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제 회복 속도 차이 탓에 국가 간 불평등이 과거보다 더 심화할 것이라는 전망을 세계은행(WB)이 내놨다. 선진국들이 회복을 위해 강력한 재정·통화정책을 펴는 동안, 저소득 국가들은 백신 접종률도 한 자릿수에 머물고 인플레이션 위험에 휩싸이는 등 각종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세계은행은 지난 11일(현지시각) 이런 내용을 뼈대로 한 ‘세계 경제전망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를 보면, 선진국은 2023년 즈음 코로나19 이전까지 이어져 온 성장 흐름으로 경제가 완전히 회복할 전망이지만,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은 상대적으로 회복 속도가 느려 같은 기간 팬데믹 이전 성장 흐름에 견줘 4% 정도 모자란다. 그마저도 신흥국·개발도상국 그룹에서 중국을 제외하면 성장세는 과거 추세에 견줘 5.2%나 낮아진다. 데이비드 맬패스 세계은행 총재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 “협곡이 더 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은행은 특히 저소득 국가가 높은 물가 상승률과 금리 상승, 에너지 전환 흐름 등에 손발이 묶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세계은행은 “인플레이션 상승은 (저소득 국가의) 통화정책을 제약하고 있다. 경기 회복이 되기도 훨씬 전부터 인플레이션 부담으로 퉁화 완화 정책 강도를 줄이고 있다”며 “(재정 등) 추가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정책적 여력도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세계은행의 아이한 코세 개발전망 국장은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은 팬데믹의 상처를 지우기 위한 개혁에 착수해야 한다”며 “이 개혁은 투자와 인적자본을 개선하고, 소득·성 불평등을 역전시키며, 기후 변화의 도전에 대응하는 방향이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분석 결과는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앵거스 디턴이 지난해 초 내놓은
코로나와 불평등 간의 관계 실증 연구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디턴의 연구에선 코로나가 상대적으로 경제 규모가 큰 선진국 경제를 크게 갉아먹으면서 국가 간 불평등 수준이 일반의 예상과는 달리 완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다만 디턴의 연구는 세계은행이 코로나19 팬데믹 전후의 성장 흐름 변화 정도를 잣대로 삼아 각 국가별로 가늠해본 것과는 달리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한 해 동안의 국가 간 불평등 양상을 1인당 GDP 기준으로 살펴본 것이었다.
세계은행은 팬데믹이 지난 20년 동안 달성해온 ‘세계불평등 완화 추세’를 반전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세계은행은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의 더딘 회복 탓에 국가 간 불평등 수준은 2010년대 초반과 비슷한 정도로 돌아갈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기관의 마리 팡에스투 개발정책협력담당 이사는 “당장 최우선 과제는 백신이 보다 광범위하고 공평하게 배치돼 전염병을 통제하는 것이다. 불평등 증가에 대처하는 건 보다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부채가 많은 개발도상국이 녹색·탄력·포용적 발전을 이루도록 재원 확충을 돕는 글로벌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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