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프랭클린 누리집(hbrucefranklin.com).
브루스 프랭클린은 책으로 한국에 알려진 바 없는 미국의 문화사학자다. 한국에도 최근 미술사학자와 고고학자를 중심으로 문화사학회가 조직되어 학술잡지 <문화사학>을 내고 있지만, 문화사학자라는 직명은 아직 생경하다. 역사 자체를 문화사라고 하기도 하지만, 엄밀하게는 문화를 중심으로 한 역사의 일부가 문화사다. 여전히 왕이나 왕조를 중심으로 한 정치사가 학계는 물론 대중적으로도 우세한 한국에서는 프랭클린 같은 비판적 문화사학자를 보기가 쉽지 않다. 그런 분위기 탓인지 미국사를 전공한 사람들이 꽤 많음에도 불구하고 프랭클린은 소개된 적이 없다. 물론 벤저민 프랭클린이나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같은 다른 프랭클린은 많이 소개되었지만.
미국사를 모르는 나는 노엄 촘스키의 책을 통해 프랭클린을 알았다. 2011년에 번역된 <촘스키, 희망을 묻다 전망에 답하다>(책보세)에서 미국 문화의 주요 테마가 “괴물에게 목숨을 잃기 직전에 초강력 무기나 슈퍼 영웅”이 미국을 구한다는 것임을 프랭클린이 밝혔다고 하면서, 촘스키는 괴물에 대한 “두려움은 대외적으로는 침략과 폭력”, “대내적으로는 (이민국가 미국에서!) 이민자에 대한 증오”로 나타나는 포퓰리즘이라고 했다. 이어 2014년에 번역된 <촘스키, 은밀한 그러나 잔혹한>(베가북스)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미국 독립선언에서 토머스 제퍼슨은 영국 왕이 “우리에게 맞서서 무자비한 인디언 야만인들을 풀어놓았으며, 이 인디언들이 알고 있는 유일한 전쟁이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어떤 상황에 처한 사람이든 모조리 죽여 없애는 것”이라고 했지만, 제퍼슨은 “오히려 유럽인이 무자비한 야만인이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고 촘스키는 말한다. 마찬가지로 미국인은 인디언에 이어 흑인 노예, 그리고 중국인, 베트남인, 무슬림을 계속 괴물로 삼았지만, 사실상 괴물은 자신들이었다고 촘스키는 말한다.
감옥문학의 합법화 이끌어
그러나 나는 프랭클린이 분석한
‘괴물 가설’의 침략사는 미국 문화의 본질이 아니라 서양 문화 자체의 본질이라고 보며, 그 기원을 고대 그리스 로마의 제국주의적 신화와 문화로 본다.
그것이 중세에는 기독교로 바뀌었다가 근대에 다시 제국주의적 침략으로 등장한 게 ‘지리상의 발견’이라는 영토 침략, ‘종교개혁’이라는 종교 침략, ‘르네상스’라는 문화 침략이다. 나는 프랭클린이나 촘스키를 알기 훨씬 전부터 이러한 주장을 했다. 여하튼 촘스키나 프랭클린은 나의 주장을 확인해준 점에서 고마운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말하듯이 그런 주장은 미국에서는 이단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랭클린은 학자로서도 이단이다. 1934년에 태어난 프랭클린은 1955년에 애머스트대학을 졸업하기까지 수많은 직업을 전전했고, 대학 졸업 후에도 예인선 갑판원, 공군 항해사, 정보장교를 비롯한 여러 직업을 가졌으며, 1966년 베트남전쟁에 항의하며 전략항공사령부에서 물러났다. 1961년 스탠퍼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영어학 조교수로 고용되어 허먼 멜빌과 너새니얼 호손을 연구했으나, 1966년부터 파리에서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하고 미군 탈영병의 유럽 조직을 도운 뒤 베트남전쟁 반대 운동에 참여했다. 1972년 베트남전쟁을 반대하는 폭동을 선동했다는 혐의로 스탠퍼드대학교에서 해고되었는데, 종신직을 가진 교수로서 유일하게 해고된 그 사건은 미국에 과연 학문의 자유가 있는가라는 의문을 전국적으로 불러일으켰다. 3년간 실직 상태에 있다가 1975년부터 2016년 럿거스대학교의 영미학 교수로 재임했다. 퇴직 2년 전인 2014년 80살의 나이임에도 그는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이 대학 졸업식 연사로 초대되는 것에 반대했다.
브루스 프랭클린 누리집(hbrucefranklin.com).
그는 공상과학 소설, 슈퍼 무기, 교도소 문학, 해양 생태라는 다양하고 특별한 주제를 연구했다. 1966년에 낸 <완벽한 미래: 19세기 미국 과학소설>을 비롯하여 과학소설가인 로버트 하인라인에 대한 연구서와 미국 드라마 <스타트렉>의 역사에 대한 저술들은, 위에서 말한 괴물 가설의 제국주의가 미국의 과학소설과 영화, 드라마 등에 어떻게 침투해서 미국인의 현실 인식을 마비시키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1988년에 낸 슈퍼 무기를 다룬 <워 스타즈: 미국 상상력의 슈퍼 무기>(2008)에서는 18세기 로버트 풀턴의 잠수함 노틸러스부터 20세기 후반의 치명적인 무기에 이르기까지 표면상 전쟁을 끝내기 위해 고안된 슈퍼 무기가 인류를 멸종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위 책의 2008년 개정판에서는 그러한 미국 문화로 인해 21세기도 영구적인 전쟁 상태가 될 것이라고 했다. 1996년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가 개봉됐을 때 프랭클린은 “역사적 경험으로 볼 때 미국 문화의 기본은 우수한 기술로 무장한 채 다른 이들의 고유문화를 말살하는 외계인의 침략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베트남이 미군 전쟁포로를 계속 수용하고 있다는 잘못된 정부의 선전과 대중의 미신을 폭로하는 책들도 썼다. 그리고 1989년의 <미국의 감옥 문학: 범죄와 예술가로서의 피해자>와 1998년의 <20세기 미국의 감옥 문학> 선집과 같은 책에서 죄수 작가와 예술가가 “문화 생산의 주류에 깊은 영향을 끼친 혁신적인 창작자”라고 주장했다. 그의 저술은 범죄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출판사에 판매함으로써 범죄를 홍보해 이익을 얻지 못하게 한 ‘샘의 아들 법’(Son of Sam law)을 뒤집는 대법원의 결정에 인용되었다.
한국전쟁 때 네이팜탄 사용 밝혀
그는 인권침해라는 측면에서 미국 형벌제도에 대해 거침없이 비판했다. 그리고 2007년에는 대서양과 걸프 연안의 먹이사슬에서 중요한 물고기인 멘헤이든(청어의 일종)에 대한 책을 집필하여 그것을 보호하기 위한 대규모 운동을 촉발했다. 2018년에 낸 회고록인 <집중훈련: 정당한 전쟁에서 영원한 전쟁으로>에서 그는 80여년에 걸친 그의 생애를 회상하면서, 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미국은 결코 동아시아를 떠나지 않았고, 그곳에서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말한 부분도 인상적이다. 특히 미군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기 전에 일본 도시 전역에 대해서 했던 폭격과 한국전쟁 때의 폭격이 어떻게 베트남전쟁으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뿌리를 캐는 부분이 그렇다. 그에 따르면, 일본과 한국에 대한 폭격을 지휘했던 미 공군의 커티스 르메이 장군은 한국전쟁 때는 네이팜도 사용했으며, 훗날 “남한과 북한의 거의 모든 도시를 불태웠”고 “인구의 20%를 죽였다”고 말했다고 한다. 르메이가 베트남전쟁 때는 “베트남을 폭격해 석기시대로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한국전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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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 _ 전 영남대 교수(법학). 노동법 전공자지만, 철학, 문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관심의 폭이 넓다. 민주주의, 생태주의, 평화주의의 관점에서 150여권의 책을 쓰거나 번역했다. 기성 질서를 거부했던 이단아들에 대한 얘기를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