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운임의 하한선을 정한 담합에 대해서는) 해수부에 신고하지 말라는 구두 통보를 한 것 같습니다.”(전재우 해양수산부 해운물류국장)
지난 12일 한국-동남아 항로 담합 사건에 대한 심의가 열린 공정거래위원회 심판정에서 나온 발언이다. 이날 참고인 자격으로 참석한 전재우 국장은 12시간 넘게 진행된 안건 심의 내내 같은 주장을 반복했다. 요지는 해운사들이 담합을 신고하지 않은 것은 해수부의 지시 때문이니 공정위는 무혐의 처분해 달라는 것이다.
담합 신고·협의 제도는 해운사들의 가격 인상에 대한 유일한 견제 장치다. 산업의 특수성을 인정해 예외적으로 담합을 허용해줄테니, 대신 화주 단체와 협의하고 해수부에 담합 내용을 신고함으로써 적절한 감시를 받으라는 취지다. 정부의 인가 없이 가격 담합을 할 수 있는 업종은 정기선 해운업뿐이다.
그럼에도 해수부는 스스로 견제 장치를 무력화하는 행태를 일삼아왔다. 이날 전 국장은 “신고되지 않은 담합에 대해 알고 있었느냐”는 한 위원의 질문에 “일부 인지하고 있었다”고 답했다. 해수부가 신고되지 않은 담합의 존재를 알면서도 문제삼지 않았다는 업계의 주장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전 국장은 “해운 시장에서 화주들은 절대적 우위에 있다. (합의된 운임보다) 훨씬 낮은 가격대에서 실제 계약이 이뤄지는 현실을 감안해주시면 좋겠다”며 선처를 요청하기도 했다.
해수부의 태도에 이해할 여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해수부가 누리집을 통해 밝히고 있는 설립 목적 중 하나는 해운업 육성이다. 산업 진흥을 담당하는 부처로서 업계의 어려운 사정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일견 자연스러운 태도다. 해운법에 대한 유권해석 권한이 1차적으로 해수부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해수부가 법적으로 허용된 재량을 넘어섰다는 데 있다. 해운법에 특정 종류의 담합은 신고하지 않아도 된다고 규정한 조항은 없다. 해운법 1조에서 규정한 해운법 목적에는 해운사 간 공정한 경쟁도 포함돼 있다. “신고를 하지 말라”는 해수부의 행정지시가 실제로 있었다고 해도 문제라는 뜻이다.
해수부가 스스로 신뢰도를 추락시켰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근거 없는 주장을 펼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업계 편을 드는 행태를 보면 ‘해피아’라는 용어를 입에 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날 전 국장은 ‘신고를 하지 말라’는 행정지시의 기록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문서로는 없고, 퇴직하신 분들과 다른 부처로 이직하신 분들한테 물어봤는데 구두 통지를 한 거 같다”고 답했다.
이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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