)를 해결 방향으로 놓고 지식의 개방성과 공공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좌담을 마련했다. 우선 신기남 대통령 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장님께 그간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여는 말씀을 부탁드린다.
신기남(이하 신) 대통령 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는 도서관 정책에 대한 최고 정책기구로, 도서관법이 개정되면 ‘국가도서관위원회’로 새롭게 출범할 예정이다. 도서관은 지식정보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공공기관으로, 학문과 교육의 중심이자 국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핵심 근거지다. 출판, 독서운동 등과도 연결되어 ‘책 문화권’을 이룬다. 오픈액세스 역시 ‘책 문화권’에서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지식정보의 공공성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모든 시민에게 지식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하고 학문·교육 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은 중요한 시대적 과제다.
그런데 지식정보가 돈이 되고 기업의 투자 대상이 되면서, 이를 얻고 활용하는 데 과도한 비용이 발생하는 게 문제가 됐다. 특히 국외 학술지들이 구독료를 과도하게 인상하면서 지식정보가 가장 활발히 소통되어야 할 대학 도서관의 재정적 부담이 커졌고, 상대적으로 열악한 대학들의 어려움이 가중됐다고 알고 있다. 우리 위원회도 오픈액세스에 적극 공감하며,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고 방안을 마련하는 데 나서겠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지만, 오늘 이 자리가 ‘한국형 오픈액세스 모델’을 구축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김 말씀대로 연구자, 사기업인 디비(DB)유통업체, 도서관 등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학문 분야별로도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다. 지식과 정보의 공공성 관점에서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합의를 이뤄내야 오픈액세스가 가능할 것이라 본다. 오픈액세스 운동의 배경을 짧게 설명하자면, 디지털 혁명으로 지식정보의 전자화가 이뤄졌는데, 이를 출판하는 국외 학술지들이 대학 도서관 등에서 받는 구독료를 천정부지로 올려왔다.
서울대는 가장 큰 전자저널 패키지에 26억 안팎의 비용을 부담할 정도다. 여기에 더해, 연구성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연구자들이 이른바 ‘좋은’ 학술지에 논문을 내기 위해 더 비싼 게재료(APC)를 내는 일도 심화되는 등 ‘이중부담’ 문제까지 발생했다. 오픈액세스는 지식정보를 자유롭게 공개하자는 운동으로,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상업 출판사들에 지급되는 이중부담을 줄이는 등 최근에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
차재혁(이하 차) 학술정보는 이공계 쪽에서 생산·유통량이 많고 소비에 대한 요구도 많은 편이다. 예컨대 인공지능(AI), 코로나19 등에 이목이 쏠리면, 대학 같은 고등교육기관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관련 정보를 많이 찾아본다. 문제는 이를 생산하고 유통하고 소비하는 데 드는 비용이 지나치게 높아지면, 정보의 불균형성이 심화되는 등 공정성 문제가 발생한다는 데 있다. 출판비용이 높아지면 논문 생산이 잘 안될 수 있다. 소비의 측면에서는 구독이 개개인의 책임으로 되어 있어, 열악한 기관이나 열악한 분야일수록 비싼 구독료를 낼 수 없어 구독 자체를 못하게 된다. 어떤 학문 분야는 연구자 수가 적다는 이유로 대학에서 구독을 안해주는 일도 있다. 공정의 차원에서, 이런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한 국가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생산된 결과물을 누구에게나 열어주는 오픈액세스가 적절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이범훈(이하 이) 자신의 연구 업적을 세상이 더 잘 알아주길 바라는 것이 연구자의 본능적 욕구다. 이 때문에 이걸 가로막는 장벽이 있을 때마다 연구자들은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해왔다. 예컨대 논문 한 편을 쓰면, 출판 때까지 반 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이 기간 동안 연구 성과를 알리기 위해 연구자들은 ‘프리프린트’ 형태로 핵심 내용을 대가없이 뿌리기도 한다. 1991년에는 입자물리학자인 긴스파그가 ‘아카이브’(arXiv)라는 프리프린트 저장소를 시작하였다. 이는 ‘리포지토리’(연구 성과를 저장하는 아카이브) 개념의 선구적인 시도로서, 연구 결과를 즉시 알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부수적으로 최초 아이디어 및 연구자에 관련된 시비 또는 표절의 문제도 해결해 주었다. 입자물리에서 시작하여 현재는 물리학 전반뿐만 아니라, 수학, 천문학 나아가 일부 공학 및 통계학등으로 범위가 넓어졌다. 아카이브의 연구결과 무료 공개는 세계적으로 연구량의 폭발적 증가에도 기여했다. 오늘날 주로 논란의 대상이 되는 건 높은 구독료를 요구하는 엘스비어 등 국외 유명 출판사들인데, 입자물리학 분야 학자들은 이로 인한 연구결과 접근을 극복하고자 1997년에 구독료와 게재료가 없는 100% 전자저널 <저널 오브 하이 에너지 피직스>(JHEP)를 만들었으며, 이는 이 분야 최고 수준 학술지로 자리매김 하였다.
이상적인 오픈액세스의 모형으로 ‘SCOAP3’(Sponsoring Consortium for Open Access Publishing in Particle Physics)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입자물리 실험의 국제 공동 연구소인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주축이 되어 세계 44개국 3천여 도서관과 3개 국제기구가 참여하는 글로벌 협력은 2007년부터 논의되어 2014년 출범하였는데, 우리나라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대표기관으로 초기부터 참여해 오고 있다. 흔히 대학 등 기관 단위로 구독료를 산정하는데 반하여 SCOAP3는 국가 단위로 한 나라 전체의 구독료를 산정하여, 엘스비어 등 관련 분야 10여종 저널과 협상을 벌이고 비용을 분담하는 협약이다. 구독료는 1년 동안 해당 저널들에 국가별 두고 논문 수에 비례해 산정한다. 이런 방식이 좋은 점은, 협약에 우리나라 15여개 기관이 참여하지만 우리나라 안에 있는 모든 대학 및 연구소에서 누구든 어디서나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나아가 참여 국가 분담으로 전 세계 국가들 또한 혜택을 받게된다. 대학 단위가 아닌 국가 단위로 따져볼 때 비용 총액이 비슷하기 때문에 출판사들 입장에서도 이익을 보전할 수 있고, 전세계적인 협약이라 거부하기도 어렵다. 기관 단위를 국가 단위로, 전세계적으로 바꾸면 이런 게 가능하다.
신기남 대통령 직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장.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김명환 서울대 중앙도서관장.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김 유럽에서는 오픈액세스2020(OA2020), 플랜에스(Plan S) 등의 운동이 성과를 내고 있다. 미국에서도 캘리포니아대학 10개 캠퍼스가 2013년부터 오픈액세스 전환을 노력해오다가 엘스비어와 협상을 결렬하고 2년 동안 ‘보이코트’를 한 끝에 올해 3월 대학의 입장에 맞는 오픈액세스 전환 계약을 했다. 중요한 건, 학내의 이해관계자들이 모두 오픈액세스에 공감하고 지지할 때 상업 출판사들과의 협상도 이뤄낼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의 상황은 아직 많이 어렵다. 국내엔 디비(DB)유통업체들이 있는데, 이들의 가격 인상률이 너무 높고, 유통을 지원해주는 대가로 계약 기간을 장기간으로 설정한다거나, 계약 내용에 대한 공개 금지 조항을 넣는다거나 하는 불공정한 일들이 많았다.
2018년 대학 도서관들을 주축으로 문제 제기와 함께 디비유통업체에 대한 보이코트 움직임도 있었으나, 사회적 논의가 충분하지 못해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상황이다.
차 ‘학회-디비유통업체의 강결합’이 우리나라의 특수성이다. 국외와 달리 국내에선 생산자(연구자)-유통1(학회)-유통2(유통업체)-소비자(학교 또는 학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생산에 드는 비용을 학회가 감당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학회는 연구자들로부터 게재료를 받고 디비유통업체에 넘겨 거기서 유통과 서비스까지 하게 한다. 곧 출판사가 유통을 맡는 국외와 달리, 유통업체가 서비스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특수성이다. 대신 소비에 드는 비용은 대학 등 고등교육기관, 사설연구기관 등이 부담하는 체제다. 그렇다보니 열악한 학교나 개인 학자의 경우 구독료를 내지 못해 지식정보에 접근하지 못하는 불균형이 발생한다. 누리미디어(디비피아)가 2058개 저널을 유통하는데, 구독 기관은 312개다. 코리아스칼라 같은 경우엔 59개 기관만이 구독한다. 한양대는 5개 유통업체 디비를 다 구독하는데, 구독료가 1년에 2억원이 좀 넘는다. 이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구독을 포기하는 대학들도 많다. 논문을 생산해도 출판으로 이어지기 힘든, 게재료의 문제도 있다. 연구비가 풍부한 연구자는 상관없지만, 게재료를 비싸게 받는 학회도 있고 유통을 통해 이를 때우는 학회도 있다. 기관에 속하지 않고 독립 연구를 하는 경우 논문 출판이 더욱 어렵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일단 국가 연구비를 지원받는 연구에 대해서는 오픈액세스를 의무화해야 한다. 오픈액세스를 적용하면 게재료가 비싸질 염려가 크니까, 이를 부담해주자는 것이다. 기관 소속이 없거나 취약 분야라서 지원이 부족한 연구자들에 대해서도 국가가 게재료를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 이는 우리나라 경쟁력 강화에도 도움이 된다. 이공계의 경우 좋은 연구일수록 국외 저널에서 출판하려는 경향이 강한데, 정부 지원이 국내의 좋은 아이디어들이 국내에서 생산·유통되도록 장려하는 효과도 낼 수 있다. 소비 측면에서는 여러 기관들의 연합으로 협상력을 높여, 구독료를 낮출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학회나 유통업체들이 위기의식을 가질 수 있다. 비용은 보전받더라도 고유의 ‘콘트롤’ 또는 ‘거버넌스’ 권한이 없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아마 엘스비어나 스프링거 등 유명한 출판사가 주도하는 국외 학술지를 구독하는 데 쓰이는 예산이 전체의 90%가량 될 것이라 본다. 나머지 10%가 국내 발간 학술지일 것이다. 국내 학술지의 경우, 우리가 발간했지만 국외 출판사 통해서 유통되는 학술지와 국내 유통업체를 통해 유통되는 학술지로 나눠볼 수 있다. 이렇게 세 가지 카테고리를 나눠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첫째, 국외 학술지 구독의 경우 개별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마켓의 문제이며, 이미 선진국들 중심으로 대응해온 흐름이 있다. 오픈액세스2020, 플랜에스 등 기본적인 방향이 제시되어, 공적인 연구비 지원 연구는 2024년까지 오픈액세스 적용하도록 못박아둔 상태다. 엘스비어, 스프링거 등 유명 학술지들도 따르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 흐름을 따라가면 된다. 이미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중심으로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이 엘스비어와 게재료(APC)로 구독료를 대체하는 오픈액세스 전환 계약을 맺은 바 있다. 다만 대학 도서관연합회 등 아직 협상이 덜 된 분야가 있는데, 이 역시 게재료를 구독료로 상쇄하는 방향으로 진행해가면 된다. 게재료와 구독료의 이중부담 문제도 저절로 해결된다.
둘째로, 국내 발간 학술지중 국외 유명 출판사를 통해 유통하는 것들에 대하여는, 별도의 국가 차원의 투자가 필요하다. 국내 학회가 국외 출판사를 이용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저작물을 세계에서 많이 알리자는 차원이다. 이들이 가진 시스템이 엄청나기 때문에, 이를 활용해 누리는 혜택이 크다. 전세계적으로 학술지의 경젝 규모를 10조원 정도로 추산하는데, 여기서 우리가 내는 논문은 3% 정도인 3천억원으로 우리나라의 년간 구독료 총액 1,800억을 훨씬 상회한다. 당연히, 학술지 시장에서 우리의 지분을 높이는 것이 정책의 방향성이 되어야 한다. 국제적으로 경쟁 심한 곳에서 바로 이들 학술지들이 그 역할을 수행하도록 지원해야 하는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국내 유통업체를 통해 출판해 주로 국내 시장에 머무는 학술지들이다. 이공계에서는 영어로 논문을 쓰고 해외 우수 학술지에 게재하는 경향이 강한데, 현재 평가 시스템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과학기술 분야 논문들의 경우에도 학계뿐만 아니라 산업계에서 한글로 작성된 연구 성과들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자그마한 연구 성과라도 중소기업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경우가 있는데, 국내 시장에서 한글로 유통되어야 가능한 부분이다. 매우 중요한 영역이다.
국내 학술지 유통의 문제는 차 교수님이 잘 지적해주셨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인프라로서 플랫폼’의 중요성이다. 대표적인 것이 리포지토리다. 디비유통업체들이 다 유통시키고 있다지만, 대학에 소속되어 있더라도 연구실 밖에서는 못 본다. 소속과 신분이 불안정한 사람이야 그 불편을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걸 제대로 해결하려면 리포지토리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학회 중심으로 저널이 만들어진다는 우리의 특수성을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안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에 접근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신 위원장이 말씀하신 ‘한국형 오픈액세스’의 기초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사용자들에게 친숙하게 쓰일 수 있는 플랫폼의 구축이 절실하다. 이에 대한 투자는 국가적인 단위로 이뤄져야 한다.
김 경쟁 지상주의 때문에 국외 ‘최고’ 학술지에 영어 논문을 싣는 것에만 가치를 두기 쉬운데, 그게 일면적이라는 지적을 잘 해주셨다. 인문사회과학 분야를 대변하는 입장에서 한국어로 하는 학문 활동의 중요성을 학술언어, 교육언어로서 한국어의 중요성과 함께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자연스럽게 정부의 지원 문제로 넘어왔는데, 현재 정부가 지원하는 관련 사업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외국학술지지원사업’인데, 국외의 인쇄 학술지를 분야별로 10개 대학에 구독을 분담시키고 이용자들에게 상호대차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또 하나는 국내외 주요 전자저널을 무료로, 또는 할인받아 구독하게 지원하는 ‘대학라이선스’ 사업이다. 그러나 엘스비어가 협상 조건을 이유로 협상에 응하지 않는 등 효과가 떨어지는 부분도 있다. 어떤 지원이 필요하고 또 효과적인지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
지난 6월27일에 열린 국가정책포럼에서도 공감을 얻었듯이, 국내 학술지 출판비 지원 방식의 오픈액세스 추진이 초기 단계에서 효과적이라고 믿는다.
이범훈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전 한국물리학회 회장).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차재혁 한양대 백남학술정보관장.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이 핵심은 국내 유통업체 통하고 있는 학술지들을 어떻게 지원하느냐일 것이다. 영세하다는 이유로 지원해주는 방식은 배고픈 사람에게 매일 빵을 지급해주는 조처에 그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자생할 수 있는 길을 찾아줘야 한다. 어차피 요즘은 모든 게 전자저널이고, 논문 투고와 심사, 출간이 모두 전자적으로 진행된다. 이 때문에 자생할 수 있는 길은 아카이브에 있다. 투고에서 생산까지의 기능을 갖춘, 제대로 된 플랫폼이다.
학회 일을 해보면서 느끼는 건, 논문 출판 관련 전문 인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다. 국외 출판사의 경우엔 교정부터 편집, 그래픽 작업 등 능수능란한 전문 역량이 갖춰져 있다. 우리나라 학회가 만드는 저널인데도 국외 출판사 통해 유통시키는 건, 그만큼 시스템이 좋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학회엔 그런 역량이 없다. 출판사는 인쇄물을 출판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고, 충분한 역량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학회에 그런 역량이 다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이 때문에 ‘한국형 오픈액세스’는 특히 한국어로 되어 있는 성과물들을 제한적인 시장 안에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축적하고 관리하고 유통할 수 있을지를 그 시작점으로 삼아야 한다. 국내 발간 학술지 지원을 모든 학회에 그런 전문 인력을 다 제공할 수 없다면, 예컨대 어떤 기관에서 전문 역량을 키우고, 학회들이 의뢰하면 이를 제공해주는 방식이 어떨까 한다.
국제적인 리포지토리에의 협력도 제안해본다. 리포지토리 사례로 위에서 설명한 알카이브(arXiv)는 미국 코넬대에서 운영하는데, 운영비는 한 해 10억원 정도다. 코넬대의 자체 도서관 예산과 사이먼스 재단의 지원, 대학·기관 등 회원들의 회비 등으로 이뤄진다. 회원 회비는 한 해 1천~4천달러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데 참여하면, 위상 제고와 함께 미러사이트 운영 등 아카이브 운영 기술을 포함하여 우리의 리포지토리 구축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차 유통력 있는 국외 학술지의 경우, 이 교수님 말씀처럼 이미 좋은 사례들이 있다. 정부출연기관 사례처럼 연구자 대신 기관이 협상에 나서고 적절히 배분하고 공유하는 체제가 가능할 것이다. 이게 확산되어 대학으로도 가야 하는데, 규모와 분야가 달라서 협상하는 데 난이도가 더 높다. 현재 대학의 거버넌스 체제로는 쉽지 않은 대목도 있다. 사립대의 경우, 적절한 권한이 없어서 국외 학술지들과 제대로 협상할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이 때문에 지속성이 담보된 종합적인 실행 조직 같은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국가 차원에서 비용을 따져보고 협상할 수 있어야, 전체적으로 비용을 절약하고 공평하게 쓸 수 있다.
국내 학술지의 유통을 위해선 저 역시 리포지토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학문적 성과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원스탑’ 서비스까지 가려면 면밀한 설계와 운영이 필요한데, 개별 학회 차원에서 이를 하기엔 불가능하다. 그런 불편 때문에 디비유통업체에 넘기는 측면이 강하다. 운영을 잘 할 수 있는 조직만 있다면, 이를 잘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어쩌면 디비유통업체가 그런 역할을 대신 할 수도 있다. 정부 기관이 할 수도 있지만, 자생적인 민간 업체와 ‘윈윈’할 수 있는 정책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외국 아카이브를 들여와서 운영하는 방안도 가능할 것이다. 어쨌든 그런 게 있어야 영세한 연구자들도 접근 가능한 플랫폼으로 쓰일 수 있다. 여태까지 이런 게 왜 없었지 싶다. 국외에선 대학이나 기관이 희생하면서 운영하는 등 이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정부에 요구만 할 뿐 자생적인 게 없었다. 구체적인 면에서 한발 더 앞서 나갔으면 좋겠다.
김 최근 유럽 쪽 보고서를 보니, 거기도 플랫폼 관련 논쟁이 있다. 공공 플랫폼을 만들자는 입장이 있고, 그것은 현실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상업출판 플랫폼을 활용하자는 입장도 있다. 국내에서는 공공 플랫폼 논의가 좀 더 우세한데, 디비유통업체들이 학문사회의 요구를 수용할 동기가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공공 플랫폼 구축과 활용에 대해서는 학문의 자유와 자율성 침해 우려가 제기되기도 한다. 오늘 좌담에 나와주셔서 감사드린다.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신 위원장이 말씀하신 ‘한국형 오픈액세스’의 구체적인 상도 그려본 것 같다. 신 위원장께 닫는 말씀을 부탁드린다.
신 일단 오픈액세스 관련한 국제적인 흐름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필요성이 큰 것 같다. 그에 견줘 국내 문제는 많이 복잡해보인다. 가장 필요한 것은 국가의 관심과 지원이라고 보여진다. 개별 대학이나 기구에 맡겨놔서는 해결이 어렵기 때문에 이해관계자들을 모으고 사회적 논의를 진행시키는 역할이 가장 절실해 보인다. 입법을 통해 제도적인 틀을 만들고, 예산으로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겠다. 우리 위원회에서 진행하는 ‘도서관발전종합계획’에도 오픈액세스 체계 구축 문제가 들어가 있는데, 앞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연구해보겠다. <끝>
정리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