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이냐 부의소득세냐, 아니면 최저소득보장제냐?” 기본소득이 2022년 대선의 화두로 부상하면서 다양한 소득보장체계를 둘러싸고 진영 간, 유력 후보 간 공방이 갈수록 뜨겁다.
더불어민주당의 유력후보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기본소득을 대표공약으로 내놨다. 하지만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기본소득이 보편적 복지라는 것은 오해”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야권의 유력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부의소득세를 공약으로 내걸 가능성이 크다. 부의소득세를 주장하는 ‘경제정책 어젠더 2022’의 멤버인 이준석 전 국무조정실장을 캠프로 영입했다. 또 다른 대선주자인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과 잠재적 후보인 오세훈 서울시장은 부의소득세를 가구단위로 적용하는 ‘안심소득’을 지지한다. 반면 일부 전문가 그룹은 기본소득과 부의소득세의 한계를 지적하며, 현행 제도를 보완한 최저소득보장제를 제안했다.
문재인 정부가 포용적 복지국가를 표방하고 지속해서 지원을 확대하면서 소득분배지표는 2017~2019년 3년 연속 개선됐다. 그러나 코로나 위기로 불평등이 다시 심화하고, 급속한 고령화로 인한 미래 불확실성에 대비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현 복지제도는 사각지대가 너무 넓고, 소득보장도 미흡해 ‘빈곤의 공포가 없는 세상’의 구현과는 거리가 있다. 이상적인 것은 소득지원이 필요한 사람을 모두 포괄하면서, 적절한 보장수준을 구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재정의 지속가능성, 조세저항, 기존 복지 축소에 대한 반발, 근로의욕 저하 위험성 등 다양한 변수도 살펴야 한다. 이상에 치우친 담론 논쟁이나 선거를 의식한 정치논리에 휘둘리면 자칫 낭패를 볼 수 있다. 문재인 정부를 줄곧 괴롭혀온 ‘최저임금 과속’ 논란이 본보기다. 무엇보다 국민적 공감대를 이루려면 맹목적 진영논리를 뛰어넘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위원장 김유선)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원장 이봉현)이 공동으로 ‘소득보장체계 혁신방안 정책토론회’를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열었다. 이재명 경기지사 선거캠프에서 활동하는 유종성 가천대 교수가 기본소득 방안을, ‘경제정책 아젠더 2022’ 멤버인 김낙회 전 관세청장이 부의소득세 방안을,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이 최저소득보장제 방안을 발표했다.
■ 기본소득=모든 사람에게 소득·재산과 상관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소득으로 보편성이 특징이다. 이재명 지사는 차기정부 임기 안에 전 국민에 연 100만원(월 8만원)의 기본소득을 지역화폐로 지급하고, 700만 청년층(19~29살)에 연 100만원을 추가 지급하는 공약을 발표했다.
유종성 교수는 기본소득의 필요성으로 토지·공기·물이나 축적된 지식·정보 등과 같은 공유부에 대한 평등한 권리, 실질적 자유 보장, 불평등 심화에 따른 소득재분배 필요성,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일자리 불안, 기존 사회보장의 한계를 꼽았다. 또 “동일한 세율로 소득세를 걷어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중간층인 평균소득자 미만까지 수혜층을 넓힐 수 있다”며 소득재분배 효과를 강조했다.
막대한 재원 부담은 기본소득의 아킬레스건이다. 이 지사의 공약 이행에 필요한 예산만 52조원이다. 현행 저소득층 생계급여 보장과 유사한 월 50만원(무소득 1인가구 기준·연 600만원)을 지급하는 데는 무려 312조원이 필요하다. 유 교수는 “재정절감 25조원, 조세감면 축소 25조원, 토지보유세(30~50조원)와 탄소세(30~60조원) 신설을 합치면 110조원을 조달할 수 있다”면서 “탄소중립을 위한 탄소세, 부동산 안정을 위한 토지보유세로 사회경제개혁도 촉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증세에 대한 저항은 스위스와 같은 탄소배당(탄소세를 재원으로 하는 기본소득)과 토지배당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유 교수는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지급한다(무임승차론)거나 근로유인을 저해한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가사·돌봄 등 무급노동자에 대한 보상 효과가 있고, 직접세 납부 의무가 수반되어 무임승차가 방지된다”면서 “가난을 증명할 필요가 없고, 소득이 늘어도 지원이 줄지 않아 근로유인 저해나 소득신고 회피 같은 부작용이 없다”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높은 수준의 기본소득은 기존 복지의 축소 없이는 불가능하다”면서 “낮은 수준에서 기본소득을 도입하고 기존 사회보장제도의 개혁을 병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 부의소득세=미국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이 처음 제기한 부의소득세는 저소득층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고, 일정 소득 이상 계층에는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이다. ‘경제정책 어젠더 2022’ 멤버인 김낙회 전 관세청장은 중위소득의 60%(연 1200만원) 이하 저소득층에게 1200만원에 미달하는 금액의 50%를 지원하고, 1200만원을 초과하는 사람에게는 기존 소득세율을 부과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중위소득의 30% 이하만 혜택을 받고 있는 현 생계급여보다 적용범위가 넓다. 대신 저소득층을 위한 공적부조(생계급여)와 사회수당(아동수당·기초연금), 근로장려세제 등 현금성 지원은 모두 없앤다.
이 방안에 따르면 연간 소득이 0인 사람은 1200만원의 절반인 600만원을 받게 된다. 소득이 1200만원인 사람은 지원을 받거나 세금으로 낼 게 없다. 소요재원은 133조~173조원 정도이고, 재원조달은 소득세제 개편(36조원), 세출예산 구조조정(97조원)으로 충당한다는 구상이다.
김 전 청장은 “현행 복지제도는 중복 지급되거나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방식이 복잡해 사회적 비용이 크다”면서 “우리의 복지지출은 선진국보다 적지만 증가속도가 빨라 걱정인데, 부의소득세 도입으로 현금성 복지지원제도를 단순화하면 지출 확대 요구를 억제하기 쉽다”고 강조했다.
■ 최저소득보장제=오건호 위원장은 기본소득과 부의소득세를 비판하면서, 중위소득(연 2000만원) 이하 하위소득 가구에 2000만원에 미달하는 금액의 40%를 지원하는 대안을 내놨다. 부의소득세와 비교하면, 지원대상을 중위소득 60% 이하에서 100% 이하로 넓히고, 소득 기준에 못미치는 부분에 대한 지원비율을 50%에서 40%로 낮춘 게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부의소득세가 기존 현금성 복지지원을 모두 폐지하는 것과 달리 생계급여·근로장려세제 등 저소득계층을 위한 소득보장만 통합하고, 아동수당 등 사회수당은 유지하는 것이다. 오 위원장은 “복지 사각지대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고, 제도 수용성도 높아지며, 근로동기 유지에도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오 위원장은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 안에 대해 “월 8만원은 현 생계급여(무소득 1인가구 월 55만원)에도 못미치는 ‘소액’이어서, 기존 현금급여와 공존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부의소득세는 지원대상을 중위소득의 60%로 넓혔지만, 중위소득 미달액의 50%만 지원하기 때문에 현 생계급여와 다르지 않다”면서 “지나친 복지구조조정으로 하위계층에 대한 총 지원규모가 줄어들 위험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토론자로 나선 홍장표 한국개발연구원 원장은 최저소득보장제와 근로장려세제를 병행하는 대안을 내놨다. 저소득층 가구에 대한 차등지원은 오 위원장과 같지만, 현행 생계급여와 근로장려세제를 확대·강화하는 게 다르다. 홍 원장은 “재정의 시한폭탄이 다가오고 있어 제한된 재원을 효과적으로 써야 한다”면서 “소득보장제도는 위험에 처한 모든 국민을 두텁게 보호하는 보편적 소득안전망으로 개편하되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jskwak@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