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율주행 택시회사인 ‘크루즈’의 카일 보그트 최고경영자(CEO)가 20일(한국시각) 사임했다. 지난달 미 샌프란시스코 시내의 한 교차로에서 한 여성이 크루즈 로봇택시에 깔린 뒤 한 달여 만에 결국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전 세계 자동차 회사들이 앞다퉈 전기차와 자율주행에 대한 투자를 늘려가는 가운데 한편에선 완전 자율주행은 아직 이르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이날 “보그트 최고경영자의 사임은 테크 산업에서 거침없이 나아가던 자율주행 자동차 챔피언 중 한 명의 추락”이라고 전했다. 제너럴모터스(GM·지엠)가 2016년 10억달러를 들여 인수한 크루즈는 2022년 6월 안전요원이 탑승하지 않은 완전 무인 로봇택시의 유료 운행을 시작했지만, 지난달 사고 이후 운행중단 명령(10월24일)을 받았다.
크루즈와 함께 자율주행 연구 선두주자로 꼽히던 웨이모도 지난달 소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했다. 이미 200명을 해고한 상황에서 올해 들어 3번째 인력 감축이다. 구글에서 분사한 자율주행 회사인 웨이모도 자율주행 기술 개발 속도를 점검하고 있는 셈이다.
크루즈처럼 완전 자율주행 수준은 아니지만 기술 개발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 기아는 새 전기차 이브이(EV)9 지티(GT) 트림에 넣기로 했던 자율주행 레벨3 옵션 ‘HDP’(Highway Driving Pilot)의 올해 내 적용을 연기했다. 정밀지도와 차 내·외부에 장착된 레이더, 라이다, 카메라 등으로 길과 주변 상황을 인지해 달리는 레벨3 자율주행 기능이었다. 이 옵션이 정상 작동하면 시속 80㎞까지 운전자가 운전대를 잡지 않아도 주행이 된다. 그러나 이미 이 옵션을 포함하기로 하고 차를 산 고객에게는 750만원가량을 환불하기로 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업계 관계자는 “레벨 0~2까지의 사고 책임은 운전자에게 있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자율주행 수준인 레벨3부터는 자동차 회사도 사고 책임을 일정 부분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정부와 완성차 회사와의 합의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장 손에 잡히는 결과가 없더라도 투자는 계속되고 있다. 최근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는 최신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에프에스디(FSD)의 12번째 버전을 공개한다고 밝혔다. 중국 자동차 업체들은 레벨3 자율주행이 가능한 ‘모빌아이 슈퍼비전’이 적용된 차량을 이미 10만대가량 도로 위에 내놓았다. 볼보의 전기차 브랜드 폴스타는 운전자가 고속도로에서 전방을 주시하지 않아도 자율주행이 가능하도록 하는 ‘모빌아이 쇼퍼’를 최초로 탑재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차그룹도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20일 현대자동차·기아·현대모비스의 올해 3분기 보고서를 보면, 현대차그룹 3사가 자율주행 기술 확보를 위해 투자한 자회사 ‘모셔널’의 손실은 올해 9월 말까지 6008억3100만원에 이른다. 설립 첫해인 2020년 2315억원, 2021년 5162억원, 2022년 7517억원에 이어 손실이 커지고 있지만 자율주행을 향한 투자를 늦추고 있지 않은 것이다. 자율주행 등 소프트웨어 기술력 확보를 위해 현대차가 1조5천억원가량 투자한 ‘포티투닷’ 역시 아직은 수면 아래서 기술력 달금질부터 하는 단계를 지나고 있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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