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학술

우울한 과학이 우울하지 않으려면…

등록 2017-11-12 10:49수정 2017-11-12 11:18

[토요판] 최정규의 우울하지 않은 과학
⑬ 민주주의와 공동체

19세기 중반에 활동한 스코틀랜드 태생의 영국 역사학자이자 저술가였던 토머스 칼라일은 박애주의자들과 손잡고 노예해방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정치경제학을 ‘우울한 과학’이라 불렀다.
19세기 중반에 활동한 스코틀랜드 태생의 영국 역사학자이자 저술가였던 토머스 칼라일은 박애주의자들과 손잡고 노예해방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정치경제학을 ‘우울한 과학’이라 불렀다.

“우울한 과학”이란 말을 처음 쓴 사람은 19세기 중반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저술가였던 토머스 칼라일이었다. 그는 당시 정치경제학을 가리켜 우울한 과학이라고 불렀다. 이 말은 1849년 ‘니그로 문제에 대한 특별 담화문’이라는 글에 처음 등장했다. 이 글은 펠린 므쿼크 박사라는 가상 인물의 발표문 형식으로 쓰여 있다. 익명으로 발표됐지만 사람들은 저자가 칼라일임을 단번에 알아챘다고 한다. 이 글에서 칼라일은 므쿼크 박사의 입을 빌려 노예제도의 철폐가 플랜테이션에 기반해 있던 식민지 경제를 얼마나 피폐화시키고 있는지, 당시 박애주의자들과 정치경제학자들이 이 문제를 얼마나 더 어렵게 만들고 있는지, 그리고 자유를 획득한 원주민들을 어떻게 강제해서 열심히 일하도록 만들 것인지를 말하고 있다. 그가 보기에 노예제로부터 해방된 원주민들의 나태함이 문제였고, 나태함을 적절히 통제할 규율과 질서가 필요했다. 그런데도 당시 자유주의적 정치경제학은 나태함의 해결을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맡긴 채 자유방임하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의 눈에 경제학은 무책임한 그리고 우울한 과학이었다.

칼라일, 경제가 갈등의 현장임을 간파

카리브 해역 서인도제도의 피폐화된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경제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가 문제였다. 서인도제도의 영국 식민지 경제는(정확히 말하자면 이 지역의 플랜테이션 소유주들은) 한편으로는 노동공급원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비식민지 지역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뒤처지는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당시 영국 박애주의자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식민지 지역의 원주민들이 노예 지위로부터 풀려나 자유를 얻게 되었는데, 이 지역 플랜테이션 소유주들은 그 때문에 예전처럼 쉽게 부릴 수 있는 원주민 노동력을 확보하지 못하게 되었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또한 영국 본국에서는 영국 식민지가 아닌 쿠바나 브라질 등의 플랜테이션에서 생산된 설탕 수입에 관세를 부과해왔는데, 이들에 대한 관세가 단계적으로 폐지됨에 따라 영국 식민지 플랜테이션에서 생산되는 설탕은 본국에서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영국 식민지가 아닌 지역들에서는 여전히 노예를 부리면서 그만큼 낮은 비용으로 사탕수수를 수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영국 식민지에서 노예 해방을 부추긴 박애주의자들과 관세 철폐를 위한 이데올로기적 근거를 제공한 우울한 과학(경제학) 사이의 부적절한 “혼인”으로 식민지 경제가 파탄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고 비판했다.

서인도제도 지역의 플랜테이션 소유주들의 곤란을 경감시키고자 제안되었던 정책은 아프리카 등지에서 계약 노동자들을 수입, 공급하여 노동공급의 부족을 해결하자는 것이었다. 칼라일은 이런 정책은 식민지 경제를 회복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식민지의 문제는 노동할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오히려 신의 섭리에 따라 노동할 운명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너무 많았다!), 나태함 때문에 제대로 일하려 하지 않는 데 있다고 봤다. 너무나 풍요로운 자연조건 아래서 너무나 쉽게 생활에 만족한 나머지 한 움큼의 식량만 있으면 더 이상 노동할 생각을 하지 않는 원주민들이 문제였고, 이들을 일하도록 강제하는 데에 임금의 높고 낮음은 아무런 효력도 없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일을 잘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태어났으면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신의 섭리이거늘, 자유롭게 풀려난 이후 도무지 일이라곤 하지 않으려는 원주민들의 나태가 핵심이라는 얘기였다.

칼라일, 노예해방 외친 박애주의자 비판
정치경제학을 ‘우울한 과학’이라 불러
밀, 인종주의적·봉건적 주장 반박 나서
“자연이 부여한 인종간 위계는 없다”

‘사람-사람 관계’ 문제 간파한 칼라일
경제학은 ‘권력·갈등’ 시야에서 지우고
거래와 계약 뺀 ‘인간관계’는 눈감아
공동체 담론 더 이상 설 곳 잃는 결과

칼라일이 내놓은 대안은, 말하자면 계몽된 농노제였다. “현명하게 태어난 백인들”에게 하인으로 들어가 일을 하도록 “강제”받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그가 보기에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자는 자유방임적 정책이나, 정치를 민주적으로 이끌자는 말은 사람들을 제대로 통치해야 할 책임을 방기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신의 섭리에 따라 일하는 존재로 태어난 이들이라면 일을 해야 하며, 이들을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현명한 백인들의 지배가 필요하다는 것, 이것이 우울한 과학을 우울하지 않게 만드는 칼라일의 대안이었다.

우울한 과학 쪽의 반박은 당시 대표적인 정치경제학자였던 존 스튜어트 밀로부터 나왔다. 밀은 칼라일의 절친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친구가 내세운 인종주의적이고 봉건적인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밀은 칼라일이 내세운 신의 섭리란 강자들의 섭리에 다름 아니라고 말했다.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은 그러한 섭리에 맞서 싸워온 사람들이었다고 했다. 더 나아가 밀은 자연이 부여한 인종 간의 위계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만일 신이 특정 부류의 인간들은 지배에 걸맞게 그리고 다른 부류의 인간들은 지배받는 하인에 걸맞게 태어나도록 했고, 또 그러한 자연적 위계에 따라 살아가도록 임무를 부여했다면, 그러한 임무를 내린 신에 맞서 싸우는 것이야말로 인류의 임무일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아메리카대륙에서 노예제를 둘러싸고 정의와 부정의 사이의 대립이 막 시작하려는 시점에 이런 주장이 나온 것에 대해 개탄했다.

칼라일의 주장에는 경제학이 갖는 한계를 꿰뚫어보는 예리한 통찰력이 있었지만, 그의 인종주의적이고 봉건적인 관점에 가려 제대로 드러나지도 못했다. 우선 그는 경제가 갈등의 현장임을 간파해냈다. 그리고 경제적 영역에서도 수요-공급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문제일 수 있다고 봤다. 그가 나태함이라 지칭한 것의 핵심은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를 강제하는 권력행사의 문제이기도 했다. 물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보수주의자였기에, 그는 이 모든 것을 철저하게 플랜테이션 소유주들의 눈으로 바라봤다. 밀은 바로 이 점을 파고들었고, 그래서 논쟁에서 도덕적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반면 칼라일의 통찰은 그의 보수주의에 가려진 채 드러나지 못했고, 제대로 평가받지도 못했다.

토머스 칼라일의 ‘절친’이었던 존 스튜어트 밀은 칼라일의 인종주의적·봉건적 주장을 반박하며 정치경제학을 옹호했다.
토머스 칼라일의 ‘절친’이었던 존 스튜어트 밀은 칼라일의 인종주의적·봉건적 주장을 반박하며 정치경제학을 옹호했다.

이름에서 ‘정치’라는 딱지를 떼어낸 경제학

칼라일 이후의 경제학은 더 우울한 방향으로 변했다. 경제학은 점점 더 수요와 공급에 매달렸다. 18~19세기 정치경제학은 이름에 걸맞게 국가의 부가 어떻게 형성되고, 그 부가 각 계급들 사이에 어떤 원리에 따라 분배되는가를 다뤘다. 성장을 추진할 동력을 갖는 계급과 이를 방해하는 계급을 구분하기도 했고, 계급 사이의 갈등과 조화를 다루기도 했다.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이르자 경제학은 자신의 이름에서 ‘정치’라는 딱지를 제거했다. 경제학은 더 이상 국가의 부, 그리고 성장과 분배를 다루는 학문이 아니라, 라이어널 로빈스가 말하듯, “주어진 목적과 희소한 수단 사이의 관계로서의 인간 행동을 다루는 학문”이 되었고, “과학”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가격을 매개로 해서만 이해되기 시작했다. 비록 인종주의와 위계의 정당화로 귀결되긴 했지만, 칼라일이 말하고자 했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나타날 수 있는 갈등과 권력행사의 문제는 경제학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아바 러너가 말했듯이 경제학은 이른바 갈등을 정치적 문제에서 경제적 거래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다. 경제학은 자신의 영역으로부터 정치적 문제를 제거함으로써 “사회과학의 여왕”의 지위에 올랐다.

과학이 되고, 또 사회과학의 여왕이 되면서 경제학은 더욱더 우울한 방향으로 나아갔지만, 우울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경제적 영역을 공동의 목표를 조화롭게 추구하는 장소가 아니라, 때로는 당사자들 사이에 목표의 충돌이 있고 또 당사자들 사이에 갈등(혹은 거창하게 계급투쟁이라 불러도 좋다)이 전면화되기도 하며, 그런 만큼 정치적 문제가 중요하게 등장하는 곳으로 보려는 시도를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다론 아제모을루는 경제적 성과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제도이며, 적절한 제도를 마련하는 과정은 공학적인 과정이 아니라 정치적인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제임스 로빈슨과 함께 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책에서 “한 나라의 빈부를 결정하는 데 경제제도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만, 그 나라가 어떤 경제제도를 갖게 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정치와 정치제도”라고 강조했다. 그는 불평등을 해결하는 것, 성장을 가능케 하는 포용적 제도를 만들어내는 것 모두 정치를 통해 사회를 지배하는 규율을 만드는 문제이며, 여기서는 누가 권력을 쥐고 그 권력을 어떻게 행사하는가가 핵심이라고 봤다. 경제적 거래는 이미 해결된 정치적 문제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고, 정치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따라 경제적 성과도 달라질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다른 한편, 새뮤얼 볼스와 허버트 긴티스는 1980~90년대에 했던 연구를 통해, 작업 현장에서 고용주와 노동자들 사이의 관계는 경제적일 뿐 아니라 정치적이며, 작업 현장에서 정치와 권력행사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따라 기업의 경제적 성과가 달라질 것임을 보였다. 작업 현장에서 어떻게 노동을 끌어낼 것인가의 문제(이른바 ‘노동의 추출’ 문제)를 다뤘다는 점에서 이들은 칼라일과 유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지만, “강제”와 “위계”를 섭리로 받아들인 칼라일과 달리 작업 현장을 “민주주의적으로” 재구조화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보이고자 했다.

자유주의라는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가려져 있던 공동체 담론의 복원을 꾀하고자 하는 시도도 주목해야 한다. 칼라일의 주장에서 끔찍한 인종주의를 걷어내보자. 그리고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이 부여한 위계질서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봉건적 숙명론도 걷어내보자. 그러고 나면 몇 가지 중요한 통찰이 눈에 띈다. 그는 <과거와 현재>라는 글을 통해 중세 공동체적 질서와 근대 만연한 탈조직화 현상을 비교한 바 있다. 그는 시장을 유목주의라고 비판하면서, 안정적이고 조화로운 중세의 이미지와 대조했다. 그에 따르면 시장은 돈으로만 연결된 (즉, 돈 말고는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는) 연결망이며, 그 때문에 거기서 사람들은 연결과 유대를 잃고 뿌리 없이 끊임없이 표류하게 된다고 했다. 그는 근대 자유주의가 가져온 해법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나타나는 갈등과 부정의의 문제를 사람과 사람을 떼어 놓음으로써 해결하려는 것, 그리고 현금 거래와 자발적 계약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연결과 유대도 남겨두지 않음으로써 해결하려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비판했다(물론 그가 여기서 반대하는 것은 보통선거권의 확대와 노예해방이지만). 그는 기계와 물질적인 것에 대한 신봉이 가져올 정신적 타락을 우려했고, 다양성의 공존과 항상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칼라일과 밀의 논쟁이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논쟁은 칼라일의 보수적 관점에만 초점이 맞춰진 채 공동체에 대한 것으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보수주의가 진보의 열망을 담지 못해 자유주의에 밀려나면서, 이와 함께 공동체적 담론도 사라져 버렸다. 자유주의적 질서 속에서 공동체가 설 곳은 없었고(남아 있는 건 가족과 국가뿐이게 되었다), 그것이 수행했던 역할은 시장이나 정부가 맡게 되었다. 그 속에서 사람들 사이의 유대 및 협력을 통한 공동체적 해법 등도 잊히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공동체를 둘러싼 논의가 오랫동안 묻혀 있게 됨으로써 공동체 내에서 권력 및 위계의 문제가 있다면 이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공동체 내에서 구성원은 자유롭고 평등한지, 공동체는 민주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지, 공동체의 경계는 얼마나 뚜렷해야 하며 외부인에 대해서는 얼마나 관용적이어야 하는지 등을 둘러싼 논의도 본격화되지 못했다. 말하자면, 공동체는 근대적으로 전화하지 못한 채 중세적 이미지로만 남아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시장이 우리에게 지속가능한 미래를 보장하지 못하고 상호 협력을 통해서만 해결되는 시장의 실패 사례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삶의 소중한 부분들이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사라질 위험에 처하면서, 공동체적 해법이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스티븐 마글린이 <우울한 과학>이라는 책을 통해 이야기하듯, 왜 우리에게 공동체가 여전히 필요한지, 우리 사회에서 공동체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그리고 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시장이 우리에게 지속가능한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잃어버린 공동체적 담론도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한 쪽방촌 모습.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시장이 우리에게 지속가능한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잃어버린 공동체적 담론도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한 쪽방촌 모습.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부작용”이 발견돼야 관심의 대상이 된다면…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덧붙이자. 불평등과 차별이 그 자체로 문제로 다뤄지지 않고, 그것이 민주주의에 장애가 된다든지 혹은 성장에 방해가 된다든지 하는 “부작용”이 발견되어야 비로소 관심의 대상이 된다면, 그리고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여러 조치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보장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경제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입증해야만 받아들여질 수 있다면, 경제학은 여전히 우울한 과학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제학이 불평등과 차별의 해소를 이야기할 수 있을 때, 경제적 영역에서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수 있을 때, 공동체를 이야기할 수 있을 때, 떠날 자유뿐 아니라 목소리를 낼 자유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을 때, 갈등이든 협력이든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이론화할 수 있을 때, 협력에 기반한 질서를 생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아주 조금씩이나마 우울한 이미지를 떨쳐낼 수 있지 않을까?

※ 최정규의 우울하지 않은 과학은 이번 회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필자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김건희가 박찬욱에게, 날 주인공으로 영화 한편 어때요 했다더라” 1.

“김건희가 박찬욱에게, 날 주인공으로 영화 한편 어때요 했다더라”

25년 경호 공무원의 조언 “대통령 ‘개인’ 아닌 ‘공인’ 지키는 것” 2.

25년 경호 공무원의 조언 “대통령 ‘개인’ 아닌 ‘공인’ 지키는 것”

영화인들 “‘내란 공범’ 유인촌의 영진위 위원 선임 철회하라” 3.

영화인들 “‘내란 공범’ 유인촌의 영진위 위원 선임 철회하라

63살 데미 무어의 세월을 질투하다 4.

63살 데미 무어의 세월을 질투하다

모르고 모르니 몰라서 모른 채 좋아 쓴 소설 [.txt] 5.

모르고 모르니 몰라서 모른 채 좋아 쓴 소설 [.txt]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