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오후 인천시 남동구 소래포구어시장이 김장철을 맞아 새우젓을 사려는 고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연합
“치킨값부터 참치캔값, 배달료까지 안 오르는 게 없어요. 밖에서 간단히 밥 한 끼 먹으려 해도 만원 넘는 건 기본이더라고요. 과일도 제철 과일 아니면 너무 비싸서 먹을 수 없어요.” 서울에 사는 직장인 김아무개(32)씨는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말’이 딱 요즘 이야기”라며 혀를 내둘렀다.
통계청이 2일 발표한 ‘11월 소비자물가동향’을 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3.7% 올랐다. 2011년 12월(4.2%) 이후 9년11개월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구매 빈도와 지출 비중이 높은 품목들만 골라 작성한 터라 ‘체감 물가’로 불리는 생활물가지수는 5.2%나 상승했다. 장바구니 물가가 ‘무섭다’는 반응이 자연스런 상황이다.
지난달 물가 상승을 가장 크게 견인한 건 기름값이었다. 석유류가 전체 물가를 1.32%포인트 끌어올렸다. 석유류는 1년 전 같은 달 보다 35.5% 상승해 2008년 7월(35.5%) 이후 8년4개월 만에 가장 크게 올랐다. 정부가 지난달 유류세를 20% 인하했으나 물가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유류세 인하 조처가 지난달 12일에 돼서야 적용된 데다, 주유소에 세금 인하 전 재고 물량이 남아 있던 터라 물가를 끌어내리는 영향이 작았다는 정부 설명이 뒤따른다.
유류세 인하분이 모두 반영되더라도 기름값은 여전히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장거리 운행이 잦은 직장인 이아무개(41)씨는 최근 오를 대로 오른 기름값 탓에 주유소에 가기 두렵다고 한다. 이씨는 “유류세를 낮춰줘서 리터당 1800원대 하던 휘발유가 금방 1600원대로 내려오긴 했지만, 다른 물가도 많이 올라서 지출이 많이 늘었다”며 “기름값 오르기 전과 비교하면 한 달에 4만∼5만원은 더 나간다”고 말했다.
안정세를 찾는가 싶었던 농·축·수산물도 1년 전보다 7.6% 올랐다. 정부는 채소류 작황이 좋지 않은 데다 예년보다 김장철이 빨라진 영향이 크다고 보고 있다. 통상 김장철은 11월 하순부터 12월 상순 즈음인데 올해는 10월부터 한파특보가 발령되는 등 추위가 일찍 찾아오면서 11월에 김장 수요가 몰렸다는 것이다.
실제 예년보다 김장을 서둘렀다는 가정주부 송아무개(55)씨는 채솟값이 너무 올라 올해는 김장 물량을 절반으로 줄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송씨는 “배추, 무, 고춧가루 죄다 값이 올라서 올해는 망설여지더라”며 “그래도 안 할 수는 없으니까 비싸다, 비싸다 하면서 조금만 했다”고 말했다.
높은 물가는 석유류와 농·축·수산물처럼 변동폭이 큰 공급측 요인만이 문제는 아니다. 이미 개인서비스 물가는 지난 4월부터 2%대 상승률을 보이다가 지난달에는 3%로 올라섰다. 생선회(9.6%), 피자(6%) 등 외식물가가 크게 뛴 탓이다. 과거 5년 평균 외식물가 상승률은 0.09%에 불과했는데 지난달에는 0.6%나 올랐다. 서울에서 디저트 카페를 운영하는 김아무개(30)씨도 “원재료 가격이 오르니까 실시간으로 가게 수입이 줄어드는 걸 체감하고 있다”며 “가격 인상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다른 요인보다도 서비스 물가가 걱정이다. 평소라면 물가가 오르기 전에 미리 잡아야 하는데 지금은 원재료비는 오르고 있고 코로나19 탓에 자영업자들 사정도 워낙 안 좋다 보니 여러모로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물가의 장기 추세를 보여주는 근원물가(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도 2.3% 올라 두 달 연속 2%대 상승률을 보였다.
정부는 앞서 한은이 내놓은 연간 물가상승률 전망치 2.3%를 넘어서지는 않을 거라는 입장이다. 지난 1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한국의 올해 연간 물가상승률 전망치가 2.4%라고 밝힌 바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날 오전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 “전 세계적 물가 오름세 속에 우리는 주요국 대비 낮은 수준”이라며 “12월에는 국제유가 상승세 진정, 유류세 인하 효과, 김장 조기종료 등으로 상승폭 둔화가 전망된다. 연간으로는 한은, 경제협력개발기구의 최근 전망치와 유사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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