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방한한 쌍용자동차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파완 쿠마르 고엔카 마힌드라 사장은 하루 종일 분주히 움직였다. 오전엔 경기 평택에서 쌍용차 노사와 간담회를, 오후엔 서울 여의도로 넘어와 주채권은행 산업은행을 찾았다. 17일엔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간다. 쌍용차의 대주주인 마힌드라 최고경영자(CE0)가 예정에 없던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데는 쌍용차의 극심한 경영난이 배경이다. 고엔카 사장은 산은 쪽에 대주주 투자 의지와 쌍용차 경영쇄신안 등을 언급한 뒤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산은과의 밀고 당기는 협상이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최근 쌍용차는 11분기 연속 적자를 냈다. 시장 전문가들은 지난해 말까지 결산하면 12분기 연속 적자로 추정한다. 2009년 법정관리 후 2011년 인도 마힌드라그룹에 인수된 쌍용차는 2016년 마힌드라와 합작으로 만든 소형 스포츠실용차(SUV) ‘티볼리’ 선전에 힘입어 9년 만에 ‘흑자’를 내는 등 반짝 회복세를 탔다. 그러나 이듬해 1분기에 155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다시 내리막을 타기 시작했다. 경쟁 차종의 잇따른 출시로 입지가 좁아져서였다. 현대차는 ‘코나’에 이어 ‘베뉴’, 기아차는 ‘스토닉’과 ‘셀토스’ 등을 내놓고 티볼리(소형 에스유브이) 시장을 잠식해 나갔다. 쌍용차의 주력 모델 대형 에스유브이 ‘렉스턴’도 현대차의 ‘팰리세이드’와 한국지엠(GM)이 미국에서 들여온 ‘트래버스’ 위협 등에 직면해 있다.
쌍용차는 한때 ‘에스유브이 명가’라는 자부심이 컸다. 소비자들의 에스유브이 선호가 늘어난 상황에서 다시 위기를 맞은 것은 역설적이다. 지금까지 쌍용차는 차체가 탄탄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대의 에스유브이로 시장을 공략해왔지만 경쟁사들이 가성비 높은 신차를 잇달아 출시하면서 강점이 줄었다. 쌍용차가 겪고 있는 위기는 수요는 줄고 경쟁은 더 격화되는 상황에서 판매가 부진한 게 표면적인 이유다. 무엇보다 경쟁력 있는 신차를 내놓지 못한 게 근본 원인으로 꼽힌다.
쌍용차의 발목을 잡은 또 하나는 수출 부진이다. 쌍용차는 지난해 내수(10만7789대)와 수출(2만5010대·반조립 제외)을 합쳐 13만2799대를 팔았다. 판매량은 전년에 견줘 5.6% 줄었다. 3년 전인 2016년에 견줘 내수는 큰 변화가 없으나 수출은 반 토막 났다. 3년 연속 적자는 이런 수출 부진과 맥을 같이한다. 미국의 경제 제재로 이란 등으로의 수출길이 막혔고 서유럽에선 엄격한 환경 규제로 디젤 위주의 라인업을 갖춘 쌍용차로선 버티기 힘들었다. 내수 판매도 에스유브이 시장이 크게 성장한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역성장한 것으로 봐야 한다. 이 차종에 강점을 지닌 쌍용차로선 뼈아픈 대목이다.
신차 개발을 위한 적기 투자가 뒤따르지 않은 것도 경쟁력 악화의 핵심 요인이다. 마힌드라는 2011년 쌍용차 지분 72.85%를 5500억원에 인수한 뒤 두차례 유상증자를 통해 1300억원을 투자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마힌드라는 쌍용차의 생산에 필요한 시설·운영 자금 정도만 준 거고, 연구개발(R&D) 쪽에선 거의 투자가 없었다”며 “혁신기반이 약화하다 보니 경쟁력 있는 모델이 나오지 않고 외국계로 자꾸 팔려나가니까 소비자들도 이탈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2009년 이른바 ‘쌍용차 사태’ 이후 또다시 위기에 직면한 쌍용차는 신차 없이 견뎌야 하는 올해 최대 고비를 맞을 전망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쌍용차의 신차 부재는 판매 부진과 실적 악화라는 악순환을 불렀다. 쌍용차는 지난해 1분기 278억원 적자에서 2분기 491억원, 3분기엔 1052억까지 적자가 불어났다. 회사 쪽은 실적 악화 이유로 “판매가 줄어들고 있고 에스유브이 시장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판매비용이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쌍용차의 부채 비율은 285%이다. 1년 전보다 80%포인트나 뛰어올랐다. 당장 은행권에서 빌린 차입금 막기에도 허덕일 정도로 유동 자금도 넉넉하지 않다.
지난해 12월24일 쌍용자동차는 복직 예정자 46명에게 무기한 휴직을 통보했다. ‘경영상 이유’로 해고한 지 10년 만에 복직을 앞둔 이들에게 동의도 기한도 없는 일방적인 휴직 연장 통보였다. 회사 쪽은 이번에도 ‘경영상 이유’를 내세운다. 쌍용차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은 사실이지만 위기는 최근 발생한 것이 아니라 지난 10여년 동안 경영 실패로 누적된 결과라는 점에서 복직 예정자들의 반발도 크다.
쌍용차 쪽은 “경영 정상화를 통해 이른 시일에 복직자들의 부서 배치를 완료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지만, 경영 사정의 호전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 그 시점이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다. 복직 예정자들이 소속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의 김득중 지부장은 “위기에 공감하지만 10년간 어려움을 견뎌왔던 복직 예정자들에게 경영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다”고 했다.
홍대선 선임기자
hongd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