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백화점 판교점에 문을 연 발렌타인 팝업스토어. 페르노리카코리아 제공
20대 후반 직장인 조아무개는 요즘 최고 인기 위스키인 발베니를 구하러 대형마트 창고형 매장을 방문했다가 ‘솔드 아웃(매진)’이라는 안내판을 보고 실망했다. 하지만 편의점 앱을 통해 ‘단 하루 오픈런 행사’를 한다는 안내를 받고, 가족까지 동원해 이른바 ‘오픈런’(매장이 열리는 순간 바로 입장)을 벌인 끝에 ‘발베니 12년산 더블우드’를 손에 넣었다. 조씨는 “고급스러운 패키징에 맛과 가격도 훌륭해 2030 사이에 핫한 술이라 기분이 좋았다”며 “누군가는 젊은층이 위스키를 즐기는 것에 대해 ‘허세’라고 보던데, 싸고 빨리 취하는 술 대신 좋은 술 한 잔을 선택하는 건 ‘취향’이다”라고 말했다.
전통적인 소주·맥주에서 와인으로 옮겨 갔던 주류 트렌드가 이제 위스키에 다다르고 있다. ‘아재 술’이라 불리던 위스키가 20대와 30대를 중심으로 다시 인기를 끌면서 올해 1분기 위스키 수입량도 최고치를 기록했다.
24일 관세청 무역통계를 보면, 올해 1분기 스카치, 버번 등 위스키류 수입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78.2%가 늘어난 8443톤에 달했다. 이 수치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0년 이후 역대 1분기 기준 최고치고, 전체 분기 기준으로도 바로 직전 분기인 지난해 4분기의 8625톤에 이어 두 번째다. 최근 들어 위스키 수입량은 급증하는 추세다. 지난해 1분기엔 4738톤, 2분기엔 6451톤, 3분기엔 7224톤이었다.
발렌타인 40년 마스터클래스 컬렉션. 페르노리카코리아 제공
위스키는 과거 ‘중장년층’의 술로 불렸다. 고급 술집에서 마시는 ‘접대용’이라는 이미지도 강했다. 주류 업계 한 관계자는 “2008년 금융위기와 2016년 김영란법 시행으로 인한 기업 접대 위축과 2018년 주 52시간으로 인한 회식 감소 등은 위스키 시장을 크게 위축시켰다”며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혼술 문화’가 정착하면서 엠제트 사이에 ‘부어라 마셔라’보단 ‘희소가치가 있는 한 잔’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며 반전이 일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위스키 사랑은 2030세대가 주도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올해 1~3월 위스키 매출 신장률을 65%에 달했는데, 구매 고객의 절반 이상이 2030세대였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발베니, 맥켈란 등 한 증류소에서 나온 맥아 원료만으로 제조한 싱글몰트 위스키는 대중적인 블렌디드 위스키보다 인기가 훨씬 많아 품귀현상이 빚어지고 있다”며 “개성과 희소가치를 중시하는 엠제트 세대를 중심으로 점차 대중화의 길을 걷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발베니 16년 프렌치 오크 캐스크. 발베니 제공
이런 추세에 맞춰 주류·유통업계는 신제품을 잇달아 출시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강남점에 있는 ‘버건디&’ 매장에서 오는 29일부터 한국 최초 싱글몰트 위스키 ‘기원’의 두 번째 제품인 ‘기원배치 2 디스틸러리 에디션’을 130병 한정으로 선보인다. 앞서 발베니 역시 ‘발베니 16년 프렌치 오크 캐스크’ 제품을 국내에 정식 출시했으며, 페르노리카코리아 역시 ‘발렌타인 40년 마스터클래스 컬렉션’ 출시 소식을 알렸다. 골든블루 역시 타이완 싱글몰트 위스키 ‘카발란’ 2종을 추가로 선보였다. 위스키 팝업스토어도 인기다. 페르노리카코리아는 현대백화점과 손잡고 판교점에 발렌타인 팝업 스토어를 열고 30일까지 시음행사 등을 진행한다.
편의점업계는 위스키에 탄산수와 레몬을 넣은 ‘하이볼’ 신제품을 잇따라 출시하며 젊은층 공략에 나섰다. 편의점 씨유는 최근 인기 작가 청신과 협업해 ‘청신 레몬 하이볼’을 내놨고, 세븐일레븐도 위스키 원액이 든 몰트위스키하이볼자몽·라임을 선보였다. 이미트24 역시 카브루 부르어리의 위스키를 넣은 레디 클래식 하이볼과 레디 핑크 하이볼을 출시했다. 편의점 씨유 관계자는 “하이볼 역시 구매 고객 연령대를 집계한 결과, 20대가 46.0%, 30대가 31.7%로 2030 비중이 70%를 넘었다”며 “하이볼은 위스키에 견줘 상대적으로 저렴한 데다 위스키의 양에 따라 다양한 가격대와 맛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엠제트 세대의 ‘믹솔로지’ 유행과 맞물려 편의점 주류 판도를 바꾸고 있다”고 전했다.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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