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의 탄소국경세는 국내 철강업계의 ‘이에스지(ESG) 경영’ 시험대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모습. 현대제철 제공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올해 2분기에 역대 최대 규모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포스코는 연결기준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1212% 늘어난 2조2006억원을 기록했다. 분기 실적을 공개한 2006년 이래 최대 규모다. 현대제철은 전년 동기 대비 무려 3795% 증가한 5453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세계 경기 회복으로 철강 수요가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면서 철강재 가격이 크게 오른 덕이다.
하지만 철강업계는 웃지 못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이 최근 도입 일정을 공개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탄소국경세) 때문이다. 탄소국경세는 유럽연합 내 생산 제품보다 탄소배출이 많은 수입품에 대해 탄소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다. 철강제품을 수입하는 현지 수입업체가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에 따른 비용을 내야 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국내 철강제품을 수입하는 유럽 수입업체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 연간 최대 339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탄소배출량을 줄이지 못하면 수출로 벌어들인 돈의 상당 부분을 탄소국경세로 내야 한다.
전경련은 7월27일 유럽연합에 탄소국경세 적용 면제 대상에 한국이 포함돼야 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전달했다. 한국은 유럽연합과 비슷한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탄소국경세까지 적용되면 이중과세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유럽연합 집행위는 앞서 7월14일 탄소국경세 도입 계획을 발표하면서 유럽과 같은 탄소가격 제도를 시행하는 국가는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국내 탄소배출권 거래제는 유럽연합과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탄소국경세를 피해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국내 배출권거래제는 무상할당 비중이 90%로 높다. 반면 유럽연합은 43% 수준이다. 유럽연합 집행위는 탄소국경세를 추진하는 이유로 무상할당 문제를 들고 있다. 일정량의 탄소배출권을 무상으로 할당하는 관행이 기업들이 친환경 투자에 소홀하도록 만들었다고 본다. 이런 이유로 유럽연합은 2026년부터 무상할당량을 매년 10%씩 줄여 2035년에는 완전히 없애는 것을 목표로 내세웠다.
탄소국경세는 국내 철강업계의 ‘이에스지(ESG) 경영’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탄소국경세를 많이 내는 기업은 이에스지 평가에서도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미 자본시장에선 이에스지 평가가 나쁜 기업에 돈을 빌려주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포스코, 현대제철 등 국내 철강업체는 대책 마련에 애쓰고 있다. 가장 확실한 대책은 수소환원제철 공법을 도입하는 것이다. 철광석을 녹이는 연료로 코크스 대신 수소를 사용하면 탄소배출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공법은 아직 상용화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업계에서는 30년 정도의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본다. 또 수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전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발전소의 ‘탈탄소’도 필수적이다. 이는 개별 기업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김학동 포스코 사장은 7월7일 국회와 전경련이 함께 마련한 이에스지 포럼에서 “철강업계의 탄소중립을 포함한 친환경 경영에 약 68조5천억원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개별 기업이 감내하기에는 버겁다”며 정부의 지원을 요청했다.
이춘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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