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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취업’이란 무엇인가? 무보수·비상근·미등기 이재용이 불러온 질문

등록 2021-08-20 18:18수정 2021-08-20 21:47

고 이건희 회장 미래 사업 챙길 때도 비상근·무보수·미등기

취업자라 하면 회사에 출근하거나 자기 사업을 하면서 주5일 이상 일하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지만, 국제노동기구(ILO) 정의에 따른 취업자는 좀 다르다. ‘근로 형태를 가리지 않고 수입을 목적으로 1주 동안 1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으로 돼 있다. 통계청의 고용 통계 기준도 이와 같다.

이런 기준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취업자일까, 아닐까? 일하는 시간으로만 보면 취업자일 것 같다. 법무부 결정에 따라 지난 13일 가석방으로 풀려난 이 부회장은 곧바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을 찾았다. 알려진 대로 핵심 사업부 사장 등 경영진과 만나 현안을 보고받고 경영 상황까지 확인했다면 1시간으로는 많이 모자랐을 터이다.

취업자 정의 속에는 이와 달리볼 여지가 들어 있다. ‘수입을 목적으로’라는 대목이다. 현재 미등기·비상근 상태인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재판을 받기 시작한 2017년 2월부터 지금까지 ‘무보수’로 일했다. 통계청 기준에 따른다면 취업 상태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특정경제범죄법상 취업제한 위반 논란에 얽혀 있는 이 부회장과 삼성전자에는 구명줄로 여겨질 법하다. 취업 상태가 아니라면 규정 위반일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이런 논리로 비판을 피해간 전례도 있다.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이다. 최 회장은 2014년 횡령 유죄 판결로 취업제한 대상에 오르고도 미등기 ‘무보수’라는 이유로 회장직을 유지했다.

통계청의 취업자 분류에는 두 가지 범주가 더 있다. 직장을 갖고 있음에도 조사 대상 기간 중 특정한 사유로 일시 휴직 중인 상태가 그 하나다. 휴직 사유 해소 뒤엔 일터로 복귀할 것이기에 취업자로 분류한다. 또 하나가 무급으로 1주일에 18시간 이상 가족의 일을 돕는 경우다. 이 부회장이 여기에 해당하고 않고를 떠나 무보수가 곧 미취업은 아닌 셈이다.

경제개혁연대는 특정경제범죄법상 관련 규정의 취지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취업제한 규정은 경제범죄 재발 가능성을 막고 범죄 행위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 기업체에 일정 기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해 기업체를 보호하는 것이란 설명이다. 이는 올해 2월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관련 재판 때 서울행정법원이 판례로 제시한 바 있다. 이 부회장이 가석방 당일 삼성전자 본사에 출근해 경영진을 만나고 현안을 논의한 것은 명백한 규정 위반이라고 경제개혁연대에서 주장하는 근거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지난 18일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무보수, 미등기임원, 비상근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취업 여부 판단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본다”며 “(이재용 부회장이) 무보수, 비상근 상태로 일상적인 경영 참여를 하는 것은 취업제한의 범위 내에 있다”고 말했다.

박 장관이 이 부회장에 대해 취업제한 규정 위반 상태가 아니라고 밝히기 직전까지만 해도 법무부 쪽의 태도는 모호했다. 이 부회장의 취업 여부와 관련한 <한겨레>의 질문에 법무부 대변인실은 “앞으로 이 부회장 측이 취업제한 해제 신청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 정도까지 취업이다, 아니다라고 우리가 나서서 기준을 말하기는 어렵다”고 답했다. 박 장관이 문제의 발언을 한 바로 당일이었다. 취업 여부에 대해 법무부 쪽도 명확한 가름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셈이다. 법무부는 앞서 지난 2월 이 부회장을 취업제한 대상자라 못 박고 회사 쪽에 통보한 바 있다. 이 부회장이 올해 1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데 따른 조처였다.

흥미로운 점은 박 장관이 제시한 세가지 조건(무보수, 미등기임원, 비상근)은 고 이건희 회장에게도 딱 들어맞는다는 점이다. 고 이 회장은 비자금 사건으로 2008년 삼성 특검의 중간 수사 결과가 나오면서 ‘미등기 회장’으로 신분을 바꾼 뒤 줄곧 미등기 회장으로 ‘재직’했다. 대통령 특별 사면으로 경영에 복귀한 뒤 ‘젊은 조직론’ ‘신수종 사업 발굴’ 같은 주요 경영 현안에 대한 언급을 하던 시기에도 무보수-미등기임원이었으며, 출근은 간헐적으로 한 터라 출근 때 마다 취재진이 몰리는 현상이 반복된 바 있다. 해당 기간 동안 이 회장은 보수를 받지 않았다. 박 장관 해석에 따르면 당시 고 이 회장은 취업자 신분이 아니었던 셈이다.

김영배 선임기자, 옥기원 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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