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9월 방한 때의 게리 스나이더. <한겨레> 자료사진
코로나19로 한달에 한두번 만나던 드문 인연들마저 끊겨 새벽부터 황혼까지 끝없이 변하는 하늘과 구름, 해와 달, 안개와 비, 닭과 개, 꿩과 새, 나무와 채소의 들녘에서 침묵과 노동으로 하루를 지내면 정치나 경제 따위는 물론 세상도 사람도 잊어버린다.
명상이니 사색이니 할 것도 없다. 오로지 고요와 침묵 그리고 일과 땀뿐이다. 묵언수행의 맹세도, 참선의 죽비도 필요 없다. 아무리 고적한 절간이라고 해도 사방이 벽으로 막힌 방은 물론 그 방문을 닫는 자물쇠도 싫다. 부처처럼 사방이 막힌 방이 아니라 사방이 트인 들판에서 홀로 지내며 나를 들판에 오게 한 게리 스나이더의 <야생의 실천>을 다시 읽는 것은 예술도, 사랑도, 불교도 야생으로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의식적인 실천일 뿐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올해 아흔한살이지만 캘리포니아 태평양 연안을 남북으로 뻗는 시에라네바다 산속에 집을 짓고 한겨울에도 난방 없이 홀로 사는 스나이더는 자기처럼 사는 사람이 동서고금에 많다고 하면서 별일이 아니라고 해 좋다.
1930년 대공황 초기에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태평양 북서부의 농장에서 자라 인디언 신화와 시, 선과 도교를 공부한 그는 “개울이 질식하고 송어가 죽고 길이 죽었다”며 백인의 인디언 학살과 자연 파괴를 혐오하면서 반세기 이상 산속에서 외롭게 산다.
나는 부끄럽게도 청년 스나이더가 미국에 처음 소개한 책을 읽고서야 한산(寒山)을 알았다. 자작나무 껍질을 머리에 쓰고 너덜너덜하게 해진 옷을 입고 나막신을 질질 끌고 다녔다는 중국 당나라의 한산은 체제순응적인 중국 귀족불교를 거부하고 민중불교를 실천하면서 절밥을 짓는 습득(拾得)에게 음식찌꺼기를 얻어먹으며 암굴의 은둔자로 살았다. 그런 한산을 잇는 스나이더가 쓴 <아미타불의 서원>을 나는 좋아한다.
“만일 부처로 된 뒤, 내 땅에서 누구라도/ 방랑자 혐의로 감옥에 갇힌다면, 내가/ 최상의 완벽한 깨달음을 얻지 못하게 하소서// 과수원의 들오리들/ 새 풀 위의 서리.” 앞 구절의 “방랑자 혐의로 감옥에 갇힌다면”은 “가난해서 병들어 죽게 되면” 등등 세상의 모든 불행으로 바꿀 수 있다. 그리고 뒤 구절의 들오리나 서리는 서로 연결되는 세상의 모든 생물이나 무생물로도 바꿀 수 있다. 불교에 대해 더 무슨 말이 필요한가? 아니 세상살이에 또 무엇이 더 필요한가? “나무 한 그루만으로/ 족하다/ 아니면 바위나 작은 시내,/ 웅덩이에 뜬 나무껍질 조각만으로도,/ 첩첩이 포개져 꿈틀거리는 산 너머 산/ 얇은 돌 사이로/ 단단한 나무들 빽빽하고/ 그 위에 떠 있는 커다란 달이 너무 밝다”는 스나이더의 지족에 손뼉을 친다.
‘시인의 임무는 숲을 지키는 것’이라 하며 스스로 선택한 벌목꾼, 산불 감시원, 선원 등으로 일한 노동자 시인 스나이더는 1957년 화물선을 타고 일본에 건너가 임제종의 선불교를 공부했지만, 출가가 형식이라는 이유로 거부하고 1969년 일본에서 돌아와 산속에 들어가 평화와 환경운동에 헌신하며, 동양철학과 불교의 대중화에 공헌하였다.
1970년부터 20년 동안 자신의 삶을 기록한 <야생의 실천>은 야생과 접촉하고 주변의 들판을 “야생 잠재력이 완전히 표현되고 다양한 자신의 질서에 따라 번성하는 생물과 무생물의 다양성”의 장소로 살아가는 사회경제적 생활을 추구한 책이다. 지역에서 살며 일해야 문화를 키울 수 있고, 야성을 회복해야 문화를 회복할 수 있다고 하는 생물지역주의(bioregionalism)를 주장하면서 “식물과 동물의 고통을 이해하고 느끼며 모든 생물체에 대한 존중감을 가지는” ‘거북섬의 관점’을 제시한다.
거북섬이란 인디언들이 미국을 가리키던 이름이다. 인디언적 관점의 생물지역주의는 인간이 자의적으로 구분한 정치적·행정적 지역이 아니라 장소, 가령 분수령이나 산등성이 등과 같은 지형이나 기후 패턴 혹은 식생대에 따라 다시 구분하고, 이런 생태지리적 특성과 그것에 따른 최적의 생활양식을 통해 장소에 헌신하는 재거주(reinhabitation)를 실천하는 운동이다.
거북섬에서 재거주하는 삶의 목표는 인디언의 생활방식을 배우며 장소에 헌신하는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면서 장소에 대한 ‘원주민성’(nativeness)을 갖는 것으로, 그것은 후손에게까지 이어져 이상적 공동체를 형성해야 한다. 이 공동체에서 실현하는 자연 생태계와 인간의 이상적인 공존이야말로 환경 위험과 생태계 파괴를 막을 수 있다고 역설하는 그는 <아이들을 위하여>에서 거북섬에서의 재거주가 지속되기를 바라며 후손들에게 다음의 세 가지를 조언한다. “함께 머물고/ 꽃을 배우며/ 가벼이 떠나라.”
스나이더는 대학 교단에 서기도 했으나 그때도 여전히 노동을 했으니 교수직은 부업에 불과했다. 그 때문인지 대학에 대해 남긴 글이 거의 없고, 사제지간이니 학맥이니 학파니 학회니 학술논문집이니 하는 것과도 무관했다. 그러니 부모나 친구처럼 그도 평생 노동자로 산다.
사회주의자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사회주의에 기울어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았지만,
자본주의하의 노동이 인간을 소외시키기는커녕 소외를 피하는 방법이라고 하면서 인간 중심 사고와 생산성 추구가 문제라고 본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물론 사회주의도 생산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비판한다.
“저들은 복잡한 것들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우리를 수천명씩 사로잡아/ 일을 시킨다/ 이 마을과 길로써/ 세상은 엉망이 되어 간다.” 스나이더의 노동관도 선불교에서 말하듯이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一日不作 一日不食 일일부작 일일불식)는 것이다. 그에게 노동은 고전보다 중요하다. “무슨 소용인가, 밀턴,/ 우리의 나락한 조상,/ 과일 먹은 사람들의 실없는 이야기가.” 선불교처럼 노동을 수행으로 보는 스나이더는 나아가 돌길을 만드는 노동을 하면서 그것을 시와 같은 예술의 창작으로 본다.
“네 마음 앞에 이 단어들을/ 돌을 놓듯이 두어라/ 단단히 맞게, 손으로/ 장소에 맞게, 꼭/ 공간과 시간 안에 있는/ 마음의 몸 앞에.” 그래서 “내가 무엇을 배웠던가/ 내가 몇 가지 도구를 적절히/ 사용하는 것 외에 무엇을 배웠던가?” 낫과 괭이와 삽으로 충분한 나도 배울 것이 없다.
스나이더는 기술을 거부하지 않지만 인간이 기술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의 규모가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이 점에서 그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쓴 에른스트 슈마허의 불교적 노동관과 통한다. 원자력과 같은 거대산업은 중앙집권으로 지역성을 파괴하고 자연환경과 생명을 파괴하기에 반대한다.
스나이더는, 야만적 본능의 분출을 야성적 삶이라고 하며, 성추행을 예술의 일환이라고 오도하며, 세금으로 숲속의 호화빌라에서 공짜로 살면서 권력에 빌붙기도 하는 소위 국민시인이니 하는 자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는 성적 방종은 물론 어떤 권력과도, 문단이나 대학이라는 조직과도 철저히 거리를 두면서 오로지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아야 한다”는 원칙에 충실하게 노동하는 시인으로 산다는 점에서, 농부 시인으로 25년을 외딴섬에서 살다 죽은 야마오 산세이의 진정한 친구다.
숨지기 4년 전에 30년 지기 스나이더를 찾아간 야마오의 생생한 글은 <여기에 사는 즐거움>에 나온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고요함이다/ 산은 고요하다/ 밭은 고요하다/ 그래서 나는 고향인 도쿄를 버리고 농부가 되었다”고 노래하며 “잡담을 삼가고 침묵을 지키며 걸을 것”을 권한 야마오도 나를 들판의 고요함으로 인도한 좋은 벗이다.
▶ 박홍규: 전 영남대 교수(법학). 노동법 전공자지만, 철학에서부터 정치학, 문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관심의 폭이 넓다. 민주주의, 생태주의, 평화주의의 관점에서 150여권의 책을 쓰거나 번역했다. 주류와 다른 길을 걷고, 기성 질서를 거부했던 이단아들에 대한 얘기를 격주로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