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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치유하며 어려움을 극복하니 가족 관계가 더 돈독해졌어요”

등록 2020-12-16 15:37수정 2021-07-06 15:34

나눔꽃 캠페인 보도 이후
화재로 희망 잃은 준수네에게 생활비와 가족 화상 재활치료비 전달
지난해 초 화재로 살던 집을 잃은 준수네 가족은 나눔꽃 캠페인을 통해 모금액을 전달받아 생활비와 가족 화상 재활치료비로 사용했다. 가족들은 덕분에 증상이 더 악화되지 않고 잘 견딜 수 있었다고 전했다. 화상을 입은 준수 엄마의 손.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제공
지난해 초 화재로 살던 집을 잃은 준수네 가족은 나눔꽃 캠페인을 통해 모금액을 전달받아 생활비와 가족 화상 재활치료비로 사용했다. 가족들은 덕분에 증상이 더 악화되지 않고 잘 견딜 수 있었다고 전했다. 화상을 입은 준수 엄마의 손.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제공

“화마에 모든걸 잃고 가전제품도 살림살이도 아무것도 없었는데 정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가장 절망적이었던 순간을 건너는 데 큰 용기를 얻었습니다.”

지난해 초, 화재로 살던 집을 잃고 막내딸까지 잃어 절망에 빠졌던 준수(가명·9) 아빠 이영재(가명·41)씨의 목소리는 지친 기색이 있었지만 엷은 희망이 섞여 있었다. 지난해 <한겨레> 나눔꽃 캠페인을 통해 목표금액이던 1천만원이 모두 모였고 준수네 가족은 모금액을 전달받아 생활비와 가족 화상 재활치료비 등으로 사용했다. 이씨는 “가족들이 화상을 입어 에어컨이 꼭 필요했는데 전달받은 모금액으로 구입할 수 있었다. 덕분에 증상이 악화되지 않고 여름을 잘 견딜 수 있었다”며 연신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는 또 “큰불이 나는 피해를 입다 보니 화재 관련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가족들이 가스레인지를 사용할 수 없었는데 인덕션 전기레인지를 구입해 요리하고 식사할 수 있었다”며 “가족들 화상치료비로도 쓰고, 생활비·공과금 등으로 요긴하게 잘 썼다”고 설명했다.

준수네 가족은 지난해 1월12일 유난히 추웠던 겨울밤, 석유난로에 기름을 넣다 기름이 난롯불에 튀면서 발생한 화재로 큰 피해를 입었다. 집은 모두 타버렸고, 이씨는 등과 복부, 손발에 화상을 입었다. 준수도 손과 얼굴에 2∼3도 화상을 입었다. 준수의 여동생(사고 당시 6살)은 끝내 목숨을 잃었다. 사고 직후 준수네 가족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준수의 부모는 화상 후유증으로 이른바 ‘떡살’(비후성 반흔. 피부가 부풀어 오르고 가려움증과 통증 동반)이 올라와 온종일 장갑을 끼고 있어야 했다. 피부이식 수술을 받았지만 상태가 심했던 아빠 이씨의 왼손은 주먹을 쥐기 힘들 정도로 굳어 있었다. 어린 준수는 얼굴에 화상을 입어 부모님의 마음을 더욱 쓰리게 했다.

거실에 함께한 준수네 가족.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제공
거실에 함께한 준수네 가족.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제공

이런 어려움을 힘겹게 헤쳐나오던 준수네에게 올해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는 가혹했다. 지적장애 2급인 준수는 겨우 화재 피해의 기억을 딛고 학교에 다시 나갈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학교가 문을 닫았다. 외출이 힘들어지고 학교도 갈수 없게 되자 언어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준수는 짜증이 늘었다. 외출 후 집에 돌아와 손을 씻으라고 해도 말없이 고개를 숙이기 일쑤였고, 식사도 잘 하지 않는 날이 많았다. 이씨는 “그래도 학교를 다닐 땐 식사도 잘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되는 게 있었는데 코로나19로 학교를 못가면서 더욱더 소통이 힘들어지고 통제가 되지 않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코로나19 유행 중 많은 발달장애 아동 가족이 겪는 어려움이지만 가족들이 화상을 입고 경제적으로 힘든 준수네에겐 더욱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화상 치료를 계속 받아야 했지만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병원을 가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하지만 마냥 절망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준수네 가족은 다시 신발끈을 고쳐 멘다. 아버지 이씨는 지난달부터 대리운전 일을 시작했다. 이씨는 “코로나19 때문에 수입이 썩 많은 건 아니지만 계속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당장의 목표는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살아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곧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큰딸 지원(가명·18)은 반려동물을 좋아해 반려동물 미용 쪽으로 진로를 정하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화재 직후엔 도무지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지원씨였다. “학원비랑 이런 게 만만치 않더라고요”라고 했지만 큰딸의 이야기를 하는 이씨의 목소리는 어둡지 않았다.

“지난해 화재 피해를 입은 직후에는 서로 상처도 있고 해서 의사소통도 힘들고 서먹한 시간이 많았는데 어려움을 하나둘씩 지나오면서 가족 간 관계도 좋아지고 웃음도 늘었습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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