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지배구조 개선 사안을 재계 안팎의 관심권으로 다시 끌어들인 것은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다.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 추진의 바탕을 이루는 이재용 부회장의
4세 승계 포기 공개 선언 또한 준감위 활동과 무관치 않았다.
삼성 준감위는 지난달 30일 ‘2020 연간 보고서’를 통해 “삼성 관계사의 티에프(TF)가 추진하는 외부 컨설팅 용역 결과 등을 검토해 지배구조 관련 개선 활동을 하겠다”고 밝혔다. ‘삼성 지배구조 개선’을 향후 활동의 중심으로 내걸고 적극 개입하겠다는 뜻이다. 이는 지난해 5월 이 부회장의 4세 승계 포기 선언 뒤 반짝 관심을 끌었다가 물밑에 가라앉아 있던 삼성 지배구조 개선 사안을 다시 띄워 올렸다. 지난해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맡겨 진행 중인 지배구조 개편안 마련 역시 준감위의 요청을 삼성 쪽에서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추진됐다.
보스턴컨설팅의 초안조차 나와 있지 않은 마당이라 개편안의 방향은 물론, 취급 범위도 아직은 가늠하기 어렵지만,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발을 담그고 있는 준감위 쪽의 분위기에서 실마리를 더듬어 볼 수는 있다.
삼성 준감위에 초빙돼 경영권 승계를 주제로 강연한 바 있는 지배구조 분야 전문가는 “(삼성 지배구조 개선은) 개별 기업 지배구조가 아니라 그룹 전체의 지배구조, 지분과 관련된 이슈로 이해한다”고 밝혔다. 지배구조 개선을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의 기초가 되는 ‘물산-생명-전자’로 이어지는 출자 구조 개편으로 보는 시각이다.
이 인사는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보유에서 나오는 문제(금산분리 원칙 위배) 같은 것도 언급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생명-전자’ 출자구조를 콕 짚었다. 보험사가 비금융계열사 지분 보유를 제한하는
보험업법 취지에 맞춰 출자 구조 개편 로드맵을 삼성이 내놔야 지배구조 개선의 의미가 산다는 뜻이다. 그는 “준감위가 법적 권한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일종의 조언은 할 수 있다. 현재 이 이슈를 제기할 주체는 준감위 뿐인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준감위 쪽은 ‘이재용 이후’ 총수 체제 구축에 무게를 두고 있다. 준감위를 이끌고 있는
김지형 위원장은 지난 8월 <한겨레>와 만났을 당시 “4세 승계 포기를 전제로 ‘톱클래스’(총수)를 어떻게 뽑느냐 하는 기업 권력 창출 방식이 결국 (지배구조 사안의) 핵심일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1위 재벌이자 세계적인 반열에 올라 있는 기업집단의 미래와 맞닿는다는 점에서 중대사이며, 이 중심 주제에서 갈라져 나올 다양한 숙제 거리에 대한 논의와 결정은 3세(이재용) 시대의 마감 훨씬 이전에 이뤄질 수밖에 없다. 경영권 불법 승계 관련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부회장의 역할과 권한에 일정한 변화를 꾀할 수 있다는 것도 이런 범주에 든다. 다만 이 부회장의 나이(53)를 고려할 때 ‘3세 이후 삼성’은 최소 십수 년 뒤의 일로 여겨져 당장 현실적 체감도를 높이지는 못한다.
준감위 내부에선 다른 시각도 있다. 준감위의 한 위원은 “기업 지배구조라 하면 개별 기업의 이사회 기능을 정상화하는 것과 함께 기업집단의 거버넌스를 어떻게 구성할 것이냐는 것인데, 삼성 지배구조 개선에선 이 둘을 다 포괄하는 개념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삼성그룹에서 예전의 ‘불법 합병’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아야 하고, 의사 결정이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이뤄지도록 하는 것에 대한 숙제”라는 설명이다. 그는 “미전실(그룹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이 없어진 뒤 ‘사업지원 티에프’가 그 역할을 어느 정도 하고 있는데, 이걸 어떻게 정비할지도 지배구조 개편 관련 주요 사안”이라고 말했다.
시민사회나 전문가 그룹에선 지배구조 개편의 시작은 안정적인 이사회 중심 경영 구조의 안착이란 목소리가 많다. 재벌 전문가인 김진방 인하대 교수는 “지배구조 개선의 핵심은 올바른 이사회 구성, 그 이사회에 의한 최고경영자 선임”이라고 말했다. 지배주주에 편향되지 않고 “일반주주의 의사까지 반영한 이사회가 최고경영자를 뽑는 방식이면 승계 문제는 자연스럽게 풀릴 것이며, 그 외 다른 해법은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우찬 경제개혁연구소장(고려대 경영대 교수)은 두 가지 과제를 꼽는다. ‘국정농단 사태’ 같은 불법 행위에 얽힌 이들을 경영진에서 일정 기간 배제하고, 감사위원을 전원 분리 선출하는 쪽으로 정관을 마련하는 방안이다. 김 소장은 “삼성 지배구조 개선에서 핵심은 지배주주 일가를 견제하는 것”이라며 “그 두 가지 과제만 개편안에 포함해도 100점짜리라 본다”고 말했다.
국정농단 사태에 비춰 앞의 과제는 이사회 몰래 저질러진 횡령 행위와 관련돼 있으며, 두 번째 것은 이사회 차원에서 결정한 ‘불법성 합병(물산+모직)’과 연결돼 있다. 준감위가 만들어지고,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게 된 배경이었던 국정농단 사태를 고려해 법·제도적 정비에 앞서 선제적으로 견제 장치를 마련하면 바람직할 것이라는 제안이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