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광복절을 앞둔 지난 13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가석방되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법무부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특혜성 가석방’에 이어 무보수·미등기 임원으로 사실상 경영에 참여할 수 길을 열어줘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고 이건희 회장의 경우에도 삼성 비자금 사건 뒤 ‘미등기 회장' 신분으로 줄곧 경영에 관여한 전례에 비춰 법무부의 조처가 현행법상 취업제한의 근본 취지에 어긋났다는 비판이 나온다.
법무부는 20일 ‘취업제한 관련 참고자료’를 내어 이재용 부회장이 부회장 직함을 가지고 있지만 미등기 임원이라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상 취업제한을 위반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회사로부터 형식적인 직책을 부여받은 미등기 임원인 이 부회장이 상법상 이사로서 직무권한을 행사할 수 없어 ‘취업'으로 볼 수 없다는 설명이다.
이 부회장은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씨에게 86억8000여만원의 삼성전자 회사자금을 횡령해 뇌물로 전달한 혐의로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특경가법) 형 집행이 종료되는 날부터 5년간 취업제한 규정을 받는다. 특경가법상 5억원 이상 횡령·배임 등의 죄를 저지른 이가 범죄와 연관된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기 위한 규정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13일 가석방 직후부터 경영진에게 현안 보고를 받는 등 사실상 경영활동에 나선 상황이다. 취업제한을 위반했다는 논란이 일자, 박범계 장관은 “무보수·미등기 임원은 취업으로 보기 어렵다”며 이 부회장이 미등기 임원으로 경영에 관여하는 상황에 면죄부를 주는 듯한 발언을 했다.
흥미로운 점은 박 장관이 제시한 취업제한의 조건(무보수, 미등기임원, 비상근)은 과거에 고 이건희 회장이 경영에 관여했던 방식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과거 이 회장은 비자금 사건 때 삼성 특검의 중간 수사결과가 나오자 ‘미등기 회장’으로 신분을 바꾼 뒤 줄곧 미등기 회장으로 ‘재직’했다. 대통령 특별 사면으로 경영에 복귀한 뒤 ‘젊은 조직론’ ‘신수종 사업 발굴’ 같은 주요 경영 현안에 대해 언급을 하던 시기에도 무보수-미등기 임원이었으며, 출근은 간헐적으로 한 터라 출근 때마다 취재진이 몰리는 현상이 반복된 바 있다. 해당 기간 이 회장은 보수를 받지 않았다. 박 장관 해석에 따르면 당시 고 이 회장은 취업자 신분이 아니었던 셈이다.
이 부회장도 아버지인 고 이건희 회장이 했던 방식으로 경영에 관여할 가능성이 크다. 박 장관이 직접 무보수, 미등기 임원은 취업제한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기준까지 제시해준 탓에 ‘미등기 재벌총수’라는 비판에 대한 부담도 줄어들었다. 법무부는 “이 부회장의 취업 승인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미등기 이사로 경영에 관여하면 되기 때문에 굳이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취업 승인을 요청할 필요가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더구나 이 부회장은 현재 부당합병·회계부정 사건과 프로포폴 불법 투약 혐의로 각각 다른 재판을 받고 있어 재판이 끝날 때까진 공식 등기 이사에 부임할 가능성도 낮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례와 같은 ‘법무부의 묵인’을 두고 삼성과 같은 국내 재벌 대기업의 경영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조처라는 비판이 나온다. 노종화 변호사(경제개혁연대 실행위원)는 “삼성의 경영 환경은 이사회가 최고 의사결정 기구가 아니라 재벌 총수가 기업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이라며 “법무부가 현행법상 취업제한의 근본 취지와 달리 법리상 이상적인 부분만을 보고 취업의 범위를 잘못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이 부회장의 가석방 특혜와 경영 참여의 길을 열어준 박범계 장관의 ‘사퇴'까지 요구하고 나선 상황이다. 옥기원 김경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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