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이 여럿 붙은 공정거래위원회 사건이 있다. 지난달 공정위가 제재를 부과한
구글의 파편화금지계약(AFA)이다. 전세계 경쟁당국 중 처음으로 현존하지 않는 스마트 기기를 제재 대상에 포함시킨 데다, 이를 위해 세계 최초로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사건에 ‘혁신 시장 접근법’을 적용했다. 결과와 과정 모두 공정위로서는 ‘가보지 않은 길’이었던 셈인데, 향후 플랫폼 분야 경쟁법 집행의 기초가 될 전망이어서 관심이 쏠린다.
18일 공정위 설명을 들으면, 공정위 경제분석과는 최근 구글 사건에 적용한 혁신 시장 접근법에 대한 보고서를 펴내 내부에 공유했다. 실무진 차원에서 참고하기 위한 목적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행정소송이 제기됐으니 법원의 판단을 지켜봐야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앞으로도 플랫폼 분야에서 많이 쓸 기법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혁신 시장 접근법은 말 그대로 혁신을 둘러싼 경쟁을 본다는 개념이다. 이미 판매되고 있는 상품·서비스의 가격 경쟁을 분석하는 전통적 기법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구글이나 삼성 같은 기업들은 다양한 스마트 기기를 개발하고 있지만, 아직 명확한 기기 유형을 특정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전통적 기법만으로는 경쟁당국이 이런 시장에 손을 대는 건 불가능한 까닭이다. 혁신 시장 접근법은 이런 경우에도 연구개발을 둘러싼 경쟁을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혁신 시장’ 자체를 분석하는 방식이다.
이 기법의 역사는 주로 제약사 간 인수합병(M&A)에서 찾을 수 있다. 자사에 위협이 될 만한 의약품의 임상을 마친 기업이 있으면 아예 이를 인수해버리는 제약사가 많았는데, 이때 혁신 시장 접근법과 비슷한 기법이 적용됐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에 혁신 시장 접근법을 적용하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었다고 공정위 사무처는 전했다. 미국 등과 달리 제약 산업 규모가 작은 국내에서는 선례가 없을 뿐더러, 기업결합이 아닌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사건만 놓고 보면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없었던 탓이다.
이 과정에서 공정거래법 2조는 하나의 실마리가 됐다. 2조는 각종 개념을 정의해둔 조항인데, 시장 획정에 대해서는 ‘경쟁관계에 있거나 경쟁관계가 성립될 수 있는 분야’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정의를 활용하면 아직 명확한 경쟁관계가 존재하지 않아도 제재가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법 제정 이후 40여년간 잠들어 있던 문구를 이번에 살려낸 셈이다.
혁신시장 접근법은 앞으로도 플랫폼 분야에서 주요하게 쓰일 전망이다. 공정위 사무처는 구글이 스마트 스피커나 시계처럼 아직 직접 진출하지 않은 분야에도 파편화금지계약을 강요했던 행태를 일컬어 “봉금(封禁, 일정한 지역으로의 유입 제한)정책과 같다”고 표현했다. 온라인 플랫폼의 경우 승자독식 성향이 강하고 진입장벽이 높은 만큼, 기업들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 시장에도 미리 깃발을 꽂아두려는 성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를 제재하는 데 있어서 전통적인 경제분석 기법은 무용지물이다.
공정위의 향후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최근 플랫폼 기업의 사업구조 자체를 겨냥한 각종 법안은 모두 “사후적 제재로는 불충분하다”는 문제의식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제 와서 구글의 행태를 뜯어고친다 한들 스마트폰 운영체제(OS) 경쟁 상황을 개선하기는 힘들다는 얘기다. 혁신시장 접근법을 이용하면 자율주행차 운영체제처럼 아직 시장이 고착화되지 않은 분야의 경쟁을 선제적으로 보호할 수 있다.
이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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