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 고위공무원이 재직 중 민간 기관에 국가 사무 위탁을 직접 결정해놓고, 퇴직한 뒤 해당 단체의 대표자로 재취업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민간 기관은 통계청이 사실상 고정적으로 국가 사무를 위탁해온 기관으로 10년 넘게 통계청 퇴직자가 연달아 대표자로 취임해왔다.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11일 통계청에서 제출받은 ‘통계 사무 위탁심의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지난 2018년10월30일 통계청은 한국통계진흥원과 한국통계정보원에 ‘통계발전지원 사업’과 ‘통계정보화 사업’을 위탁하기로 결정했다. 이날 ‘수탁기관 지정심의회의’의 위원장으로 참석한 당시 통계청 차장 최아무개씨는 그로부터 1년 뒤 2019년11월 퇴직한 뒤 곧바로 한국통계진흥원의 원장으로 취임했다. 이날 회의에서 심의위원으로 참석했던 당시 통계데이터허브국장이었던 은아무개씨도 지난해 12월에 통계교육원장직을 마지막으로 퇴직한 뒤 바로 한국통계정보원 원장으로 취임했다. 이들 두 기관은 2018년10월에 위탁받은 사업을 지금까지 수행하고 있다.
앞서 통계청은 이들 민간 기관 2곳과 집중적으로 수의계약을 맺고 통계청 출신이 연달아 두 기관의 대표를 맡으면서, 국정감사 등에서 ‘전관예우’가 아니냐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통계청은 최근 10년 동안(2012∼2021년5월) 통계진흥원과는 약 300억원, 통계정보원과는 약 190억원 규모의 사업을 맺어왔다. 이런 지적 탓에 통계청은 ‘위탁심의위원회’를 만들었지만, 이 회의체에 통계청 간부가 들어가 민간 기관에 사업을 맡기고 이후 이 기관에 재취업하는 경로는 유지된 셈이다.
통계청은 해당 기관들이 ‘취업심사대상기관’이 아니라 괜찮다는 태도다. 인사혁신처는 퇴직공직자와 업체 간의 유착관계를 차단하기 위해 취업심사대상기관을 지정하고, 이곳에 재취업하려는 퇴직공직자는 취업승인을 받도록 하는 ‘퇴직공직자 취업제한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공무원윤리법상 취업심사를 통과하거나 피했다고 해서 퇴직공직자의 재취업이 무제한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퇴직공직자의 부정취업 또는 부정청탁을 막기 위한 또 다른 제도인 ‘퇴직공직자 행위제한제도’는 고위공직자가 재직 전에 △재정보조 △인허가 △용역 또는 물품구매의 계약 등의 업무를 ‘직접 처리’한 경우에는 해당 업무를 퇴직 후 영구히 취급할 수 없도록 정하고 있다.
김영진 의원은 “통계청 재직 중에 위탁심의위원회의 위원으로서 사업 수탁기관을 지정해놓고 퇴직 후 그 기관으로 자리를 옮겨 수탁 사업을 수행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처사”라며 “수탁기관이 취업심사 대상기관이 아니라는 허점을 이용할 소지가 큰 만큼 이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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