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400만명을 자랑하던 부산 인구는 330만명으로 줄어들었다. 지난해 부산에서 수도권으로 순유출된 인구는 1만여명, 이 가운데 60% 이상이 청년 유출이다. 사진은 부산 광안대교 전경. 연합뉴스
수도권 편중 심화와 지역 불균형 문제를 해결할 방안으로 ‘메가시티론’이 주목받고 있다. 부산·울산·경남과 대구·경북, 광주·전남, 대전·세종을 거점으로 인구 500만~1천만명 안팎의 초광역 경제생활권을 만들자는 게 핵심이다. 현재 진행 중인 메가시티 구축 논의는 시·도 행정통합론과 결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메가시티 전략은 국토균형발전과 함께 지역소멸 위기를 극복할 돌파구가 될 수 있을까?
지역별로 차이가 있지만, 부산·울산·경남(부·울·경)을 중심으로 한 동남권 메가시티 논의가 가장 활발하다. 올해 초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광역교통망을 중심으로 부·울·경을 한시간대 생활권으로 묶는 데 속도가 붙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정책 지원으로 힘을 싣고 있는 것도 메가시티 실현에 기대를 높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월25일 동남권 메가시티 구축 전략 보고대회가 열린 부산을 방문해 “동남권과 같은 초광역 협력 사례가 다른 권역으로 퍼져나간다면 우리가 꿈꾸던 다극화·입체화된 국가균형발전 시대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메가시티 논의의 촉발 배경은 국토 균형과 지역 발전의 새로운 접근전략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다. 그동안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방의 정주 여건과 경쟁력을 높이고자 혁신도시, 도시재생, 스마트도시 등의 정책을 폈지만, 그 효과는 미미한 상황이었다. 메가시티 논의는 지방의 문제를 지방을 넘어 전 국토 차원에서 접근하는 통합적인 전략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수도권이 비대해질수록 비수도권이 쇠퇴하는 악순환은 국가적 차원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며 “자발적으로 일어난 초광역 협력은 균형발전의 좋은 전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은 수도권에 몰려 살고 있다. 지역내총생산(GRDP)도 수도권이 나머지 지역의 경제 규모를 일찌감치 앞질렀다. 수도권으로 유출되는 지방 인구 중 직업을 얻기 위해 유출되는 인구의 비율은 2016년 16%, 17년 31%, 18년 53%, 19년 64%로 매년 높아지고 있다. 다수의 지방 도시가 경제적 여건은 물론 미래 성장 기반이 취약한 가운데 인구 유출 문제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비대해진 수도권은 수도권대로 비효율적이다. 한국교통연구원이 조사한 수도권의 평일 교통혼잡비용은 17조8천억원으로, 전국의 53%에 해당한다. 세계 선진국 수도권과 비교할 때 인구 비중 대비 지역내총생산액 비중이 낮고 국민경제 기여도도 낮은 실정이다. 불균형 발전은 지방 도시에만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국가 전체의 발전을 막고 지역 간 갈등을 유발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지역에서 보면 인구 감소와 쇠퇴로 ‘소멸’ 위기에 놓인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한국고용정보원 조사 결과, 2020년 5월 기준 전국 228개 시·군·구 가운데 42%가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됐다. 상대적으로 부·울·경에서 논의가 활발한 것은 이 지역의 위기의식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 부산은 한때 ‘400만 시민’이라고 할 정도로 인구 면에서도 자부심이 대단했지만, 지난해 9월 기준 330만명으로 쪼그라들었다. 부산시의 16개 구·군 가운데 4개 구가 소멸 위기에 처했는데, 특히 청년 유출이 심각하다. 지난해 부산에서 수도권으로 유입된 인구는 1만명이 넘었고, 이 중 60% 이상이 청년 유출이었다. 경제적으로도 수도권의 지역내총생산이 2.8% 증가(2005년 대비)할 때 부산은 0.8% 감소했다. 울산도 상황은 비슷하다. 산업수도로서 불황을 모르던 곳인데, 2011년부터 경제적으로 하강 국면에 들었고, 인구 면에서는 2015년을 정점으로 하향길이다. 경남에서도 20, 30대 청년들이 한해 1만2천여명 순유출되고 있다. 이 중 70%가 수도권으로 향한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였던 영남권 인구 중 특히 청년 인구 유출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은 양질의 일자리와 사업 여건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도권으로 사람과 돈이 모두 빨려 들어가면 지방은 자연스럽게 소멸된다는 위기론이 계속 가중될 수밖에 없다.
지역 입장에선 초광역권을 만들어 규모의 경제를 형성하면 수도권 쏠림에 대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광역지자체별로 불필요한 경쟁이나 중복 사업을 벌이지 않아도 되는 게 큰 장점이다. 예컨대, 공항 유치나 쓰레기 매립장 같은 문제들을 갈등 없이 해결할 수 있고 경제·교통·관광 등을 한데 묶어 행정과 서비스 효율도 높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월25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 부전역에서 열린 ‘동남권 메가시티 구축 전략 보고’ 행사에 참석해 송철호 울산광역시장으로부터 ‘동남권 광역교통망 구축’ 등을 뼈대로 하는 생활공동체 조성 방안과 ‘동남권 광역특별연합’이라는 행정공동체 구성 계획을 듣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최근의 메가시티 논의는 과거와는 다른 배경을 갖고 있다. 수도권으로 인구가 유출되고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소멸 위기에 놓인 지방의 생존전략의 하나라는 점과 중앙정부 주도가 아닌 지역의 필요에 따라 지역이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광역 협력사업이라는 특색을 띠고 있다. 유엔해비타트 한국위원회 산하의 지속가능도시연구소 이나래 부소장은 “초광역권 형성을 위한 지역 주도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행정통합을 위한 지방자치법 개정이 이뤄지면서 지역의 현실과 수요를 반영한 메가시티의 실현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현재 추진되고 있는 지역의 메가시티가 균형발전과 자치분권을 실현하는 만병통치약일 리는 없다. 자치권을 가진 서로 다른 자치단체를 통합하는 일은 지난한 과정을 필요로 한다”고 했다.
이런 맥락에서 지역의 특성과 수요에 적합한 맞춤형 공간의 구축, 산업 전략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경기연구원은 ‘수도권도 살고, 지방도 사는 메가시티 전략’ 보고서에서 “서울-인천-경기의 수도권은 수평적 기능분담체제 구축을 지향하는 하나의 도시로 보는 ‘원 시티’ 전략을, 지방은 광역권마다 국가중추기능 일부를 담당하는 ‘지역별 수도화’ 전략을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부·울·경 동남권은 물류와 해양, 대구·경북권은 건설교통과 상공, 광주·전남권은 에너지와 농수산, 대전·세종·충청권은 과학정보와 의료보건 관련 국가기관과 시설 입지와 같은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방도시 살생부> <지방분권이 지방을 망친다> 등을 펴낸 마강래 중앙대 교수(도시계획부동산학)는 좀 더 다른 접근법을 편다. 마 교수는 “지방의 모든 도시를 대상으로 예산 나눠주기식 지원 정책을 펴는 것은 효과가 너무 떨어질 뿐 아니라 ‘아무리 해도 안 된다’는 낙인효과를 부른다”며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중소 도시는 자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힘을 쏟고 큰 도시는 지역 특성을 살린 거점을 구축하고 광역화해야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해 한정된 자원과 비용으로 지방과 농촌의 기존 인프라 활용도를 높이고 가치를 극대화하는 스마트시티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최근 정부가 동남권 메가시티와 같은 초광역 협력 사업을 국가 차원에서 추진하기로 하면서 메가시티 구상은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 10월14일 문 대통령과 17개 시·도지사가 참석한 가운데 세종시에서 ‘균형발전 성과와 초광역협력 지원전략 보고’ 행사를 열어 ‘초광역협력 지원전략’을 발표했다. 정부는 올해 말까지 지역 주도 초광역 협력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분야별 세부계획을 수립하는 등 신속하게 지원할 계획이다.
그러나 동남권, 충청권의 메가시티 구상과 대구·경북, 광주·전남의 행정통합 계획은 권역화와 비권역화, 통합과 비통합이 초래할 이익과 손실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전제가 돼야 한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행정 단위를 하나로 묶는 대구·경북 통합은 내년 7월1일 특별자치정부 출범을 목표로 했지만 통합과 반대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 있다. 초기 논의 단계에서 여론 왜곡 논란이 불거진데다 최종적으로 주민투표를 통해 실행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라 진통이 만만찮다. 지난해 광주시의 제안으로 논의를 시작한 광주·전남 행정통합 문제 역시 시·도민 의견 수렴 등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임주환 희망제작소 소장은 “메가시티론은 지역의 각 거점을 중심으로 지방소멸을 막는 댐을 구축한다는 발상에서 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며 “결국 수도권과 비수도권 양극화를 완화하자는 것인데, 지방쇠퇴와 지방소멸의 해법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이 있는 토론과 여론 조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대선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어젠다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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