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시 남구에 있는 포항제철소는 국내 첫 일관제철소로 1973년 첫 가동에 들어갔다. 포스코 제공
철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편리한 세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단단하면서도 열이 가해지면 쉽게 다양한 형태로 변하는 철은 4천년 전부터 인간의 사랑을 받아왔다. 이젠 철이 없는 인간의 삶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반면 철은 지구온난화의 주범 가운데 하나다. 1톤의 철이 만들어질 때마다 1.8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전체 산업 분야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24%를 차지한다. 2050년 무렵에는 전세계적으로 연간 28억톤의 철을 생산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철 생산을 친환경적으로 바꾸지 못하면 매년 50억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게 된다. 이는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 510억톤의 10%를 차지하는 막대한 양이다. 철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자원이면서 동시에 인류를 기후위기로 내몰고 있는 이중적 존재다.
포스코가 지난 10월 개최한 수소환원제철 국제포럼은 이런 ‘철의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을 점검하고 국제적 협업 가능성을 모색한 자리였다. 10월6~7일 열린 이 포럼에 세계 48개국 철강기업과 철강협회, 에너지기업, 국제기구 등 348개 기관에서 2천여명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참가했다.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은 글로벌 철강업계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글로벌 철강업체들이 대거 이 포럼에 참가한 것은 이런 절박한 상황을 반영한다.
철을 만들려면 철광석에서 산소를 떼어내야 한다(이를 환원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섭씨 1500도 이상의 고온에서 철광석과 코크스를 함께 녹인다. 코크스는 석탄의 일종으로 탄소를 함유하는데, 이 탄소(일산화탄소)가 철광석 중의 산소와 결합해 이산화탄소가 만들어지면서 산소가 제거된다. 이 과정을 거쳐 인간에게 필요한 철을 얻게 된다. 철광석은 쉽게 캐낼 수 있고 석탄도 땅에 충분히 매장돼 있기 때문에 비용이 가장 적게 드는 방식이다.
하지만 부산물인 이산화탄소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꼽힌다. 만약 탄소를 함유한 코크스 대신 탄소가 없는 물질을 환원제로 써서 철 생산에 성공한다면 ‘그린 철강’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환원제가 바로 수소다. 코크스 대신 수소를 넣으면 철광석에 함유된 산소와 만나 물이 생성된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철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 수소환원제철 공법이다.
수소환원제철 기술은 유럽과 중국 철강업체들이 개발 중인 샤프트환원로 방식(하이브리트)과, 포스코가 개발 중인 유동환원로 방식(하이렉스)이 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샤프트환원로 기술은 철광석을 빻아 구슬 형태로 가공한 펠릿을 원료로 사용하고 천연가스를 환원제로 쓰고 있다. 이 기술은 스웨덴 철강기업 사브(SSAB)가 가장 앞선다. 사브는 지난해 8월 연구 프로젝트로 천연가스 대신 수소를 환원제로 사용한 ‘하이브리트’의 가동을 시작했다. 여기서 만든 철강은 자동차 회사 볼보에 납품됐고, 볼보는 이 철강을 이용해 친환경 콘셉트카를 만들고 있다. 현재 파일럿 단계인 하이브리트는 2026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연간 100만톤 규모의 친환경 철강 생산을 계획하고 있다.
포스코가 개발 중인 유동환원로 방식은 현재 철강 생산에 활용하고 있는 파이넥스 기술에 수소환원 기술을 접목한 것이다. 파이넥스는 철광석에서 철을 추출하는 과정과 철을 녹이는 과정을 분리한 것이다. 철광석 가루를 유동환원로에 넣어 환원철을 만들고 이를 용융로에 넣어 쇳물을 만든 뒤 다시 전로에 넣어 정제한 쇳물로 철강을 만든다. 이 방식은 고로 방식에 비해 오염물질과 미세먼지 배출량이 적다. 또 펠릿 대신 철광석 가루를 그대로 원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경제성도 있다. 하지만 석탄을 사용해 철을 녹이기 때문에 탄소배출에서 자유롭지 않다. 포스코는 석탄 대신 수소를 환원제로 사용하는 ‘하이렉스’ 공법을 개발하고 있다.
수소환원제철 기술의 상용화 여부는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깨끗한 전기에 달려 있다. 수소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많은 전기가 필요하다. 이 전기를 화석연료를 태워 조달하는 한 아무리 수소환원제철 기술로 철을 생산한다 하더라도 ‘친환경 철’은 될 수 없다. 유럽 주요 국가들은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그린 수소’ 생산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는 자연적 한계로 인해 안정적으로 공급되지 못하는 약점(간헐성)이 있다. 이 때문에 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면서 전기를 안정적으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원전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기존 대형 원전의 약점인 안정성을 극복할 수 있는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에 유럽 주요 국가들이 뛰어들고 있는 이유다.
영국 정부는 최근 영국 기업 롤스로이스가 주도하는 에스엠아르 개발에 2억1천만파운드(약 3331억원)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롤스로이스는 앞서 에스엠아르 개발 명목으로 글로벌 투자자들로부터 1억9500만파운드(약 3094억원)를 끌어모았다. 하지만 에스엠아르 기술은 이미 오래전에 소개됐는데도 상용화는 아직 요원하다. 원전은 발전 규모가 커야 경제성이 있는데, 에스엠아르는 발전량이 적은 반면 비용이 여전히 많이 든다. 원전 개발업체들은 10여년 전부터 에스엠아르 건설비를 줄일 수 있다고 장담했지만 아직까지 입증하지는 못했다.
원전만큼 위험하지 않으면서 깨끗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로 핵융합 발전이 있다. 에너지를 얻기 위해 핵분열처럼 원자를 분리하지 않고, 원자를 붙이거나 융합하는 것이다. 핵융합은 플루토늄 대신 수소를 사용하기 때문에 방사선 위험이 거의 없다. 핵융합 폐기물은 100년 동안 방사선을 배출하지만(플루토늄은 천년 동안 배출한다), 그 강도는 병원에서 나오는 방사선 수준으로 약하다. 핵융합은 이론적으로 완벽하지만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적은 것으로 평가돼왔다. 하지만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11월25일(현지시각) “최근 핵융합 기술 발전과 투자 증가로 깨끗하고 무한한 전기에 대한 낙관주의가 번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핵융합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기업들이 그동안 23억달러를 투자받았는데, 이 중 20%가 최근 한달 동안에 모였다”고 전했다.
1968년 포항제철소 건설 현장에 지어진 포철건설사무소(일명 롬멜하우스). 박태준 당시 회장이 이곳에 거주하면서 제철소 건설 작업을 지휘했다. 포스코 제공
포스코는 국내에서 탄소배출량이 가장 많은 기업이다. 지난해 7500만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해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11%를 차지했다. 전년에 비해 5% 이상 줄였지만 여전히 압도적인 1위다. 한국의 경제성장을 이끈 주역 가운데 하나인 포스코는 지금 기후위기의 주범으로 몰려 있다. 포스코가 친환경 철강기업으로 변신할 수 있을지 여부는 깨끗한 전기를 확보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이춘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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