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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행·여가

‘꾼’들에게 물어봐~ 그윽한 국물에 정종 한잔

등록 2007-11-19 16:53수정 2007-12-03 10:19

‘센나리’
‘센나리’
[박미향기자의 삶과 맛] (23) ‘센나리’
띠리릭 메일이 왔다. ‘연예인 가씨는 사실 성질이 난폭해서 매니저들이 견디지 못하고’, ‘미시탤런트 나씨는 왕비 병으로 동료들에게 왕따를 당한다는데’ 등 이건 루머집이다. 그래서 믿거나 말거나~ 잠시 뒤 메일이 왔다. 퀴즈퀴즈! 곶감과 감이 함께 달리기를 하는데 곶감이 뒤처졌다. 너무 답답한 감이 빨리 오라고 채근했다. 그러자 곶감이 하는 말 “곧 감.” 썰렁 유머~ 로스앤젤레스로 공연을 하러 가는 비를 5자로 줄이면? 엘에이갈비. 한때 유행했던 씨엠송 패러디 “아빠, 술 드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음주 측정기 제조회사 광고다. 푸하하! 이건 유머집이다. 루머와 유머! 루머는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만 유머는 힘이 된다.

몇 달이 지나면 2008년이 된다. 늘 그렇듯 각종 송년회의 술자리가 한바탕 열린다. 사람들에게 루머로 긴장감을 고조시켰다가 유머로 풀어주자. 터지는 박장대소가 힘든 겨울을 편하게 넘기도록 도와준다. 한 잔의 정종이 그 웃음사이에 있다.

‘천 가지 일을 이룬다’는 뜻의 센나리 입구.
‘천 가지 일을 이룬다’는 뜻의 센나리 입구.
정종은 19세기 말 한 일본 상인이 부산에서 제조한 청주의 한 종류, 마사무네(正宗)의 이름이다. 그냥 시간이 흘러 보통명사가 되었다. 봄·여름은 차갑게, 겨울에는 뜨끈하게. 데울 때는 50도를 넘기지 않는 것이 좋다. 잘못하면 술의 향이 모두 날아간다. 이 맛난 술과 특별한 어묵 안주를 원 없이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 <센나리>.

천 가지 일을 이룬다는 뜻의 이 술집 이름은 주인장의 장인이 지어준 것이다. 주인장은 아내와 늘 함께 술집을 운영해온 탓에 한시도 그녀와 떨어져 본 적이 없다. 이민을 간 장인이 오라고 집요한 ‘콜’을 하지만 이 땅이 지독하게 좋아 안 간단다.


얇은 어묵은 쫄깃하고, 훈연다랑어 국물은 진해서 좋다. 여기에 따뜻한 정종 한잔이라면.
얇은 어묵은 쫄깃하고, 훈연다랑어 국물은 진해서 좋다. 여기에 따뜻한 정종 한잔이라면.

충청도가 고향인 이 두 분. “종업원을 두시지?” “가게가 좁아서 못 다녀유.”, “왜 정종을?”, “좁은 데에 맞아유.”, “왜 이쪽 일을?”, “그냥 했시유.”, “앞으로 소망은?”, “넓혀야지유.” 정말 빙그레 웃을 수밖에 없다. 주인장에 소박한 미소는 어떤 입담 센 유머도 이긴다. 솔직히 한눈에 반해버렸다. 이집 술안주, 어묵의 장점은 일단 얇아서 쫄깃하다는 것, 훈연다랑어를 넣고 진하게 끓여 국물 맛이 아주 좋다는 것이다. 맛난 거 좋아서 찾아다니는 소위 ‘음식꾼’들이 물어물어 찾아온단다. 벽은 누렇고 보기 드물게 ‘후진’ 달력이 걸려 있지만 더없이 친근하고 편하다. 혹 일본 샐러리맨 만화 <시마과장>을 아시는지. 그 만화 주인공이 늘 다니는 술집을 떼어서 이곳 시청 앞에 매달아놓은 듯하다. 이제 ‘시마부장’, ‘시마이사’로 변신한 만화 주인공처럼 아마 <센나리> 역시 천 가지를 이루고 “넓혀야지유”.

고운 피부에 넉넉한 표정의 안주인은 언제 안면마비라는 병이 지나갔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힘든 역경을 ‘사랑으로’ 이겨낸 두 사람, 어쩜 힘든 이 시대 겨울산행의 나침판을 쥐어줄지도 모른다. 정종 한잔, 어묵 한 접시 먹으면서 물어보자. 히히, 아마 이렇게 답할 것 같다. “그냥 넘어유.”

위치 서울 중구 서소문동
영업시간 10시30분~새벽1시
전화번호 02-753-2402
메뉴 정종대포 4천원 / 히레정종 5천원 / 어묵 8천원, 1만원 / 계란말이 8천원 / 꼬치1만원 / 어묵전골 1만5천원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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