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시선 높이의 창이 뚫려 있는 서울 중랑구 면목동의 다가구 주택. 별집 제공
여러 명품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반려동물 관련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반려동물용 밥그릇부터 옷과 액세서리는 물론 소파와 같은 가구까지 생각 이상으로 제품군이 다양하다. 이 제품들은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백만원에 판매되는데, 최근 구찌에서 출시한 반려동물용 소파는 무려 1100만원대라고 한다. 콧대 높은 명품 업계가 반려동물 시장에 진출했다는 건 그만큼 반려 인구가 많아졌다는 반증이 아닐까. 케이비(KB)경영연구소가 발표한 ‘2021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반려인은 1448만명으로 한국인 4명 중 1명이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나도 그런 펫팸족(Pet+Family) 중 한 명으로, 어쩌다 보니 네 마리의 반려견과 8년째 동고동락하고 있다. 생명을 키운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긍정적인 측면이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 특히 반려동물을 키우면 집 안 분위기가 화목해진다. 반려동물 덕에 웃음꽃이 피고, 공감할 거리가 생기면서 가족 간에 대화가 자연스럽게 오간다.
처음 반려견 입양에 대한 의견을 부모님께 내비쳤을 때 냄새에 민감한 엄마의 반대가 가장 컸다. 아빠도 “동물은 집에서 키우는 게 아니”라며 엄마의 의견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털 날리지 않게 수시로 청소하고, 아무 데나 배변 실수하지 않도록 확실하게 교육하고, 강아지 대소변도 모두 내가 치운다”는 맹세와 약속을 한 뒤에야 유기견 한 마리를 입양할 수 있었다. 네 마리의 반려견과 함께한 지 8년이 흐른 지금, 엄마는 대소변을 잘 가리는 우리 집 반려견들을 볼 때마다 신동을 둔 부모처럼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다. 무뚝뚝한 아들, 딸보다 꼬리를 흔들며 한결같이 자신을 반기는 반려견을 바라보는 아빠 눈에서는 하트가 뚝뚝 떨어진다.
개인적으로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을 추천하지만, 안타깝게도 반려동물과 동반 입주할 수 있는 집을 구하는 일이 그리 녹록지 않다. 여럿이 모여 사는 임대주택의 경우 소음과 냄새로 인한 민원이나 이웃 갈등 때문에, 내부 마감재나 가구 손상 때문에 대다수 임대인들이 반려동물을 꺼려 한다. 신축 건물일수록 그런 경향은 더욱 짙다.
물론 늘어난 반려 인구에 비해 반려동물을 키울 수 있는 집은 적지만, 어딘가에 반려동물과 함께 거주할 수 있는 집은 존재한다. 임대인이 반려동물 자체에 호의적이거나, 반려동물의 크기가 작거나, 수가 적거나, 순한 종이거나, 임차인이 원상회복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경우 반려동물 동반 입주를 허용하기도 한다. 간혹 건축가가 아예 설계 단계에서부터 반려견·반려묘의 특성을 고려해 집을 디자인하기도 하는데, 서울 면목동에서 만난 한 임대주택의 모습이 아주 인상 깊게 남아 있다.
28㎡ 남짓한 원룸에 창밖 내다보는 걸 좋아하는 고양이의 심리를 고려해 기꺼이 창을 내어준 것. 건축가는 채광과 전망이 가장 좋은 주방에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 창을 하나 내고, 고양이의 눈높이에 맞춰 바닥에 낮게 깔린 창을 하나 더 냈다.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면 자연스레 밝은 빛이 쏟아지는 주방으로 향하게 될 것 같은 이 원룸에서, 커피 물이 끓는 동안 반려묘와 함께 창문을 통해 바깥 풍경을 감상하는 집주인과 고양이의 뒷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하라 겐야의 개를 위한 집. 개를 위한 건축 웹사이트 갈무리
아틀리에 바우와우의 개를 위한 집. 개를 위한 건축 웹사이트 갈무리
반려동물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집이 많지 않은 만큼, 집을 구할 땐 반려동물을 최우선 순위에 둬야 한다. 즉 조건을 완화시킬 필요가 있다. 아무래도 신축보다는 구축이, 역세권보다는 비역세권이 반려동물에 더 열려 있는 편이다. 임대인 입장에서 보면, 역세권은 이미 임대 수요가 충분해 굳이 반려동물 사육을 허용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앞의 사례처럼 밖을 내다볼 수 있으면서도 빛이 잘 드는 창이 있는지, 근처에 산책로와 동물병원이 있는지도 필수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혹시 모를 반려동물 추락 방지를 위해 낮은 층을 선택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만약 반려동물과 함께 살 집을 새롭게 지을 계획이라면, 반려동물의 습성부터 파악해 보자. 내 가족과 반려동물 모두가 행복하게 지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공간을 디자인해야 하는지 여러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 거다. 2012년도에 세계적인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이 모여 아주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프로젝트 이름하여 ‘개를 위한 건축’(Architecture for Dogs). 디자이너 하라 겐야를 비롯해 건축가 세지마 가즈요, 네덜란드 설계사무소 ‘엠베에르데베’(MVRDV) 등이 서로 다른 견종의 개를 자신들의 건축주로 정하고, 그 건축주를 위한 개집을 선보였다. 내로라하는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지은 개집은 어떤 모습일지 어떤 방식으로 설계했을지 무척 궁금했는데, 짧은 다리와 긴 허리 탓에 의자나 계단을 오르기 힘들어하는 닥스훈트 건축주에게, 건축가는 주인과 편안하게 눈을 마주할 수 있는 완만한 경사로를 가진 집을 지어주었다. 휴먼 스케일(Human Scale)이 아닌 도그 스케일(Dog Scale)에 맞춰 설계된 진짜 ‘개를 위한 집’이었다.
장마철이라 강아지 산책을 못 시키는 날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산책 나가고 싶어 하는 녀석들을 보면 안쓰러움이 밀려온다. 요즘 같은 날엔 집 안에 반려견을 위한 산책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엠베에르데베가 에너지 넘치는 비글을 위해 만든 놀이공간 같은 집을 이참에 나도 한번 만들어볼까? 산책을 대체할 수 있는 놀이터를 작게나마 만들어봐야겠다. 다양한 견종의 특성을 고려한 기발한 작업물들이 ‘개를 위한 건축’ 웹사이트에 소개되어 있고 설계도도 다운로드가 가능하니, 여러분도 시도해 보시라.
글·사진 전명희(별집 대표)
※연재를 마칩니다. 필자와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